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팬미팅 장소는 홍대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 카페였다.
원래는 그냥 커피나 마시면서 방송 얘기나 몇 마디 나누는 자리인 줄 알았다. 다인이 "가볍게 하는 거예요, 부담 갖지 마세요"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바보였다.
서른 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렸다. 다인이 급하게 대기 줄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많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다인도 놀란 눈치였다. 평소 침착한 그녀답지 않게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나는 카페 구석에 서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훔쳐봤다. 십 년 동안 도축장 구석에서 뼈 발라내던 손으로 마이크를 잡는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났다. 이게 꿈인가? 아니면 그냥 착각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사가 시작됐다. 나는 준비해온 마수 부산물 하나를 꺼내 간단한 해체 시연을 했다. 칼끝이 정확히 관절 사이를 파고들 때마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진짜 손이 예술이다"
작은 감탄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런 반응이, 방송 화면 너머로만 보다가 실제로 눈앞에서 들으니 훨씬 뭉클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사람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게,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시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 따뜻한 질문들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부위를 찾으세요?"
"앞으로도 계속 방송하실 건가요?"
"손목 안 아프세요? 저렇게 오래 하시면..."
한 여성분이 손을 들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프죠. 근데 십 년 하다 보니까 아픈 것도 그냥 일상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낮게 웃었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대답하는 내내 마음이 훈훈했다. 십 년 동안 아무도 물어보지 않던 것들을, 이제야 누군가 궁금해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동안 고생한 게 조금은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행사 후반부, 분위기가 갑자기 뒤바뀌었다.
뒤쪽에서 남자 셋이 우르르 들어왔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문이 열릴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면, 그건 내 착각이었을까.
"어이, 여기가 그 유명한 해체 아저씨 팬미팅이라며?"
한 명이 큰 소리로 떠들며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순식간에 카페 안 공기가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다인이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죄송하지만 여기는 사전 신청하신 분들만..."
"신청? 우리도 신청했거든?"
남자가 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불쾌했다.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고르는 눈빛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현이 지금 가장 정확한 것 같았다.
"어, 너 그 편집자애 맞지? 다인다인?"
"네, 맞는데요..."
"영상 봤어. 뭐 니 덕에 저 아저씨가 뜬 거라고 그러던데."
남자의 말투가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다.
"근데 너 얼굴 실물이 훨씬 낫다? 이렇게 예쁜 애가 왜 그런 아저씨 영상이나 편집해주고 있냐?"
다인의 표정이 굳었다.
"저기, 지금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곤란해? 왜, 우리가 뭐 잘못했냐?"
다른 남자가 다인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옆에 서 있던 세 번째 남자는 낄낄대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번호나 하나 줘봐. 이렇게 유명해졌는데, 팬 서비스 정도는 해줘야지."
"저는 팬 서비스 하는 사람 아닌데요."
다인이 단호하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내 눈에도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다 다시 앉았다. 나설까? 아직은 참아야 하나? 다인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섰다.
"야, 근데 이거 촬영 안 해도 되냐? 아저씨 팬미팅인데 우리도 팬이잖아."
남자 하나가 낄낄거리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다인 쪽으로 들이댔다.
그 순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남자가 나를 돌아보며 코웃음을 쳤다.
"어, 아저씨 왔네? 아저씨 팬 맞거든요? 우리도?"
"팬이면 팬답게 행동하셔야죠."
"뭐래, 아저씨가 뭔데 훈수를 둬?"
남자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
"조용히 좀 있으라 그러세요. 우리가 이 애한테 관심 좀 있다는데, 뭔 상관이에요?"
"관심이 있어도 저분이 싫다고 하시면 그만두셔야죠."
"싫대? 야, 니가 싫대?"
남자가 다시 다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꽉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주변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스마트폰을 꺼내 상황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작게 "저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저기요, 지금 이런 행동 명백한 성희롱이에요. 그만두세요."
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남자 셋의 눈빛이 순간 험악해졌다.
"성희롱은 무슨. 우리가 뭘 했다고?"
"뭘 하긴, 지금 눈으로 보고 계시잖아요. 본인들이 무슨 짓 하고 있는지."
내 말에 남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 아저씨가 진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한 명이 다인의 어깨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쳐냈다.
탁!
"어허, 이 아저씨가?"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졠다.
"당장 손 치워."
"뭐라고 이 씨발?"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카페 안 손님들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다른 남자가 나에게 달려들 듯 어깨를 밀쳤다.
쿵!
나는 뒤로 밀려나며 테이블에 부딪혔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등허리로 테이블 모서리가 그대로 박혔다. 아찔했다.
"도진 씨!"
다인이 놀라서 소리쳤다.
주변에서 누군가 "경찰 부를게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카페 안이 잠깐 웅성거렸다.
남자 셋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경찰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렇게 기세가 죽는 걸 보면, 결국 이것들도 별거 아니었구나 싶었다.
"야,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가자."
한 명이 팔을 잡아끌었다.
남자가 나를 노려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졌다.
"너 오늘 일 후회하게 될 거다. 우리가 누군지 알면 그런 말 못 할걸."
그렇게 세 사람은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몇몇 손님은 놀란 얼굴로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몇몇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든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다인이 다가와 내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괜찮아요. 그보다 다인 씨가 더 놀랐을 텐데."
다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보니, 등허리 통증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다인 씨 때문 아니에요. 저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내 말에 다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행사는 그렇게 어수선하게 마무리됐다. 남은 참가자들에게 사과하고, 다음에 다시 기회를 만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그 남자들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누군지 알면.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술 취한 허세일까? 아니면 진짜 뭔가 있는 걸까.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유독 피곤해 보였다.
그때, 다인이 문자를 보냈다.
[도진 씨, 아까 그 사람들이 SNS에 뭔가 올린 것 같아요]
링크가 첨부돼 있었다.
클릭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다인의 실명과 얼굴 사진,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 위치까지 적나라하게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다인의 집 근처로 추정되는 골목 사진까지 함께.
[저것들이 다인이 신상 턴 거 실화냐]
[아저씨도 조심하세요]
[이거 신고 안 하나요 진짜]
댓글창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다인의 신상이 이렇게 퍼지면,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이 떨려서 스마트폰을 제대로 쥐고 있기도 힘들었다.
화면 속 댓글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