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돌부처가 지은 던전

5화

### 5화 쿵. 지하실 벽 안쪽에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낡은 형광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두 번 깜빡였다. 먼지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가 섞인 지하실 공기가, 그 순간부터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끝이 싸했다. 나는 다홍의 팔을 붙잡았다. "뭔데 이거." "몰라요. 이런 반응 처음 봐요." 다홍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장난기 하나 없이, 말끝이 짧게 끊겼다. 검붉은 빛이 벽을 타고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우리가 심은 마석 씨앗의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 마석 씨앗을 심은 건 겨우 방금 전이었다. 다홍이 정한 이 자리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면 주변 땅의 결이 정리된다고, 다홍이 그렇게 설명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은 그 설명 어디에도 없었다. "씨앗이 먹히고 있어요!" 다홍이 소리쳤다. 손바닥만 했던 마석이 순식간에 절반 크기로 줄어들었다. 동시에 지하실 온도가 뚝 떨어졌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보였다. 계단 쪽에서 불어오던 바람마저 뚝 끊겼다. 마치 이 공간 전체가 무언가에게 삼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걸 억지로 버텼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 돼?" 나는 다홍을 향해 소리쳤다. "저도 처음이라... 잠깐만요." 다홍이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남은 마석 조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검붉은 빛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벽 전체로 번지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콰득. 벽면 어딘가에서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시멘트 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어렴풋한 그림자.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한 실루엣이 벽면에 서서히 떠올랐다. "저건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다홍이 처음으로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실없이 웃으며 나를 놀리던 애였다. 그런 다홍이 지금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저것보다 오래된 느낌이 나요. 저번에 말한 거요." 더 오래된 존재. 며칠 전 다홍이 흐려졌을 때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다홍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동자가 풀린 채로 중얼거렸었다. "이것보다 먼저 있던 게... 아직 남아 있어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금 와서 그게 후회로 돌아왔다. 실루엣이 서서히 지하실 벽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듯 꿈틀거렸다. [남은 시간, 알 수 없음] 초를 셀 겨를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 이런 순간에도 몸은 살길을 찾으려는 건지, 눈이 저절로 지하실 구석구석을 훑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주머니 속 남은 마석 부스러기를 떠올렸다. 이장님 할머니 앞에서 급하게 주웠던, 손바닥의 반의반도 안 되는 작은 조각들. 그때는 그냥 흙바닥에 떨어진 쓰레기인 줄 알고 주머니에 쓸어 담았었다. 할머니가 "그것도 챙겨 가거라" 하며 눈짓하지 않았으면 그냥 버렸을 물건이었다. '이거라도.' 나는 부스러기를 꺼내 바닥에 뿌렸다. 순전히 직감이었다. 오래전 할아버지에게 배운 게 있다면, 나무든 돌이든 결이 어긋난 부분에 힘을 더하면 안 되고, 결을 따라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륵상을 고칠 때도 그랬다. 갈라진 틈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돌의 결을 따라 살살 다듬었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돌한테도 마음이 있는 겨. 억지로 하면 부서지는 거고, 결 따라가면 붙는 겨." 그때는 흘려들었던 말인데,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유일한 지침처럼 다가왔다. 나는 손을 뻗어 바닥에 퍼진 검붉은 빛의 흐름을 살폈다. 결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착각인지 몰라도, 빛이 흐르는 방향에 미세한 결이 있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미세하게 어긋난 줄무늬가 검붉은 빛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다. 눈알이 뻑뻑했다. 깜빡이면 그 결이 사라질 것 같아서 참았다. "다홍아, 마석 씨앗 이쪽으로 밀어봐." 나는 결이 갈라지는 지점을 가리켰다. "거기요? 왜요?" "묻지 말고 일단." 다홍이 반신반의하며 마석 씨앗을 그 방향으로 옮겼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순간, 검붉은 빛이 주춤했다.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 빛의 흐름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됐어요!" 다홍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찰나였지만 지하실 안 공기가 살짝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어붙었던 어깨가 미세하게 풀렸다. '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벽면의 실루엣이 이번엔 더 또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의 방해에 반응하듯, 그림자가 팔처럼 보이는 부분을 벽에서 완전히 떼어냈다. 지지직, 쿵. 손 같은 형체가 지하실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개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기괴한 형상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뒤틀려 있었다. 어떤 건 안쪽으로, 어떤 건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인간의 손이라기보다는, 인간이었던 무언가가 억지로 손의 형태를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홍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의 온도가 얼음장 같았다. 다홍의 손이 이렇게 차가운 건 처음이었다. "오빠."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거, 우리 둘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실루엣의 형체가 완전히 벽에서 떨어져 지하실 바닥에 내려섰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시멘트 바닥이 움푹 꺼지는 소리가 났다.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 같은 게, 벽 전체에서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웃음도, 짐승의 울음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누군가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겹쳐진 것 같았다. 지하실 전체가, 그 소리를 내는 하나의 거대한 입처럼 느껴졌다. '뭐야 이거.' 나는 다홍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바닥이 서로 얼음처럼 차가웠다. 계단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거리가, 지금 이 순간 아득하게 멀어 보였다. 실루엣의 형체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이 있어야 할 자리에, 목이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