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녀들의 마지막 방패

4화

기지로 돌아온 이도현은 며칠 동안 표정을 숨기는 데 실패했다. 얼굴에 뭔가 남아 있었다. 본부에서 들은 이야기, 카르네아데스 작전이라는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표정 관리는 그의 전공이 아니었다. 소녀들도 눈치를 챘다. "관리관님, 요즘 이상해요." 유채린이 식사 중에 물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본부 다녀오시고 나서부터." 백설이 옆에서 덧붙였다. "눈 밑이 까매졌어요." 백설은 그 말을 하며 이도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별일 아니에요." 이도현은 애써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숟가락질이 느려졌고, 시선이 자꾸 식탁 아래로 떨어졌다. 소녀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캐묻는다고 나올 사람이 아니었다. 서하늬는 그날 이후로 그를 더 자주 지켜보았다. 말은 걸지 않았지만, 시선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훈련 중에도, 식사 중에도, 그녀의 눈은 습관처럼 이도현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것은 걱정이었다. 서하늬 자신도 정확히 이름 붙이지 못했지만, 확실히 걱정이었다. 그녀는 원래 관찰에 능한 사람이었다. 훈련장에서 상대의 호흡 하나로 다음 동작을 읽어내는 감각을, 사람의 표정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훈련장 정리를 마친 이도현이 관리실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앞을 막았다. 복도 조명이 낮게 깔린 시간이었다. "뭔가 있죠." 서하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도현이 시선을 피했다. "본부 다녀온 날부터 관리관님은 저를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서하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밥 먹을 때도, 훈련 지시할 때도. 눈을 안 맞춰요." "저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에요."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피할 곳이 없는 자세였다. 이도현은 잠시 침묵했다. 말해야 할까, 말하지 말아야 할까. 그 갈등이 그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말하면 저 아이를 위험에 끌어들이는 거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하지 않으면, 저 아이는 계속 이렇게 나를 의심할 거다.' 어느 쪽도 답이 아니었다.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 그가 겨우 답했다. "아직이라는 건, 언젠가는 말할 거라는 뜻이겠죠." 서하늬가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 눈빛에는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그때가 오면, 저한테 제일 먼저 말해요." "...그러죠." 이도현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서하늬는 그 이상 묻지 않고 몸을 옆으로 비켰다. 지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뭔가를 혼자 짊어지려 하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는 것을, 그녀는 곧 알게 될 것이었다. +++ 이도현은 그날 밤 오래전 헤어진 동료를 떠올렸다. 최인석. 관리원 정보국 소속으로, 이도현이 담당관으로 배치되기 전 함께 신입 교육을 받은 사이였다. 당시 최인석은 말수가 적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정보 계통으로 갈 사람이라는 건 교관들도 일찌감치 알아본 자질이었다. 한때는 가까웠지만, 최인석이 정보국으로 발령된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관리원 내부에서 담당관과 정보국 사이의 접촉은 권장되지 않았다. 서로 조심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관리원 내부 사정을 알려면, 그만한 인맥이 없었다. 카르네아데스라는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무엇을 뜻하는지, 본부 안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정보국 안에만 있을 터였다. 이도현은 오래된 통신 코드를 뒤져 최인석의 개인 채널을 찾아냈다. 몇 년 동안 열어본 적 없는 목록이었다. 이름을 발견했을 때 손끝이 잠시 멈췄다.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냈다. '카르네아데스 작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확인이 필요하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이도현은 통신기를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답장은 하루 넘게 오지 않았다. 이도현은 그 하루 동안 몇 번이나 통신기를 확인했다. 훈련 지시를 내리다가도, 식사 시간에도, 손이 저절로 통신기로 향했다. 아무 표시도 없는 화면을 볼 때마다 속이 가라앉았다. '혹시 이것도 위험한 일이었나.' 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카르네아데스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그는 이미 발을 들인 상태였다. 답장이 온 것은 다음 날 밤늦게였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 얘기는 통신으로 할 게 아니다. 직접 만나야 한다.' 장소와 시간이 뒤이어 도착했다. 기지 인근의 중립 정거장, 사흘 뒤였다. 이도현은 그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계심은 짧지 않았다. '뭔가 큰 것이 걸려 있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최인석 같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반응한 적은 없었다. 교육 시절, 최인석은 위험을 과장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통신으로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답은 이미 절반쯤 나온 셈이었다. +++ 다음 날, 이도현은 훈련 일정을 조정해 하루 휴가를 얻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개인 정비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다. 휴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이도현은 서류 한 줄 한 줄을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작성했다. 의심을 살 만한 흔적은 남기지 않아야 했다. 출발 전, 그는 관리실 서랍에 태블릿을 숨겨두었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 본부에서 얻은 단편적인 정보, 최인석과의 통신 기록까지 전부 담긴 문서였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문서가 남아 있어야 했다. 증거였다. 누군가는 진실을 알아야 했고, 그 누군가가 자신이 아니게 되더라도, 문서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서하늬가 셔틀 승강장까지 배웅을 나왔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고, 그녀는 얇은 겉옷 하나만 걸친 채 서 있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개인 정비입니다." 이도현이 짐짓 태연하게 답했다. "거짓말이네요." 서하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 이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오면 다 말해요." 서하늬의 목소리에는 명령 같은 단호함이 있었다. "약속이에요, 관리관님."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두 발을 그 자리에 단단히 붙인 채, 그가 셔틀에 오르는 순간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셔틀 문이 닫히고, 창밖으로 기지가 점점 작아졌다. 멀어지는 건물들 사이로 서하늬의 모습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아이에게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진실이 무겁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었다. 셔틀이 궤도에 오르는 진동이 등받이를 통해 전해졌다. 그 진동을 느끼며, 이도현은 사흘 뒤 정거장에서 마주할 최인석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얼굴로 나타날지, 어떤 말을 꺼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길한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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