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후견인님, 오늘도 들켰네요

1화

장례식장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었다. 국화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타는 향 냄새. 이 세 가지가 뒤섞이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달고 씁쓸하고 매캐한, 살아있는 사람이 절대 맡고 싶지 않은 냄새였다. 할아버지가 죽었다. 이관우 회장, 향림그룹의 창업주, 그리고 내 유일한 보호자였던 사람.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서재에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넥타이는 왜 그렇게 매냐, 회사 지분 공부는 언제 할 거냐, 스물셋이면 정신 좀 차려야 하지 않겠냐. 그 잔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심장이 멈췄다는 이유로.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조문객들이 나에게 절을 하고, 봉투를 내밀고,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나는 그냥 인형처럼 고개를 숙였다. 감정이 따라오지 못했다. 머릿속 어딘가가 통째로 마비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인이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다인은 영정 사진 앞에 세 시간째 서 있었다. 조문객이 오건 안 오건, 향이 다 타서 꺼지건 말건,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힌 것 같았다. "울지 않으시네요." 내가 겨우 그렇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실 나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으면서, 왜 다인에게는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나 대신 누군가가 울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다인은 검은 상복 차림으로 영정 사진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열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눈동자는 움직였지만 그 안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슬픔은 비효율적인 감정입니다." 다인이 말했다. 목소리는 낭독하듯 담담했다. 마치 준비된 문장을 읊는 것처럼.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이 아이는 할아버지가 데려온 지 삼 년 됐는데도 여전히 이런 식으로 말한다. 무슨 로봇 청소기 설명서를 읽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래. 네 말이 맞겠지." 다인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영정 사진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 옆에서 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이 아이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날 밤, 별채 서고에서 모든 게 뒤틀렸다. * * *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다인을 데리고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지방 연구시설로 향했다. 유언장에 따로 남긴 물건이 있다는 변호사의 연락 때문이었다. 변호사는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준혁 씨에게만 전달하라고 하신 게 있습니다. 위치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숨기는 건지, 나는 통화를 끊으면서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산속에 박혀 있는,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지도에도 정확히 나오지 않는 위치였다. 창문마다 철망이 덧대어 있고, 정문에는 낡은 카드리더기가 붙어 있었다. 회사 로고도, 연구소 이름도 없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건물처럼. "할아버지가 여기서 뭘 연구했는지 알아?" 내가 묻자 다인은 짧게 답했다. "모릅니다." 또 그 대답이었다. 이 아이는 모른다는 말을 할 때만큼은 확신에 차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유난히 길었다. 콘크리트 벽에서 스며나오는 냉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조명은 삼십 초에 한 번씩 깜빡거렸다. 삐이익. 형광등이 수명을 다한 듯한 소리를 냈다. 서고는 지하 3층에 있었다. 책장 사이를 걷던 중, 다인이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왔습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뭐? 누가?" 대답 대신 서고 입구의 불이 꺼졌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손전등도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그 작은 불빛이 책장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마치 그 그림자들 사이에 뭔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준혁 씨." 다인이 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다급함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평소의 담담한 낭독투가 아니었다. "뒤쪽 비상계단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즉시." "왜, 뭔데, 설명을—"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다인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가웠다. 열다섯 살짜리 아이 손이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나? 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어떻게 알아?" "발소리가 여섯입니다. 셋은 정문, 셋은 후문. 정문은 이미 막혔습니다." ···그걸 이 짧은 시간에 계산했다고? 숨소리조차 크게 들리지 않는 이 서고 안에서, 벽 너머 발소리를 여섯으로 구분해낸다는 게 정상적인 능력인가. 의문은 뒤로 미뤄야 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비상계단으로 뛰었다. 발밑에서 콘크리트가 울렸다. 두다다닥.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쫓아왔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손에는 뭔가 길쭉한 물건. 총인가? 아니, 저건 — 형태가 이상했다. 총이라면 저렇게 가는 관 형태에 파랗게 빛나는 부분이 있을 리 없었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레이저 장비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내가 지금 정신이 나가서 이상한 걸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엎드리세요!" 다인이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피이잉. 귓가로 뭔가 날아가는 소리가 스쳤다. 벽에 박힌 화살촉 같은 것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표면에서 미세한 전류 같은 게 지지직 흐르는 게 보였다. ···저게 화살이야, 아니면 다른 뭔가야?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인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입니다." 비상구 문을 밀치자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산속이었다. 가로등도 없이 어둠뿐이었다. 별빛만이 하늘에 흩뿌려져 있었고, 발밑은 낙엽과 흙이 뒤섞여 미끄러웠다. "할아버지가 남긴 물건이 뭔지도 모르는데,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숨을 몰아쉬며 내가 중얼거렸다.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에 먹은 육개장이 그대로 올라올 것 같았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다인이 대꾸했다. 존댓말인데도 은근히 신경질이 배어 있었다. "당신 목숨이 우선입니다." "내 목숨? 네 목숨이 우선이지!"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이 상황에서도 존댓말과 반말을 챙길 정신이 있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제 목숨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대답은 없었다. 다인은 그냥 내 손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뒤에서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산길을 뛰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고, 흙이 신발 속으로 파고들었다. 구두를 신고 왔다는 걸 이제야 후회했다. 장례식장 복장 그대로 산을 뛰어다니고 있다니, 누가 보면 코미디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박동이 관자놀이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저 앞에 차가 있습니다." 다인이 가리킨 곳에 낡은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기사가 몰던 차였다. 왜 여기 세워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키는 어디 있지? 손을 더듬어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차 키가 있었다. 왜 있었는지는 모른다. 오늘 아침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다가 아버지 유품 상자에서 무심코 챙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운이 좋았던 거겠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걸렸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 산길을 내려갔다. 백미러로 검은 형체들이 뒤쫓아 오는 게 보였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 있나? "저것들 뭐야! 사람이야?" "모릅니다." 다인이 짧게 대답했다. "모른다고?" "모르는 건 모르는 겁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 그런 걸 자랑스러워할 때가 아닌데. 핸들을 쥔 손에 땀이 찼다. 미끄러웠다. 차가 흔들리며 산길 커브를 돌았다. 타이어가 미끄러졌다. 끼이이익. 간신히 균형을 잡았을 때, 백미러에 뭔가 비쳤다. 검은 형체 하나가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의 잔상도 없이. 그리고 그 형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엎드려요!" 내가 소리치는 순간, 앞유리에 파란 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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