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름은 이도윤.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스킬은 연금술사. 세상 사람들이 뭘 뜻하는지도 잘 모르는, 그런 애매한 스킬이었다.
스킬이라는 건 만 열 살이 되던 해에 판정받는다. 국가가 지정한 판정소에 가서 손바닥을 대면 뭐가 됐든 하나가 뜬다. 용사, 성녀, 현자 같은 화려한 것도 있고, 나 같은 연금술사도 있다. 판정소 벽에는 등급표가 붙어 있다. S부터 F까지, 알파벳 하나로 인생이 나뉘는 곳이다. 문제는 화려함의 격차가 인생의 격차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거였다.
아버지 이준혁은 치료술사였다. 소위 힐러. 연봉으로 치면 삼억을 훌쩍 넘기는, 이 도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직업군 중 하나였다. 어머니 박서윤도 같은 치료술사였다. 두 사람이 만나 나를 낳았을 때, 다들 내가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을 거라 확신했다고 한다. 결혼식 사진첩에도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들었다. 축복받은 핏줄. 그 핏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확신은 열 살 판정소에서 산산조각 났다.
연금술사. 판정관이 그 단어를 말했을 때 아버지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웃음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이초였다. 어머니는 그보다 조금 더 걸렸다. 삼초쯤. 판정관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다음 아이를 불렀고,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 내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여덟 살 어린 동생 이지호가 판정소에서 치료술사 판정을 받던 날, 아버지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표정으로 웃었다. 나에게는 한 번도 지어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 상엔 갈비가 올라왔다. 내가 판정받던 날 저녁 상에는 그냥 김치찌개가 올라왔던 걸 기억한다. 세상이 원래 그렇게 아이러니하다.
"형은 그냥 집에서 놀지그래. 어차피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지호가 나를 부르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기생충. 열 살짜리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은 웃었다. 정확히는,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신문을 넘기며 픽 웃었고, 어머니는 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쟤도 참” 했다. 말리지 않는 것도 결국 동의라는 걸,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침 식탁 풍경은 늘 비슷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며 지호의 성적을 물었고, 어머니는 지호의 접시에 반찬을 더 얹어주었고, 나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계란말이는 늘 지호 앞으로 갔다. 국은 지호 게 먼저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밥알만 세듯 조금씩 먹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나를 한 번 쳐다보면, 그 시선에는 늘 같은 말이 담겨 있었다. 넌 대체 뭘 하려고 사냐.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도 없었다. 눈빛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식탁에서 내 편은 딱 한 명이었다. 가정부 최영순 아주머니. 매일 저녁 여섯 시면 정확히 밥을 지어놓고,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밥을 따뜻하게 데워놓던 사람. 정작 부모님은 신경도 안 쓰는 일이었다. 아주머니는 늘 내 몫의 반찬을 따로 덜어놓았다. 지호가 먼저 다 먹어치우기 전에.
"도윤아, 오늘도 늦었네."
"연습 좀 했어요."
"연습이라니, 뭘."
"그냥, 이것저것요."
"이것저것이 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매일 방에서 하는 그 연습이 뭔지 알면, 아마 이 집에서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마저 걱정을 시작할 게 뻔했으니까. 아주머니는 몇 번 더 물었다가, 결국 포기하고 국그릇만 내 앞으로 슬쩍 밀어주었다. 그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연금술사의 능력은 표면적으로는 포션 제조였다. 체력 회복 포션, 마나 회복 포션, 상태이상 해제 포션. 시중에 파는 것보다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정도. 등급으로 치면 하위권. 학교 스킬 등급표에서도 나는 늘 밑에서 세 번째 줄에 이름이 있었다. 담임은 그 줄을 매년 새로 인쇄하면서도 내 이름 위치만은 바뀌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나만 알았다.
그런데 나한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었다.
마법백.
판정소에서 받은 게 아니라, 우연히 얻은 물건이었다. 겉보기엔 낡은 캔버스 가방. 지퍼도 하나 고장 나 있고, 색도 다 빠진, 딱 봐도 그냥 버려질 물건. 길가에 버려진 그 가방을 주워 든 게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아무도 그게 뭔지 몰랐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그 안은 겉과 완전히 달랐다.
무게가 없었다. 공간이 있었다. 안에 뭘 넣어도, 아무리 많이 넣어도, 가방은 여전히 가벼웠다. 처음 그걸 알아챘을 때,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한 시간 넘게 그 가방만 쳐다봤다. 내가 발견했을 때 이미 그 안엔 뭐가 잔뜩 들어차 있었지만, 그건 나중 얘기다.
나는 매일 밤 방문을 잠그고 그 가방을 꺼내 이것저것 넣어보고, 빼보고, 무게를 재보는 걸 반복했다. 책, 물병, 아령, 심지어 한 번은 작은 서랍장까지 넣어봤다. 다 들어갔다. 다 가벼웠다. 아무도 몰랐다. 부모님도, 지호도, 심지어 최영순 아주머니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나조차도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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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그나마 숨 쉴 구석이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 덕분이었다.
