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전례가 없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하고 나는 되물었다. 슬라임 몇 마리 잡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한 반응이라 오히려 의심이 앞섰는데, 아리아의 설명은 그런 의심을 순식간에 뭉개버렸다.
"던전 시스템은 탐사자의 첫 관문 통과 결과를 다각도로 채점합니다. 처리 속도, 데미지 효율, 위험 회피율, 그리고 자원 소모 대비 성과. 이 네 항목 모두에서 마스터의 결과는 상위 0.001% 이내에 해당하며, 특히 자원 소모 대비 성과 항목에서는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하고 아리아가 담담하게 읊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목검 하나로 대충 휘두른 게 전분데." 그러자 아리아는 곧바로 반박해왔다. "정확히는 목검을 휘두른 게 아니라, 목검을 매개로 시공전함의 함포를 발사하신 겁니다." 아,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슬라임 세 마리를 상대로 함포를 쐈다니, 파리 잡는 데 대포를 동원한 셈이었다. 낭비였다면 낭비였을 텐데, 시스템은 그걸 낭비가 아니라 효율의 극치라고 평가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곱씹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시공전함의 함포 사격이라는 게 애초에 인간의 신체 능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화력이었으니까, 초보자용 던전에서 그런 무기를 쓴 것 자체가 반칙이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비유하자면 동네 배드민턴장에 전차를 끌고 가서 셔틀콕을 격추한 셈이었다. 규칙 위반이라 부르기엔 애매하고, 상식 위반이라 부르기엔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상황.
[등급 판정: SSS - 시스템 최초 기록]
[해당 결과는 던전 관리국 중앙 서버에 자동 보고됩니다.]
'자동 보고'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살짝 등이 서늘해졌다. 국가 기관에 내 이름이 자동으로 올라간다는 게,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왠지 불편했다. 세금 고지서 받는 기분이랄까. "이거 저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죠" 하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아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단순 기록 보고입니다. 다만 관리국이 마스터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마스터의 스킬 '시공전함'은 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미분류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미분류라는 게, 그냥 이름 없는 스킬이라는 뜻인가요?"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정확히는, 시스템이 참조할 수 있는 기존 카테고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검술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소환술도 아닙니다. 관리국의 분류 알고리즘은 마스터의 스킬을 '알 수 없음'으로 처리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리아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왠지 마음이 놓였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니, 일단은 좋은 소식처럼 들렸다. 세상에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기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지쳐서 통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잠시 숨을 골랐다. 온몸의 근육이 마치 방금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뻐근했는데, 정작 실제로 한 일은 목검 몇 번 휘두른 게 전부였으니 이 피로감의 정체가 뭔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아마 함포를 발사할 때마다 소모되는 게 근육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정신력이나 마력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던전의 은은한 푸른빛이 천장에서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실감이 밀려왔다. '나, 방금 뭔가 큰일을 해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통장 잔액은 여전히 47,200원이라는 사실이 그 실감을 곧바로 눌러버렸다. SSS 등급이라는 게 대체 통장에 몇 원이나 찍히는 건지, 그런 실용적인 궁금증이 감동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그 자리에 누운 채로 아리아에게 물었다. "이거,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짜리예요?" "환산 불가능합니다. 다만 관리국 정산 시스템을 통해 별도의 특별 보상이 지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라는 게 몇 퍼센트인데요?" "산정 불가능합니다." 대화가 도돌이표를 그리는 걸 느끼며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
그 시각,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던전 관리국 중앙 상황실에서는 뜻하지 않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 오류 아닙니까" 하고 상황실 요원 하나가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신규 탐사자 한 명이 3등급 초심자 게이트에서 SSS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시스템 최초 기록으로요."
"장비 이상 여부부터 확인해봐" 하고 팀장급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지시했지만, 요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장비는 정상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쓴 스킬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미분류 항목이라는 겁니다. '시공전함'이라는 이름인데, 저희 쪽 스킬 목록 어디에도 매칭되는 게 없습니다."
