‹ 목록으로 월하검, 던전밥상

3화

첫 방송은 조용했다. 시청자 3명에서 시작해서 방송이 끝날 때쯤엔 12명이 됐다. 나쁘지 않은 성장이라고 자기 위로를 했다. 사실 3에서 12면 400퍼센트 성장인데, 이 정도면 스타트업 대표들이 투자설명회 PPT에 그래프 우상향으로 넣고 자랑할 수치 아닌가. 물론 절대적인 숫자로 보면 그냥 동네 치킨집 단골보다 적은 숫자였지만. 채팅창에는 이런 말들이 올라왔다. [손질 왜 이렇게 잘함] [목소리 좋다ㅋㅋ] [근데 저 초록색 젤리 진짜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요?] [먹는거 맞다니까 왜 자꾸 물어봄ㅋㅋ] 나는 대답 대신 그냥 계속 썰었다. 원래 방송이란 걸 어떻게 진행하는지도 잘 몰랐고, 딱히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다. 방송 매뉴얼 같은 걸 찾아봐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검색창에 "던전 요리 방송 시작하는 법"을 치는 순간 내 손가락이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그만뒀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냄비 끓는 소리, 기름 튀는 소리가 방송의 절반을 채웠다. 탁, 탁, 탁. 칼이 도마 위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촤아아아─ 육수가 끓는 소리가 마이크에 그대로 잡혔다. 가스레인지 화구를 하나만 켜놨는데도 좁은 방 안이 후끈해졌다. 슬라임 젤리는 열을 가하면 색이 조금씩 투명해지는데, 그게 은근히 보는 맛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무슨 ASMR임?] [소리 개좋다] [본인 목소리도 좀 들려주세요] [사장님 얼굴 공개 안 하시나요] 얼굴은 절대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던전에서 몬스터 썰던 손으로 젤리를 써는 걸 사람들이 알면 곧바로 신고 전화가 폭주할 게 뻔했으니까. 요청이 들어와서 나는 짧게 대답했다. "오늘 요리는 슬라임 젤리 냉채입니다." 저음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갔다. [목소리 뭐야 진짜] [이 분 국밥집 사장님 아니고 셰프임] [구독 누름] [음성 지원되는 백종원 아저씨 같음] 구독자 알림이 조용히 울렸다. 딩.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괜히 어깨가 한 번씩 들썩거렸는데, 이건 뭐 통장에 월급 들어올 때 문자 오는 그 느낌이랑 비슷했다. 다만 통장에 실제로 들어오는 돈은 아직 0원이라는 게 문제였다. * 방송이 진행되고 5회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좀 더 재료를 다양하게 구하려고 던전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같은 초입만 도는 건 재미도 없고 재료도 뻔했다. 매번 슬라임 젤리만 썰어대니 채팅창에서도 은근히 "또 젤리?" 하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셰프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탐사 경로: 3급 던전 중층] 앱 지도에 그렇게 표시됐다. 중층부터는 슬라임 젤리 말고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나온다고 도감에 적혀 있었다. 도감을 켜서 스크롤을 몇 번 내려봤는데, 사진도 없고 설명도 부실했다. 이런 걸 유료 결제하라고 만들었으면서 정작 정보는 이 모양이라니, 어디 지자체 배달앱 리뷰 이벤트 뜯어보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방송을 켠 채로 걷고 있었다. 채팅창은 잔잔했다. [오늘도 조용히 재료 구경중] [힐링임 힐링] [근데 좀 깊이 들어가는거 아니에요?] [걱정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네] 나는 그 걱정 댓글들을 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재료 없으면 다음 방송 콘텐츠가 없다. 자영업자의 숙명이란 그런 거다. 망할 재고가 다 떨어지면 사장이 직접 시장에 나가야 하는 법. 그때였다. 부스럭. 덤불 사이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슬라임이 아니었다. 멧돼지처럼 큰 몸에 사람 팔뚝만 한 이빨이 달린 놈이었다. 눈은 시뻘겋고, 콧구멍에서 뜨거운 김이 훅훅 뿜어져 나왔다. 저게 무슨 재료로 쓰일 수 있을지, 순간 머릿속에서 요리 레시피가 스쳐 지나갔다는 건 직업병일지도 몰랐다. [멧돼지형 몬스터 - 중급 등급, 성질 흉폭함, 접근 주의] 도감이 뒤늦게 경고를 띄웠다. 뭐지, 이 타이밍은. 그럴 리가. 안내가 이렇게 늦게 나오면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앱 개발자를 만나면 진지하게 컴플레인을 걸고 싶었다. 사용자 안전보다 서버 최적화가 먼저였나 보다. 놈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생각할 틈이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허리를 낮추고, 오른손이 마체테를 뽑는 동시에 왼발이 앞으로 밀려나갔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박자 늦게 뛰기 시작했다. 정작 몸은 이미 다 끝내고 나서야 뇌가 "어, 위험했네" 하고 뒤늦은 감상을 내놓는 식이었다. 촤아악! 한 번의 스침으로 멧돼지의 목이 갈라졌다. 놈은 몇 걸음 더 달려가다가 쿵,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흙바닥이 살짝 파였고, 먼지가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정적이 찾아왔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없었다. 그냥 내 숨소리와 마체테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만 똑, 똑 울렸다. 방송을 켜놓은 걸 그 순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채팅창이 폭발했다. [???] [방금 뭐임] [저거 한 방에 죽인거임?] [야 다시보기 캡처함] [검도 배우신 분인가?] [손목 스냅 미친거 아님?] [아니 이거 편집 아니냐 진짜 실시간이야?] [실시간 맞음 방금 라이브 알림 뜬거 봤음] [이 채널 뭐하는 사람이야 진짜] 채팅창 속도가 너무 빨라서 화면을 스크롤할 수도 없었다. 숫자로 도배된 채팅창이 마치 주식 급등 종목 실시간 호가창 같았다. 나는 그제야 카메라 렌즈를 슬쩍 쳐다봤다. 동공에 지진이 났다. "...예, 뭐." 그게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뭐라도 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아무 문장도 안 나왔다. "오늘 요리는" 이라고 습관처럼 운을 떼려다가 그마저도 삼켰다. 멧돼지 목을 반쪽으로 갈라놓고 "오늘 요리는" 이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사이코패스처럼 보일지 뒤늦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마체테를 대충 닦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뭐임 방금 그거] [방송 계속하시는거 개웃김ㅋㅋ] [이 채널 뭔가 있다] [근데 저 몬스터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거임?] [누가 지금 그게 궁금해ㅋㅋㅋ] [아니 나는 진지하게 궁금한데] 채팅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숫자가 튀는 게 화면 구석에서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동시 시청자 수가 12명에서 87명으로 갑자기 튀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고서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사실 그 시점엔 87이란 숫자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스크린샷이 여러 커뮤니티로 퍼지기 시작한 건 그날 밤부터였다. "검도 유단자 국밥 셰프", "던전에서 만난 이과장" 같은 제목을 달고 캡처 이미지가 떠돌아다녔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는 방송을 종료하고 나서야 그 순간을 다시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마체테를 씻는 동안에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이 늦게 풀리는 타입인지, 아니면 그냥 피곤한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낚은 건 낚았는데, 그게 방송 화면에도 낚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리워야단은 못 낚아도, 방구석 채팅창의 관심은 제대로 낚아버린 셈이었다. 신께서 이런 아이러니까지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앞으로 좀 시끄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다음 날 아침 알림창을 열어보는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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