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눈밭에 나동그라진 채, 나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차가운 눈이 뒷목과 등허리 사이로 스며들어 살갗을 파고들었고, 그 냉기는 마치 수백 개의 바늘로 찔러대는 듯했다. 입안에서 배어난 피가 눈 위로 뚝뚝 떨어져 붉은 자국을 남겼고, 그 색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얀 세상 위에 흩어진 그 붉음이 마치 내 목숨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흔적처럼 느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치솟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인지, 아니면 내장이 상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 정도로 이미 숨이 넘어갈 듯이야."
먼저 나섰던 사내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이 눈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뽀득, 뽀득.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그 소리가 마치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의 발걸음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쓸데없이 반항이나 하니까 이런 꼴이 나는 게지."
그가 다시 말을 던지며 곤을 어깨에 걸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옆구리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팔에 힘을 주려 해도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그저 눈밭에 손바닥을 짚은 채 헐떡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어라."
유현성이 뒤에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 위에 앉은 그의 모습이 시야 가장자리에 걸렸다. 자색 비단으로 지은 겉옷이 눈빛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그 화려함이 지금 이 순간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런 종놈 하나 죽인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느냐만, 그래도 우리 아버지께서 시끄러운 일은 만들지 말라 하셨으니."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았고, 그저 귀찮은 벌레를 대하는 듯한 무심함만이 어려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마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 시선이, 매질보다도 더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차피 저 놈은 늙은 도사놈에게 돌아가서 훌쩍거리겠지."
'사부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통증보다 먼저 억울함이 치솟았다. 사부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내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고, 나이 든 쪽이 다시 곤을 들어올렸다. 그 나무 몽둥이의 끝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옆으로 굴렸다.
- 콱!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곤이 내려꽂혔고, 눈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곤이 파고든 자리가 움푹 꺼진 것이 보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 자리에는 눈이 아니라 내 머리가 있었을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팔다리는 이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서려 애를 썼다. 손톱이 얼음 속을 긁으며 부러지는 감각조차 통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망쳐야 한다. 여기서 죽으면 사부님은...'
그 뒷말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곤이 다시 날아왔다.
- 퍼억!
등을 정확히 가격당한 나는 눈밭 위로 다시 나뒹굴었고, 온몸에서 뜨거운 통증이 번쩍이며 퍼져나갔다. 마치 등 전체가 불에 타는 듯한 감각이었고, 그 뜨거움과 눈의 냉기가 뒤섞여 오히려 더 극심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숨을 쉴 수 없었다.
폐가 짓눌린 듯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목구멍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시야가 흐려지며 사방이 하얗게 번지는데, 그 와중에도 목에 걸려 있던 목재 상자의 온기만이 유일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지독한 냉기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법 오래 버티는군."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감탄인지 비웃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어조였다.
"이만 정리하지."
곤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나는 그것을 피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저 눈을 질끔 감으며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사부님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언제였던가. 그 주름진 얼굴과 인자한 눈빛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낮은 신음과 함께, 사내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챌 여력조차 없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자."
유현성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저런 놈에게 더 힘을 쓸 필요는 없지."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고,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밭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말발굽이 눈을 밟는 소리가 하나씩 멀어질 때마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온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듯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고, 그저 차가운 눈의 냉기만이 뺨을 스치고 있었다. 눈꺼풀에 내려앉는 하얀 조각들이 녹지도 않은 채 쌓여가는 것이 느껴졌다.
'춥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었다.
의식이 서서히 가물가물해지는 그 순간, 목에 걸린 상자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떨림은 점점 뚜렷해지며 가슴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상자 안에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숨을 쉬듯, 일정한 박동을 가지고 진동하고 있었다.
'뭐지.'
눈을 뜨려 해도 눈꺼풀이 무거워 뜰 수가 없었다. 몸은 이미 죽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의식만은 그 이상한 감각에 붙들려 있었다.
온기가 상자에서부터 스며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서서히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목덜미에서 시작된 그 온기는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등과 옆구리로 흘러들어갔다.
- 우웅...
낮은 공명음이 상자 안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종이 울리는 것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상자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어스름한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감긴 눈꺼풀 너머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밭 위에 엎드린 몸 아래로, 그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 눈을 조금씩 녹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괴검 노인님...'
3년 전, 죽어가던 그 노검객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다. 깊게 파인 주름과, 그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던 두 눈동자. 그가 마지막으로 건넸던 이 목재 상자의 무게가 지금 이 순간 유난히 뚜렷하게 느껴졌다.
"3년 뒤에 다시 오겠다."
그 약속이 아직 지켜지지 않았는데, 나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리는 듯했고, 그 기억이 흐려져가는 의식을 붙잡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온몸에 스며드는 온기가 점점 강해지며, 옆구리와 등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서서히 무뎌지기 시작했다.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나는 그 이질적인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고통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다.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웠고,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온기였다. 마치 오래전에 잊었던 누군가의 손길이 다시 닿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살고 싶다.'
그 짧은 한마디가 온몸을 관통하듯 지나갔다. 살고 싶다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무언가 거대한 것이 깨어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