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초능력 택배기사, 용을 줍다

5화

거실 안쪽, 소파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천장에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였다. 체장 2.5미터는 되어 보이는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털은 사방으로 흐트러졌고, 곳곳이 뭉쳐 엉겨 있었다. 눈동자는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눈이 이도현 쪽을 향할 때마다, 목덜미의 털이 곤두서듯 부풀어 올랐다. 한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는 이만했는데..." 손으로 35센티미터 남짓한 크기를 가리켰다. "어제 갑자기 이상한 돌을 삼키고 나서 저렇게 됐어요. 처음엔 그냥 커진 줄만 알았는데, 밤새 저러고 있어서..." 목소리 끝이 잘게 흔들렸다. "저, 저러다 우리 보리가 잘못되는 거 아닐까요..." [던전 생산 허브 삼킨 거네 ㄷㄷ] [저거 오염 진행형이면 위험한데] [집사님 표정 봐... 밤샜다 저거] [근데 이도현 씨 표정은 왜 저렇게 차분함]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이도현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보리를 살폈다. 눈동자의 색, 호흡의 간격, 발끝의 떨림. 전부 오염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신호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보리가 낮게 그르렁대며 몸을 부풀렸다. 거대한 몸집이 부풀 때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복동이가 그의 옆에서 코를 씰룩였다. 작은 몸이 잔뜩 굳어 있었다. '복동아, 뒤로.' 이도현이 손짓하려는 순간이었다. 순간, 복동이가 훌쩍 앞으로 뛰어나갔다. "복동아!" 이도현이 놀라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보리가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콰앙! 복동이가 그대로 벽 쪽으로 튕겨나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작은 몸이 바닥을 굴렀다. '안돼.' 숨이 턱 막혀왔다. 다리가 저절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복동이 괜찮아요??] [도현씨 빨리!!] [아 저거 실제로 맞은 거야??] [집사님 얼굴 하얗게 질림]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이도현은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그 순간,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완전히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손끝에 모여 있던 빛이 평소보다 훨씬 짙게 응축되었다. 번쩍! 거실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한서연이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진정해." 이도현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울렸다. 말 한마디에 실린 무게가, 방 안의 공기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뻗어나간 빛이 보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보리의 거대한 몸이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곧, 저항 없이 빛을 받아들이듯 몸을 낮췄다. 검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지처럼 흩날리던 검은 기운이, 빛에 씻겨 나가듯 사라져갔다. 동시에 복동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절뚝거리며 다가와 보리의 다리에 몸을 붙였다. 낮은 울음소리가 겹쳐졌다. 마치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두 짐승의 울음이 리듬을 맞추듯 이어졌다. 보리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몸을 부풀렸던 근육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몇 분 후, 보리는 완전히 얌전해져 있었다. 체구는 여전히 거대했지만, 눈빛은 처음 만난 순한 고양이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헐...... 성공한 거야?] [복동이랑 소통한 거 맞죠??] [이도현 실력 미친 거 아니에요??] [저 빛은 또 뭐야 처음 보는 색인데] [이거 클립 따가도 됨???] 채팅창이 폭주하듯 올라갔다. 한서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보리의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목소리가 완전히 젖어 있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짜 감사해요..." 이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비는 정산해주세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손끝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옷소매 안으로 손을 숨기며, 그는 애써 표정을 다잡았다. '방금 그건 뭐였지.' 온몸을 뒤덮었던 그 빛. 분명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단순히 마력을 흘려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손끝의 힘이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응축된 느낌이었다. 복동이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볐다. 이도현은 그제야 숨을 길게 내뱉었다. 의뢰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방송 알고리즘에 이도현의 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숫자가 새로 고침 될 때마다 몇백씩 뛰어올랐다. [이거 뭐임 갑자기 조회수 왜 이래] [알고리즘 미쳤나 계속 뜨는데] [협회 관계자 계정 같은데 방금 접속함] [뭐야 진짜 협회에서 보는 거임??] 이도현은 채팅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낯선 아이디 하나가 조용히 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필에는 협회 인증 배지가 붙어 있었다. 닉네임 옆에 붙은 초록색 표식이, 유독 눈에 밟혔다. '벌써 눈에 들어온 건가.' 미신고 유룡. 미분류 능력. 둘 다 협회가 가장 관심 가질 만한 조합이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언젠가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이도현은 오토바이 시동을 걸며 복동이를 돌아봤다. "복동아,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복동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작은 눈이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협회의 눈을 피하려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가야 했다. 아직 등록조차 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던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 이도현의 눈빛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거기라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한 번쯤 들었던 이름, 확실하지 않은 소문. 지금은 그거라도 붙잡아야 했다. 오토바이가 어두운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헬멧 안으로 바람 소리가 파고들었다. 뒤편 화면 속, 협회 계정의 접속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새로 고침 될 때마다 숫자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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