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위기가 지나간 후, 파티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무관심이 조금씩 관심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가 변화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던전을 나오던 날, 은호가 처음으로 나에게 물을 건넸다. 그냥 물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물병 하나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셔. 너도 고생했잖아."
그 한마디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만 숙였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그날 밤, 나는 그 장면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섯 명 각각을 조금씩 관찰하게 됐다. 정확히는, 궁금해졌다.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별거 아닌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붙이게 된다. 나는 그렇게 됐다.
은호는 늘 앞장섰다. 던전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걸어 들어갔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가장 먼저 검을 뽑았다. 리더로서의 책임감 때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건 조금 달랐다. 은호의 집안은 이 나라에서 용사 스킬 배출 가문으로 유명한 집안이었다. 3대째 용사가 나온 집. 할아버지가 용사, 아버지가 용사, 그리고 이제 은호가 그 대를 이을 후보였다. 그 무게가 어떤 건지, 나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앞장서는 게 성격이 아니라 의무였을 수도 있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서아는 늘 온화했다. 성녀라는 스킬에 걸맞게. 다치면 웃으면서 치유해줬고, 누가 짜증을 내도 그저 웃었다. 처음엔 그 웃음이 사람을 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저렇게 한결같이 웃을 수가 있나. 화도 안 나나. 다만 그 온화함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만들어진 건지,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건 나만 몰랐던 게 아니라 파티 전체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심지어 서아 본인도 헷갈려 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강수는 말이 없었지만, 은근히 다정한 구석이 있었다. 몬스터를 막다가 다친 팔을 붕대로 감으면서도, 다른 사람 상처가 없는지 먼저 물었다. 그 목소리는 늘 낮고 짧았다.
"너는 안 다쳤어?"
딱 그 한 문장. 그게 강수식 다정함이었다. 집안은 무술 명가라고 했다. 스킬 판정에서 중기사가 나왔을 때, 집안에서 그렇게 환영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민재한테서 들었다. 대대로 검을 쓰는 집이었는데, 중기사는 그 계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스킬이라고 했다. 강수는 그 얘기를 듣고도 딱히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자기 자리를 지켰다.
민재는 셋 중에 가장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늘 구석에 있고, 말도 짧고, 표정도 잘 안 바뀌었다. 파티가 다 같이 웃을 때도 민재는 그냥 시선만 옮겼다. 그가 차고 있는 군도는 학교에서 지급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칼집부터 달랐다. 낡았지만, 낡음 속에 관리의 흔적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군도는 몇 대를 거쳐 내려온 가문의 무기였다. 민재는 그 얘기를 하면서도 딱히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냥 물건이야. 특별한 거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질은 매일 했다. 그 모순이 민재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든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현자 스킬을 쓸 때 보여주는 지식의 폭이 상당했는데, 그게 학습으로 쌓인 건지 스킬로 얻어진 건지도 구분이 안 됐다. 몬스터의 약점을 즉석에서 분석해내는가 하면, 던전 구조를 처음 보고도 다음 층 형태를 예측했다. 이든에 대해서는, 이 시점까지도 나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집안도, 배경도, 심지어 나이도 정확히 몰랐다.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아무런 힌트도 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이 다섯 명 모두, 겉으로 드러난 재력이나 배경보다 훨씬 더 큰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 은호는 가문의 무게를, 서아는 진짜 감정을, 강수는 집안의 기대를, 민재는 몇 대를 거친 유물을, 이든은 정체 자체를.
그리고 나 역시 그들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내가 감춘 건 그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였다. 재력도 아니고, 가문도 아니고, 대단한 유산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이 집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감추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집에서는 다른 종류의 서사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이준혁은 원래 지방 출신이었다. 치료술사 스킬을 얻고, 서울로 올라와 대형 병원에 취직하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스킬 등급 판정에서 상위 일 퍼센트 안에 들었다는 게 두고두고 자랑거리였다. 그 얘기는 명절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반복됐다. 지겨울 정도로. 그 자랑을 자식에게도 재현시키고 싶어했던 게, 아마 아버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을 거다.
어머니 박서윤도 치료술사였다. 아버지와 같은 병원에서 만났고,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됐다. 본인의 재능을 접었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는지, 어머니는 그 아쉬움을 자식에게 투영했다. 나에게는 아니고, 지호에게.
지호가 열 살에 치료술사 판정을 받던 날, 부모님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그날 저녁, 집안 전체가 마치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다. 케이크를 사 왔고, 지호의 이름으로 축하 카드를 돌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냥 촛불을 대신 꺼주는 역할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한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제야 우리 집에 제대로 된 애가 하나 나왔네."
그 문장 속에 '제대로 되지 않은 애'가 이미 존재한다는 게 전제돼 있었다. 나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미 다음 술을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젓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그 뒤로 집안에서 내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저녁 식사 시간에 대화가 오갈 때,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물 같은 존재가 됐다. 물컵이나 수저받침 같은. 있어도 없어도 티가 안 나는.
지호는 그 분위기를 정확히 읽고, 나를 놀리는 걸 하나의 놀이로 삼았다.
"형, 이번 실습에서도 그냥 짐만 되지?"
"...아니야."
"뭐가 아니야. 형 스킬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
"거 봐. 대답도 못 하네."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해줄 수도 있었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파티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얘기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설명해서 얻을 게 없었으니까. 지호는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고, 부모님은 관심도 없을 거였다.
최영순 아주머니만이 그런 대화를 들을 때마다 조용히 눈치를 줬다.
"지호야, 그만해."
그 말이 전부였지만, 그게 이 집안에서 유일한 방어선이었다. 아주머니는 원래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어른이 됐다. 밥을 더 챙겨주거나, 국을 한 그릇 더 떠주는 식으로. 그런 작은 것들이, 그 집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
한편, 이 도시 반대편에는 강태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랑의 유지라는 길드의 마스터. 던전 공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인물이었다.
강태산은 자신이 직접 계약한 메이드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계약 스킬로 만들어낸, 완벽하게 순종적인 존재들. 저택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있었고, 그 저택을 관리하는 인력만 수십 명이었다. 정원사, 요리사, 경호원까지 합치면 백 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그냥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었다.
학교 뉴스에서 강태산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반 아이들은 다들 감탄사를 뱉었다.
"와, 저 사람 진짜 대단하다."
"저 정도면 인생 다 산 거 아니냐."
그 감탄 속에는 동경과 부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나도 처음엔 그냥 다른 애들처럼 감탄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탄이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딱 하나만 생각했다. 저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가, 대체 몇 층이나 되는 걸까.
계산이 안 됐다. 계산할 수 있는 종류의 거리가 아니었다. 재산으로 따지면 몇 자릿수 차이인지도 감이 안 왔고, 스킬로 따지면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그 거리를 재보고 있었다.
그 거리를 좁힐 방법이 있다면, 그건 오직 하나였다. 30층 던전 공략. 학교 프로젝트라고는 해도, 성공하면 실질적인 보상이 있었다. 대학 진학 지원, 장학금,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걸어놓은 조건.
"30층 던전, 공략 성공하면 학비 대주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 던진 조건은 반드시 기억했고, 반드시 그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 말은 조건이었고, 나는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 집에서 뭐라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조건을 다는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신문을 보면서 그냥 흘리듯 던진 말이었다. 마치 오늘 날씨가 어떻다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그 무심함이, 나에게는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말이, 동시에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드는 말이 되기도 한다.
30층.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파티원들의 얼굴이, 강태산의 저택이, 아버지의 무심한 옆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나는 그날 밤, 방에 돌아와서도 그 숫자만 되뇌었다. 30층. 거기까지만 가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무모한 계산이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