김재현. 반에서 제일 시끄럽고, 제일 잘 웃는 애였다. 스킬은 평범한 전사류였는데, 본인 말로는 "세상에서 제일 성실한 딜러"라고 늘 자칭했다. 성적은 나빴지만 기분은 늘 좋아 보였다. 체육 시간마다 목검을 휘두르며 혼자 기합을 넣는 게 유일한 특기였다.
한나은. 재현이랑 정반대로 날카롭고, 장난기 많고, 남 놀리는 걸 좋아했다. 스킬은 궁수. 활을 다루는 재능이 좋아서 학교 대표팀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본인은 그걸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활 잘 쏘는 거로 인생이 안 풀리더라" 는 게 나은의 지론이었다.
"도윤아, 이거 좀 봐줘."
재현이 늘 하는 말이었다. 이거, 라는 건 대체로 포션이었다. 수업 시간에 실습으로 만든 포션이 잘못돼서 색이 이상하게 변했거나, 냄새가 고약해졌거나. 한번은 병 뚜껑을 열자마자 방 안에 있던 애들 절반이 코를 막고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런 걸 손봐주는 데 도가 텄다.
"이건 그냥 버려. 살릴 수 없어."
"에이, 그래도 좀 해봐."
"안 해줄 거야."
"해줄 거잖아. 너 원래 그래."
"안 해준다니까."
결국 해줬다. 늘 그랬다.
나은은 그 옆에서 늘 낄낄거렸다. "쟤도 참, 알면서 매번 부탁하네." 재현은 그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부탁하는 쪼그만 자존심이라도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은은 그런 재현을 볼 때마다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고, 재현은 그럴 때마다 아프다고 소리치면서도 웃었다.
이 두 사람 앞에서는, 집에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조용하지 않아도 됐고, 존재를 지워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셋이 나란히 앉아 급식판을 두고 티격태격했고, 야자 시간엔 몰래 매점 빵을 나눠 먹었다.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그 사소함이 나한테는 유일한 안온함이었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그 안온함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
그날 아침, 조례 시간에 담임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학교 게시판에는 이미 공고가 붙어 있었다.
서울 지하 30층 던전, 졸업 프로젝트 실습 파티 배정 명단.
이 학교, 정확히는 이 나라의 모든 고등학교 3학년들은 졸업 전에 던전 실습을 통과해야 했다. 성적, 대학, 심지어 취업까지, 던전 실습 성과가 절반은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실습을 위해 삼 년 내내 체력 훈련이며 이론 수업이며 별의별 걸 다 했다. 나는 원래 하위권 파티에 배정돼 있었다. 나 같은 스킬끼리 모아놓은, 딱히 기대할 것 없는 다섯 명짜리 파티. 그 명단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예상했던 자리라 별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명단이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이 게시판 앞에 몰려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교실 안까지 들려왔다. 누군가 "야, 이거 진짜야?" 하고 외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재현이 창가 자리에서 목을 쭉 빼고 게시판 쪽을 봤고, 나은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봤다.
"이도윤. 잠깐 교무실로."
담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나는 재현과 나은의 얼굴을 힐끗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현이 입모양으로 뭐라뭐라 물었는데, 나도 몰라서 대답할 수 없었다. 나은은 그냥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마치 뭔가 알고 있는 사람 같은 표정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걘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교무실 문을 열자, 담임이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파티 재배정 통지서. 종이가 손에 들어오는 순간, 손끝이 살짝 떨렸다. 왜 떨렸는지는 그때는 몰랐다.
원래 소속 파티, 결원 발생으로 해체.
신규 배정 파티: A-1조.
A-1조.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A-1조는 이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엘리트 스킬들만 모아놓은 파티였다. 용사, 성녀, 중기사, 닌자, 현자. 매년 던전 실습 우승은 거의 이 조에서 나왔다. 학교 신문에도 걸리고,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도 오는 그런 조였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연금술사 하나가 추가된다는 얘기였다.
담임이 나를 보며 물었다.
"괜찮겠니?"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어차피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담임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굳이 물어보는 게 이 사람의 방식이었다. 형식적인 배려였지만, 그런 형식이라도 던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왜 갑자기 저예요?"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야. 나도 자세히는 몰라."
"결원이 왜 났는데요?"
"그것도 나는 몰라. 알려주지도 않았어."
담임은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마치 자기도 이 상황이 낯설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들고 교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면서 몇 번이나 통지서를 다시 읽었다. 글자는 그대로였다. 바뀔 리가 없었다.
교실로 돌아오자 재현과 나은이 동시에 달려왔다.
"뭐래, 뭐래."
"너 A-1조로 갔다는 게 진짜야?"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학교라는 곳이 그렇다. 뭐든 삼 분 안에 온 학년에 퍼진다. 나는 대답 대신 통지서를 그냥 내밀었다. 재현이 눈을 크게 뜨고 종이를 훑었고, 나은은 옆에서 같이 들여다보다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야, 이거 완전 로또 아니야?"
"로또는 아닌 거 같은데."
"왜, 엘리트 조에 껴서 실습 나가는 건데. 대박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 배정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시간을 만들어낼 거라는 것. 그 예감이 정확히 맞았다는 걸, 나는 그날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