"미분류 스킬이 초심자 게이트에서 SSS를 찍었다는 게,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하며 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그의 뇌리에는 지난 십 년간 관리국에서 근무하며 봐온 수천 건의 등급 기록들이 스쳐지나갔는데, 그 어떤 것도 이번 사례와 비슷한 게 없었다는 게 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신입 탐사자가 등급 시스템의 허점을 노려서 편법으로 점수를 뻥튀기했다는 사례도 몇 번 봐왔고, 반대로 진짜 재능이 시스템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어버린 사례도 드물게 있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신입의 우연한 대박인지, 아니면 시스템 자체의 오류인지, 그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데이터 로그 좀 띄워봐" 하고 팀장이 지시하자, 요원이 곧바로 화면에 전투 기록을 불러왔다. 짧은 영상 속에서 한 남자가 목검을 든 채 슬라임을 향해 팔을 뻗는 장면이 흘러나왔는데, 그 순간 화면 한 귀퉁이의 데미지 카운터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숫자가 세 자릿수를 넘어 네 자릿수로, 그리고 순식간에 다섯 자릿수까지 뛰어오르는 걸 본 요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초심자 게이트 슬라임 상대로 나올 수 있는 수치가 아닌데요." "그러니까 하는 소리 아닙니까." 팀장의 목소리에도 짜증인지 당혹인지 모를 떨림이 섞여 있었다.
"신원 조회는요" 하고 팀장이 물었지만, 요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답했다. "등록된 개인정보는 있는데, 이준서라는 이름의 35세 남성입니다. 이전 활동 기록이 전혀 없는 완전 초심자입니다. 프로필상 특이사항도 없고요." "직업은?" "일반 회사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최근 실직 상태로 변경됐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팀장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실직자가 시스템 최초 기록을 세웠다..." 어딘가 소설 같은 전개라, 오히려 더 믿기지가 않았다.
"완전 초심자가 시스템 최초 기록을 세웠다" 하고 팀장이 그 문장을 되씹듯 중얼거렸다. "이거 위에 보고해야 하는 사안입니다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섭니다."
상황실 안에서는 곧바로 의견이 두 갈래로 갈렸다. 한쪽은 즉시 접촉해서 신원을 확보하고 관리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직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니 조용히 지켜보며 추가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이례적인 케이스는 섣부르게 접촉했다가 오히려 반발을 살 위험이 있습니다"라는 게 후자 쪽의 논리였는데,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지만 동시에 답답한 느낌도 있었다. 전자 쪽에서는 "그러다가 다른 국가 기관이나 민간 단체가 먼저 접근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라며 반박했지만, 결정적인 근거가 부족한 이상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추가 관찰'이라는 애매한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일단은 지켜봅시다" 하고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초심자 게이트 수준이면 다음에 또 등장할 겁니다. 그때 다시 판단하죠." 그러면서 그는 화면 속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는데,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는 게, 나중에 그가 회고한 소감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순진한 예측이었는지는, 그로부터 며칠 후에야 드러날 일이었다.
*
한편 나는 그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그날 저녁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온몸은 근육통으로 뻐근했지만, 마음만은 오랜만에 가벼웠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면서,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이 꿈은 아니었는지 몇 번이나 되짚어봐야 했다. 목검, 슬라임, 함포, SSS. 단어들만 늘어놓으면 어느 것 하나 서로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게 다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리아는 이동 중에도 계속 데이터를 정리하며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다. "마스터, 오늘 전투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공전함의 발동 조건을 일부 유추했습니다. 함포 사격은 마스터가 '결정적인 순간'이라 판단하는 지점에서 자동으로 개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결정적인 순간이라니, 그게 무슨 감각적인 기준이야'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동시에 뭔가 힌트를 얻은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제가 위기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함포가 잘 나온다는 거예요?" "정확한 인과관계는 추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만, 현재까지의 표본으로는 그런 경향성이 관찰됩니다." 표본이 세 번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 '경향성'이라는 말도 어딘가 성급해 보였지만,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은 뭐라도 실마리가 반가운 시기였으니까.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를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나는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력서에 쓸 자기소개서 문구를 고민하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시스템 최초 기록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이 간극이 너무 커서 오히려 헛웃음이 났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여전히 계란 두 개와 김치 반 통뿐이었다. 나는 라면을 끓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봤다. SSS 등급, 시스템 최초 기록. 그 문구들이 이상하게도 지금 이 초라한 부엌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 괴리감이 오히려 웃겼다.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운 남자가 삼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하는 문장을 상상하니 실소가 나왔다. 냄비 속 물이 끓어오르는 걸 보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관리국에서 나를 특정하지 못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조용히 던전을 오가며 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는 이 익명성이 깨지는 순간이 오는 걸까. 그런 걱정을 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라면 봉지를 뜯어 면을 냄비에 넣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서은채의 채널에 접속했다. 화면 속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는데, 그 감정을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나로서는 아직 정리가 안 됐다. 새 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다음 주, 저 새로운 던전 도전합니다!」였다. 썸네일 속 그녀는 여느 때처럼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 어떤 위험이 숨어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