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인을 만나기로 한 곳은 클랜 건물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왜 하필 거기냐고 물었더니, 다인은 "자료 조사할 게 좀 있어서요"라고만 답했다.
의미심장한 답이었다. 자료 조사라니. 대체 무슨 자료를 조사한다는 걸까. 클랜 건물 코앞에서.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 습관이었다. 십 년 동안 지각 한 번 안 했던 습관이, 백수가 된 지금도 몸에 배어 있었다. 웃기는 노릇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인이 눈에 들어왔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스무 살 초반쯤. 화면 너머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방송에서는 목소리만 듣고 자막으로 이름을 봤을 뿐인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냥 대학생 같은, 어디서나 볼 법한 앳된 얼굴이었다. 이런 애가 클랜 내부 자료를 파헤치고 다닌다니. 세상 참 알 수 없다.
"안녕하세요, 다인 씨."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다인이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실제로 뵈니까 훨씬 든든해 보이세요."
든든하다는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든든하다니. 방금 전까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울까 고민하던 사람한테 든든이라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최소한 욕은 아니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다인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화면 밝기를 조절하고 창을 몇 개 정리하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했다.
"그, 하시고 싶다던 상의가 뭔가요?"
먼저 물어봤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 그게... 후배들이 방송에서 뭔가 말하려다 만 게 있어서요. 제 해고가 예산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다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도... 그것 때문에 뵙자고 한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인은 노트북 화면을 나에게 돌려 보여줬다. 여명 클랜의 내부 예산 자료였다. 스프레드시트 화면 가득 숫자와 항목명이 빽빽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낮아졌다.
"제가... 배신 콘텐츠 채널 하면서 여러 클랜 내부자료 좀 다루거든요. 익명 제보도 받고요."
익명 제보라.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누가 이런 걸 흘리는지. 하이에나들 틈에서 또 다른 하이에나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셈인가.
화면에는 이번 기 소재 부문 예산이 정리돼 있었다. 셀 하나하나에 숫자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기 보세요. 해체 인력 아웃소싱으로 절감된다는 예산이... 사실 도진 씨 인건비의 절반도 안 돼요."
"절반도 안 된다고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십 년 치 급여를 숫자로 보니 새삼 초라했다.
"네. 나머지 절감분이라는 게, 실은 다른 데 쓰였어요."
다인이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마우스 휠을 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번 기부터 소재 부문 예산 담당이 노형준 씨였잖아요."
"네, 맞아요."
노형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 노형준 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마수 부산물 유통 회사가 있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뭐라고요?"
되물었지만 이미 예감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긴 했다. 내가 잘리고 나서 부산물 처리 방식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후배들의 말.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클랜에서 폐기 예정이던 부산물들, 사실 상당 부분이 노형준 씨 회사로 흘러 들어갔어요. 도진 씨가 있으면 그 부산물들의 진짜 가치를 알아채니까, 방해가 됐던 거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십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폐기물 속에서 값나가는 걸 찾아내는 일을 해왔다는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는 건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카페 안 사람들 목소리가 갑자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커피 잔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니까... 제가 너무 정확하게 일을 잘해서 잘렸다는 거예요?"
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럽다는 눈빛이었다.
"도진 씨가 있으면 폐기물이 제대로 분류되니까, 노형준 씨가 빼돌릴 게 없어지는 거죠. 도진 씨를 내보내고 나서, 해체 로봇이 대충 처리하게 만들면... 진짜 값나가는 부산물도 그냥 '쓰레기'로 분류돼서 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럼 노형준 씨 회사가 그걸 헐값에 사들이는 거고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이게... 사실이에요?"
목소리가 떨렸다.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제보자가 준 자료라 백 프로 확신은 못 하지만... 정황상 거의 확실해요."
나는 한참을 말없이 화면만 바라봤다. 숫자들이 눈앞에서 흐릿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십 년.
십 년을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그 결과가 내 성실함 때문에 잘린 거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성실하게 일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세상이라니. 누가 들으면 코미디라고 했을 거다.
"이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다인의 질문에 나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폭로할까? 그래도 될까? 그럴 자격이 나한테 있을까?
노형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 비웃는 표정. "B급 인력한테 뭘 기대하냐"던 말투. 그때는 그냥 인성 문제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내가 눈엣가시였으니까.
생각이 사슬처럼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일단은... 방송을 계속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다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도진 씨의 진짜 실력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형준 씨 쪽도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당장 눈앞에서 노형준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그건 시원할 뿐이지 남는 게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마침, 다음 주에 작은 팬미팅이 잡혔어요."
"팬미팅이요?"
되묻는 목소리에 헛웃음이 섞였다. 팬미팅이라니. 이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단어였다.
"네, 구독자분들이 요청하셔서요. 소규모지만... 도진 씨를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있거든요."
팬미팅이라니. 방송 시작한 지 겨우 이 주 만에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수 사체 앞에서 칼질하던 사람인데, 이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준비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장소도 이미 섭외해뒀고요."
다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미 다 준비해놓고 나한테 통보하듯 말하는 걸 보니, 이 사람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적어도 이 사람은, 내 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에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일인 줄, 그동안은 몰랐다.
카페를 나서기 전, 다인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도진 씨,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뭔데요?"
"노형준 씨 건, 지금 당장 정면으로 부딪히려고 하지 마세요. 아직 우리는 너무 작아요. 저쪽은... 클랜 법무팀도 있고, 자본력도 있으니까요."
그 말이 왠지 불길하게 들렸다. 마치 뭔가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노형준에 대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조심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백번쯤 그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카페를 나와 걷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노형준의 비웃음, 후배들의 어색한 표정, 클랜 대표의 사무적인 말투. 그 모든 게 이제야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저 성실했을 뿐인데, 그 성실함이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였다는 사실이 자꾸만 목구멍에 걸렸다.
일주일 후, 팬미팅 날이 다가왔다.
그 자리에서 벌어질 일을,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