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섯 살에 내려놓은 이름

2화

마차는 해가 기울기 전에 저택에 도착했다. 바퀴 소리가 자갈길 위에서 오래도록 울리다가, 마침내 뚝 끊겼다. 마부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강태준이 먼저 내렸다. 담장은 높았고, 정원엔 손질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보육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였다. 보육원의 마당은 흙바닥이었다. 여기는 자갈 하나까지 정돈되어 있었다. 그 차이가 주는 위압감에, 아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이다.' 그는 그렇게 되새겼다. "오늘부터 이곳이 네 집이다." 강태준이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억지스러움은 없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윤서연도 뒤따라 내리며 아린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작은 손이었지만, 온기가 분명했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녀가 말했다. "여긴 이제 네 집이니까." 현관 앞에 하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린의 백발로 쏟아졌다. 누군가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누군가는 애써 표정을 지웠다. 하지만 시선을 완전히 거두는 사람은 없었다. '익숙해져야 한다.' 아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전생에도 이런 시선은 익숙했다. 특별하다는 것은, 언제나 관찰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었다. 집사로 보이는 노년의 사내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목소리에는 예의가 담겨 있었지만, 그 아래 깔린 것은 조심스러움이었다. 아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 위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인형을 안은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은아." 윤서연이 부드럽게 불렀다. "내려와서 인사하렴." 하은은 내려오지 않았다. 대신 계단 난간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저 애가 누구야." 하은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 될 아이야." 강태준이 대답했다. "아린이라고 해." 하은의 눈이 아린을 향했다. 그 눈에 담긴 것은 호기심이 아니었다. 경계였다. 눈동자가 아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마치 위협의 크기를 재는 것처럼. "싫어." 하은이 말했다. 짧고 단호했다. "하은아." 윤서연이 다시 불렀다. 목소리에 당황이 섞여 있었다. "싫다고!" 하은은 소리를 지르더니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토끼 인형이 계단 모서리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인형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적막이 흘렀다. 하인들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윤서연이 서둘러 인형을 주워 들었다. 흙 묻은 인형을 손으로 털어내며, 그녀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구나. 아직 어려서 그래." "괜찮습니다." 아린은 그렇게 답했다. 목소리에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저 아이의 반응은 당연하다.' 그는 그렇게 정리했다. 가족의 자리를 낯선 아이가 차지하러 왔다는 것을, 여섯 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강태준은 굳은 표정으로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쫓아가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냥 두자." 그가 말했다. "억지로 화해시키려 하면 오히려 더 나빠질 거다." 윤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에는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다. +++ 그날 밤, 아린에게는 작은 방이 주어졌다. 하은의 방 바로 옆이었다. 방 안에는 새 이불과 작은 책상, 그리고 창가에 놓인 화분 하나가 있었다. 누군가 미리 신경 써서 준비해둔 흔적이었다.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라." 강태준이 문 앞에서 말했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배려는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아린이 고개를 숙였다. 윤서연이 뒤이어 다가와 이불을 정돈해주었다.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이. "내일부터는 선생님도 붙여줄 거야. 예의범절이랑 기초 마법 수업이랑." "저를 왜 데려오셨습니까." 아린이 물었다. 그 질문에 윤서연의 손이 잠시 멈췄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하나 더 키우고 싶었어. 하은이 외롭게 자랄까 걱정이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던전 탐험을 다니느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어조가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거야." 윤서연이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은이도 널 가족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믿어."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데려온 아이가, 오히려 외로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아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박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윤서연이 방을 나서기 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은이가 며칠 못되게 굴어도 이해해주렴. 나쁜 아이는 아니란다." "알고 있습니다." 아린이 답했다. 윤서연은 그 대답에 잠시 아린을 바라보았다. 여섯 살 아이의 얼굴에서, 그녀는 어른 같은 침착함을 발견했다. 그것이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 혼자 남았다. 아린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정원의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나무들이 서로 몸을 맞대며 소리를 냈다. 스산한 소리였다. 벽 너머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은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엄마 아빠는 이제 저 애만 좋아할 거야." 흐느낌 사이로 그런 말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제 필요 없어..." 뒤이어 그런 말도 들렸다. 아린은 그 소리를 한동안 듣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버려짐. 대체됨. 여섯 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두려움이었다. 아린은 자신의 전생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있었지만, 늘 바빴다. 학교 성적표를 내밀어도 무관심했던 얼굴들. 명절이면 가족끼리 모여야 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웃음을 짓던 저녁 식탁. 그런 기억이 지금의 하은과 겹쳐 보였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아린은 생각했다. '지금 저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었다. 울음소리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잦아들었다. 아마 지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린은 그제야 침대에 누웠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낯선 냄새가 나는 이불 속에서, 아린은 눈을 감았다. '이 저택에서 살아가려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아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해가 뜨기 무섭게, 저택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이미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강태준과 윤서연이 먼저 자리에 앉았고, 아린도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하은이 계단을 내려왔다. 어젯밤의 울음 흔적이 눈가에 아직 남아 있었다. 부어 있는 눈두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은은 식탁을 한 번 훑어보더니, 아린의 맞은편에 앉기를 거부하고 자리를 옮겨버렸다. 굳이 강태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아, 그의 팔을 붙잡았다. 윤서연이 눈짓으로 말리려 했지만, 강태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냥 두라는 뜻이었다. 식사는 조용히 진행되었다. 하은은 수프를 뜨는 척만 하고, 계속 아린 쪽을 흘긋거렸다. 시선이 마주치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수프를 떠먹었다. 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신경은 온통 식탁 위의 긴장감에 쏠려 있었다. 윤서연이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오늘은 선생님이 오실 거야. 아린이, 하은이 둘 다 함께 수업 들으면 좋겠구나." "싫어." 하은이 즉각 대답했다. 숟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으며. "하은아." 강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경고의 의미가 담긴 어조였다. 하은은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이 저택에서의 나날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란 것을, 아린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현실이 될 것이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