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손, 놀리지 않습니다

3화

심장이 벌렁거렸다. 1만이라는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는지 모른다. 손이 떨려서 화면을 제대로 누르지도 못했다. 스마트폰을 쥔 손가락이 땀에 젖어 미끄러졌다. 잘못 봤나? 다시 봐도 1만이었다. 조회수 1만. 내가? 이 이도진이? 십 년 넘게 클랜에서 반입 담당으로 구르다가 로봇한테 밀려난 그 이도진이? 믿기지 않아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래도 숫자는 그대로였다. 영상을 클릭했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십 년차 해체 전문가의 손 - 진짜 장인이 여기 있었다] 장인.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는 그냥 밥 벌어먹으려고 칼질을 배운 사람인데, 누가 나를 장인이라고 불러준 건 처음이었다. 썸네일 속의 내 손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칼끝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순간을, 누군가 슬로우모션으로 편집해놓았다. 손등에 튄 핏자국까지 예술적으로 보였다. 이게 내 손이 맞나? 다시 봐도 내 손이었다. 영상을 재생했다. 놀랍게도 내가 방송에서 별생각 없이 했던 해체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편집되어 있었다. 배경음악까지 깔려 있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칼질 하나하나에 맞춰 흘렀다. 홍해가 갈라지듯, 아니 이건 좀 과한 비유인가. 그래도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됐다. 살점이 정확한 결을 따라 갈라지는 순간, 음악이 절정에 이르렀다. 댓글창을 내렸다. [손이 예술이다 진짜] [저 아저씨 뭐하는 분임??] [군더더기 없는 동작 미쳤다] [이게 진짜 프로의 손이지] 프로. 그 단어가 눈에 밟혔다. 프로. 나를 자른 회사에서는 그저 예산 절감의 대상이었는데, 화면 너머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프로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이상하게 목이 뻐근해졌다. 댓글을 몇 개 더 읽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설쳤다. 몇 번을 뒤척였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방송 시간이었다. 다음 날 새벽, 방송을 켰다. 시청자 수가 화면에 뜨는 순간, 나는 숫자를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847명. 847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스무 명 남짓 들어오면 많이 들어온 거였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여전히 847이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대박 그 영상 보고 왔어요] [진짜 사람 맞으시죠?] [해체 더 보여주세요] 손이 떨렸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몰라서,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 안녕하세요. 이도진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십 년 넘게 방송판에서 굴렀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인사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다인다인] 그 닉네임이 또 보였다. [안녕하세요!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나는 채팅을 유심히 봤다. 저 편집을 한 사람이 지금 이 채팅창에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저... 다인다인님이시죠? 영상 편집해주신 분?" [네 맞아요! 다인이라고 불러주세요] 다인. 그렇게 서다인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됐다. 방송 중간에 다인은 계속 채팅으로 소소한 팁을 줬다. 카메라 각도, 조명, 목소리 톤까지. [조명 조금만 왼쪽으로 옮기시면 손 그림자가 덜 생겨요] [말씀하실 때 카메라 좀 더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시키는 대로 조명을 옮기고, 카메라를 힐끔거렸다. 신기하게도 채팅창 반응이 더 좋아졌다.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제가 원래 배신 콘텐츠 채널 하거든요. 다른 방송 편집해서 하이라이트 만드는 거요. 구독자는 얼마 안 되지만요 ㅎㅎ] "몇 명이신데요?" [300명대요...] 300명.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처지일지도 몰랐다. 300명짜리 채널을 운영하면서 남의 방송을 편집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런데 그 작은 채널이 나를 이렇게 끌어올린 거였다. 이상한 동질감이 들었다. 우리 둘 다 이 판에서는 끝물이거나, B급이거나, 뭐 그런 취급을 받는 처지였을 텐데. 방송이 끝나고 나는 다인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손가락이 자꾸 멈칫거렸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답장은 금방 왔다. [살긴요, 원래 실력이 있으신 거죠. 저는 그냥 보여준 것뿐이에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보여준 것뿐이라니.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실력은 원래부터 있었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겸손한 말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누군가 나를 봐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 뒤, 방송 도중 익숙한 닉네임들이 채팅창에 나타났다. [김반입] [막내반입러] 후배들이었다. 클랜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반입 담당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 친구들이 내 방송을 봤다고? [선배님 방송 대박났네요!!] [진짜 축하드려요 선배님] [저희도 응원할게요]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래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다... 다들." 목이 메어서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화면 속 채팅창 글자가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서 겨우 초점을 맞췄다. 채팅창을 보니, 후배들이 클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선배님 나가시고 나서 해체 로봇 도입했는데 오류 엄청 나요ㅋㅋ] [결국 외주 다시 알아본다던데요] 외주. 결국 나 대신 사람을 쓴다는 건가. 그 로봇이 그렇게 대단한 척하더니, 결국은 나 하나 대체하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피식 웃음이 났다. 통쾌하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감정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선배님 해고 결정, 사실 예산 문제만은 아니었대요] 순간, 채팅을 다시 읽었다. 눈을 의심했다. 잘못 읽었나 싶어서 다시 위로 스크롤했다.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채팅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심장이 다시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좋은 의미의 벌렁거림이 아니었다. [막내반입러]가 뭔가 더 쓰려는 듯 타이핑 중 표시가 떴다가, 사라졌다. 다시 떴다가, 또 사라졌다. 그 깜빡이는 점 세 개가 이렇게 사람 속을 태울 줄은 몰랐다. 화면을 노려보며 기다렸다.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을 뻔했다. [아 이거 여기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뭔데? 말해줘." [나중에 개인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후배는 방송에서 조용해졌다. 찜찜했다. 예산 문제만은 아니라니. 그럼 뭐가 더 있었다는 건가. 머릿속에서 온갖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누가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나? 아니면 그냥 원래부터 나를 자를 핑계를 찾고 있었던 건가. 어느 쪽이든,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도 천장만 바라봤다. 예산 문제만은 아니었대요. 그 문장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다인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시간 되시면 한번 뵐 수 있을까요? 방송 관련해서 상의드릴 것도 있고요] 답장이 왔다. [네 좋아요! 그리고...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요?]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조금... 중요한 얘기라서요] 중요한 얘기. 어쩐지 그 말이,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았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나서도 한참을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방송으로 인생이 풀리는 것 같았는데, 왜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까. 다인이 할 말이 뭘까. 후배가 하려다 만 말은 또 뭘까. 두 개의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잠을 쫓아냈다. 내일 다인을 만나면 모든 게 풀릴까. 아니면 더 복잡해질까. 어느 쪽이든,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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