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강사님, 그 피는 못 드려요

1화

수련실 바닥에서 향냄새가 올라왔다. 말린 쑥과 백지를 태운 냄새, 그 밑에 깔린 비릿한 쇠 냄새. 서하린은 그 냄새를 이미 여섯 달째 맡아 왔다. 코끝에 익어버린 냄새라 이제는 구역질도 나지 않았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굳고, 손끝이 저리고, 위장이 조여드는 그 순서를. 반년 전, 부모는 유명하다는 강사를 수소문해 이 저택 별채에 들여앉혔다. 곽태산. 삼속성을 지닌 영술사라 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하린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물건을 감정하는 눈이었다. 하린은 그 앞에서 매일 악약을 삼켰다. 한 병에 오백사십만 원짜리, 검은 사기병에 담긴 약이었다. 삼키는 순간 위장이 뒤집히고 뼈마디가 타는 듯 저렸다. 첫 달에는 매일 밤 토했다. 둘째 달에는 열이 올라 사흘을 앓았다. 셋째 달부터는 몸이 적응한 건지, 포기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을 버텨 얻은 게 겨우 속성 하나였다. 오늘, 그 결과가 나왔다. 곽태산은 서안 위에 종이 한 장을 펼쳤다. 누렇게 삭은 종이였다. 가장자리가 손 대면 부스러질 듯 얇았다. 먹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글씨 자체가 살아 움직이듯 표면 위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하린은 그 글씨를 눈으로 좇으려 했지만 자꾸 초점이 흐트러졌다. 글자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 같기도 했다. "딱 하나 남았다." 곽태산이 손가락으로 종이 아래쪽을 짚었다. 빈 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피를 받는 자리였다. 원 안쪽에 미세하게 파인 홈이 있었다. 피가 고이도록 설계된 흠집이었다. 하린의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네 살짜리 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압박이었다. 어른의 정신을 가지고 있어도 몸은 정직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쿵. 쿵. 숨을 깊게 들이쉬어도 폐 안쪽까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게 뭔데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곽태산은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눈은 조금도 웃지 않는 웃음이었다. "사영계약서다. 이걸 찍으면 내가 남은 재능까지 봐서 특별히 지도해 주지." "안 찍으면요." "안 찍으면 넌 여기까지야. 일속성 각성한 애들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곽태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버려지지. 재능 없는 애들, 다 그렇게 됐어." 그 말을 하며 그는 서안 서랍을 손끝으로 툭 쳤다. 서랍 안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린은 그게 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린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먹빛 글자가 빛을 받아 미묘하게 번들거렸다. 〈이건 정상적인 계약서가 아니다.〉 전생의 어느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계약서를 읽던 손끝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종이의 결, 잉크의 냄새, 서명란의 위치. 그 모든 걸 감각으로 구분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 종이는 그 촉감과 달랐다. 종이인데 종이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숨을 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시간?" 곽태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 살짜리가 뭘 생각한다는 거야." 그가 서안 옆에 놓인 은침을 집어 들었다. 바늘 끝이 등잔불에 반짝였다. 길고 가느다란 침이었다. 평범한 침이 아니었다. 침 끝에서 옅은 붉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이런 건 원래 부모가 대신 결정해 주는 거다. 근데 네 부모는 지금 여기 없지." 하린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금은 사랑채에 있다.〉 이 별채까지는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문은 두 겹, 마당을 가로질러야 사랑채였다. 곽태산도 그걸 알고 오늘을 골랐을 것이다. 날짜도, 시간도, 부모가 손님을 맞는 저녁 시간에 맞춰 있었다. 하린은 곁눈으로 문 쪽을 살폈다. 문살 틈으로 저녁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소리를 지른다 해도, 별채 안에서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은침 끝으로 하린의 손등을 겨눴다. "손목 내밀어." "싫어요." "싫은 게 어딨어." 곽태산의 손이 뻗어 하린의 손목을 낚아챘다. 크고 거친 손이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 조여 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린의 팔뚝을 파고들었다. "놔요!" "가만있어. 금방 끝나." 하린은 몸을 뒤틀었다. 발을 뻗어 서안 다리를 걷어찼다. 서안이 흔들리며 등잔이 위태롭게 기울었다. 곽태산의 손아귀가 더 세게 조여들었다. "이게 얌전히 굴어야지."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하린의 팔이 뒤로 꺾였다. 어깨 관절에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울어봤자 이 손이 풀리지 않는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은침이 손등 위로 내려왔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불빛이 벽에 비친 곽태산의 그림자를 크게 늘렸다. 그림자가 하린을 통째로 덮을 것처럼 일렁였다. 그 순간, 하린의 눈앞에서 시야가 이상하게 뒤틀렸다. 【경고: 비정상 계약 체결이 5초 후 진행됩니다.】 낯익은 문구였다. 지난 반년, 악약을 삼킬 때마다 봐 왔던 그 상업적인 말투 그대로였다. 숫자와 조건문, 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문장. 하지만 이번엔 처음 보는 종류의 알림이었다. 색부터 달랐다. 지금까지의 알림창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였는데, 이번 것은 테두리가 붉었다. 〈이거…〉 생각할 틈도 없었다. 하린의 손목에 은침 끝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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