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과장님, 여기도 야근이라뇨

2화

눈을 뜨니 하늘이 보였다. 푸른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이상한 색이었다. 강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등이 아팠지만 골절은 아닌 것 같았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봤다. 다 붙어 있었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발목을 돌려봤을 때 삐걱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일단 죽은 건 아니네. 강도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변을 둘러봤다. 초록색 풀밭, 그리고 흩어진 사람들. 서른 명 정도,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버스에 함께 탔던 얼굴들이 맞았다. 누구는 신음을 흘리며 배를 움켜쥐고 있었고, 누구는 멍한 눈으로 하늘만 보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낯선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풀 냄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강도현은 코를 찡그렸다. 여기 어디야. 박준혁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당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나영이 그를 붙잡아 앉혔다. 일단 진정해요. 준혁씨, 소리친다고 답이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그녀가 덧붙였다. 박준혁은 입을 다물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서정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표정에 균열은 없었다. 옷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는 손짓조차 차분했다. 마치 이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다들 상태 확인하세요. 그녀가 평소와 같은 톤으로 말했다. 다친 곳 있으면 크게 말하고, 걸을 수 있으면 앉아만 있지 마세요. 말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여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지시부터 하네. 강도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리더 병 있나.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인가. 몇몇이 이서정의 말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신기하게도, 다들 순순히 움직였다. 딸랑.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모였다. 자주색 머리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다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옷차림도 이 세계 사람 같지 않게 화려했다. 자수가 들어간 코트, 반짝이는 브로치. 놀라셨죠. 저는 정하윤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목소리는 낭랑했고, 웃는 표정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온도였다. 여러분은 지금 미궁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정하윤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미궁국? 누군가 되물었다. 원래 계시던 세계와는 다른 곳이에요. 돌아가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퍼졌다. 뭐라는 거야, 지금.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겹쳤다. 장난하냐, 미쳤냐, 꿈 아니냐. 이게 무슨 말장난이에요. 박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주먹을 꽉 쥔 채였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정하윤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말장난이었으면 좋았겠네요.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무겁게 들렸다. 박준혁은 할 말을 잃고 다시 주저앉았다. 이 세계는 던전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탐색자로 등록하고, 던전을 공략해 살아가는 곳이에요. [미궁국 진입 확인] [생존자: 30명] 허공에 반투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몇몇은 손을 뻗어 글자를 만지려 했다. 당연히 손끝은 그냥 허공을 갈랐다. 이거 게임 창 같은데. 강도현은 눈을 좁혔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상태창, 알림창, 등록 시스템. 이거 완전히 게임 구조잖아. 강도현은 손을 들어 허공을 짚어봤다. 창은 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문구가 떴다. [탐색자 등록은 길드에서 진행됩니다] 다들 놀라 얼어붙어 있는 사이, 강도현은 이미 두 걸음 앞서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익숙한 것들을 하나씩 끌어오고 있었다. 스탯창, 스킬창, 레벨업. 이게 진짜면. 답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 너 뭐 좀 아는 거 있어? 옆에 있던 동료가 슬쩍 물었다. 목소리를 낮춘 채 다가온 얼굴이었다. 불안한 눈빛이 강도현을 살피고 있었다. 딱히요. 강도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되게 안 놀라시네. 다른 사람이 눈을 흘겼다. 놀랄 힘도 없어서요. 강도현이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놀라봤자 뭐가 달라지나. 속으로는 그렇게 덧붙였다. 이서정이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강도현씨, 이런 거 잘 알아요? 시선이 곧게 강도현을 향했다. 쉽게 넘어가지 않을 눈빛이었다. 잘 아는 건 아니고요. 그냥 게임 좀 해봐서. 강도현은 대충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서정의 눈빛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서정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일단은 됐고요. 나중에 다시 물을게요. 무섭게 기억력 좋은 타입이네. 강도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정하윤이 손을 들어 주의를 모았다. 길드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녀가 부드럽게 손짓했다. 무기와 최소한의 화폐도 지급됩니다. 다만,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는 못 드리겠네요. 그 말에 다시 웅성거림이 퍼졌다. 안전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몬스터라도 나온다는 거예요? 누군가 날카롭게 물었다. 정하윤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가 답이라면, 답은 최악이었다. 박준혁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김나영이 그의 어깨를 짚어 진정시켰다. 강도현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이상한 색의 하늘, 그리고 낯선 냄새.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뜻이겠지. 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 말만은 확실히 기억해둬야 했다. 즉,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고. 강도현은 발끝으로 흙을 툭 찼다. 일단은 살아야겠지. 강도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살피며 걷는 걸음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상황을 읽으려는 걸음이었다. 그 뒤로, 서른 명의 시선이 하나둘 그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아무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하윤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지나치게 익숙해 보였다. 이 길, 몇 번이나 걸어본 걸까. 강도현은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풀밭 끝에 흐릿하게 성벽 같은 형체가 보였다. 저게 길드가 있는 곳인가. 가는 길이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얼마 걷지 않아 곧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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