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던전으로 향했다.
고시원 방문을 열고 나서기 전에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방값을 아끼려면 이 시간에 나가서 최대한 오래 밖에 있어야 했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명멸했다.
벽에는 곰팡이 얼룩이 세로로 길게 번져 있었다.
옆방 아저씨와 마주쳤다.
아저씨는 늘 입는 회색 추리닝 차림이었다.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늘도 일찍 나가네." 아저씨가 말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다 애 몸 상해." 아저씨가 혀를 찼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밖으로 나오자 편의점 앞에 삼각김밥 폐기 시간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오전 열 시.
그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버티면 삼각김밥 하나는 얻을 수 있어.'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참치마요 아니면 전주비빔.'
'둘 다 좋아.'
던전 입구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 걸렸다.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물 한 병을 뽑을까 고민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주머니에 있었다.
결국 그냥 지나쳤다.
던전 입구에 도착해 스마트폰을 켰다.
채널 구독자 수는 여전히 9명이었다.
어제와 똑같은 숫자였다.
리아공식 계정이 올린 댓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에이야, 나 너 찾을 거야."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뭘 어떻게 찾겠다는 거지.'
'설마 진짜로 찾아오겠어.'
나는 애써 그 생각을 지웠다.
일단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은 조용히 슬라임 몇 마리만 잡고 끝내려 했다.
방송 화면에 시청자 수가 떴다.
2명.
어제보다 한 명이 늘었다.
던전 입구를 지나 1층 통로로 들어섰다.
벽에 이끼가 낀 곳을 조심스레 짚으며 걸었다.
슬라임 한 마리가 구석에서 물결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검을 뽑아 슬라임의 핵을 정확히 찔렀다.
슬라임이 퍽 소리를 내며 터졌다.
젤리 같은 액체가 바닥에 흩어졌다.
"오, 잘 잡네." 채팅창에 짧은 반응이 올라왔다.
나는 씩 웃었다.
이런 순간이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던전 2층 통로를 지나던 중, 익숙한 파란빛이 다시 시야 끝에서 스쳤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찾았다!" 리아가 통로 끝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어, 어떻게 여기..." 나는 뒷걸음쳤다.
연습생 시절 유니폼처럼 딱 맞는 전투복에 파란 라인이 새겨져 있었다.
허리에는 지팡이 대신 짧은 채찍형 무기가 걸려 있었다.
"네 방송 봤지." 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위치 태그 보고 왔어!"
나는 그제야 방송 설정에서 게이트 위치가 자동으로 노출됐다는 걸 깨달았다.
초보 방송자용 기본 설정이었다.
설정을 바꿀 생각조차 못 했었다.
'실수했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꺼야 해.'
"저, 저 오늘은 좀 바빠서요."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에이!" 리아가 소리쳤다.
"나랑 얘기 좀 해!"
나는 대답 없이 은신 스킬을 켜고 좁은 통로로 빠르게 도망쳤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숨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벽을 따라 붙었다.
리아의 발소리가 뒤에서 들리다가, 이내 파란 궤적이 통로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라피도 마법이었다.
방송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리아의 상징 같은 스킬이었다.
순식간에 리아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헥, 헥."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벽에 손을 짚었다.
"도망 진짜 빠르네." 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근데 나보다 빠른 사람은 없어."
나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너 몇 살이야, 진짜로?" 리아가 물었다.
"나이가 이상해. 몸이랑 안 맞아."
'뭘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지.'
나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벌써 눈치챈 건가.'
"여덟 살이요." 나는 겨우 대답했다.
"거짓말." 리아가 바로 받아쳤다.
"발 크기, 걷는 속도, 눈빛... 다 안 맞아."
리아는 발을 보는 걸 좋아하는 애였다.
그건 방송에서도 유명한 습성이었다.
다른 배신자들의 발을 보고 평가하는 코너까지 있었다.
한 번은 그 코너에서 어떤 참가자의 발을 보고 "이 발로는 절대 도망 못 쳐" 라고 단언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이 실제로 맞았다.
그 정도로 리아의 감은 정확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무섭게 느껴졌다.
'저 눈이 지금 내 발을 보고 있어.'
나는 다리를 슬쩍 뒤로 숨겼다.
"저 진짜 가야 돼요." 나는 다시 옆으로 빠지려 했다.
그때 통로 저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 여기 있었어?"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키가 무척 컸다.
정장 재킷에 던전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서연 언니!" 리아가 손을 흔들었다.
서연이 나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표정에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누구야." 서연이 물었다.
말투가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내가 구조 사건 때 만난 애야!" 리아가 신나서 대답했다.
"채널 '에이' 운영하는 애인데, 뭔가 이상해!"
서연이 나를 다시 살폈다.
시선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천천히 올라왔다.
그 시선이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구조 사건이면, 구조 배지 등록됐을 거야." 서연이 말했다.
"번호 확인하면 신원 나올 텐데."
"오, 그거 좋다!" 리아가 손뼉을 쳤다.
"서연 언니, 확인해봐!"
"내가 왜." 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취미 활동에 회사 시스템 쓰지 말라니까."
"제발!" 리아가 서연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이번만! 나 진짜 궁금해서 미치겠어!"
리아는 서연의 팔을 놓지 않고 계속 흔들었다.
서연이 짜증 난 표정으로 리아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팔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서연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서연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딱 한 번만이야."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구조 배지 번호.'
나는 그제야 기억났다.
탐험가를 구했을 때, 그 남자가 던진 신고 신호에 내 등록 번호가 자동으로 찍혔다는 걸.
그때는 그 신호가 그저 구조 완료를 알리는 형식적인 절차라고만 생각했다.
설마 그 번호로 신원까지 조회될 줄은 몰랐다.
등록할 때 적었던 가짜 나이와 별개로, 그 번호에는 진짜 개인 정보가 남아 있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거주지까지 전부.
'큰일났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들키면 끝이야.'
도망칠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통로는 좁았고, 리아와 서연이 양쪽을 막고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서연은 이미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화면에 작은 로딩 바가 채워지는 게 보였다.
바가 절반쯤 찼을 때,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