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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새벽의 소리는 한 시간쯤 이어지다 멈췄다. 멈췄는데 더 불안했다. 소리가 있을 때는 최소한 무언가가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적이 내려앉자 오히려 사방이 위협처럼 느껴졌다. 나는 막사 밖으로 나와 하늘을 봤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그 아래로 병사들의 그림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계측기를 들고 진영 곳곳을 뛰어다녔다. 다들 표정이 심각했다. 계측기 특유의 낮은 진동음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마법사 하나는 손에 든 기구를 몇 번이나 흔들어보다가, 결국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집어 들었다. 고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뭔지 알아냈어." 내 물음에 늙은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건, 마왕성 반경 5킬로 내에서 마력 밀도가 어제보다 세 배 이상 올랐습니다." 세 배. 그 숫자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세 배면, 그게 어느 정도야." "평범한 던전 하나가 통째로 생겨나는 수준입니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요." 던전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그 말을 곱씹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잖아." "자연적이라면 이렇게 갑자기 오르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 맞을 거다. 이상현상은 늘 갑자기 시작된다. 서서히 예고하고 다가오는 재앙은 없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아무 조짐 없이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온다. 오전 회의에서 진격 계획을 다시 짰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를 앞당기기로 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마왕성 좌표를 손끝으로 짚으며,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지점을 반복해서 눌렀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답이 나올 것처럼. "성급한 거 아닌가." "성급한 게 아니라, 늦으면 더 위험합니다." 마법사 대표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고, 또 누군가는 의자 다리를 신경질적으로 까딱였다. 다들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온 결정이 앞으로 며칠 안에 얼마나 많은 목숨을 좌우할지. 오후, 정찰병 하나가 급히 뛰어들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보고합니다! 3번 초소 인원 전멸입니다!" 전멸. 그 단어가 회의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누군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정찰병을 바라봤다. "적의 공격이었나." "아닙니다. 흔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그냥 사라진 것처럼, 갑옷과 무기만 남아 있습니다." 갑옷과 무기만. 사람은 없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갑옷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려다 그만뒀다. 그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3번 초소가 마왕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7킬로입니다." 7킬로. 마력 밀도가 오르고 있다는 반경 5킬로보다 살짝 더 먼 곳이었다. 영향권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도를 다시 폈다. 5킬로였던 원이 7킬로까지 넓어진다면, 우리 본진까지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손끝이 떨렸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최악의 경우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병력을 재배치했다. 5킬로 이내의 모든 초소를 철수시켰다. "이러면 방어선이 뚫립니다." 부관이 반대했다. "방어선보다 사람이 먼저야."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이게 맞는 판단인지, 이미 늦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부관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판단이 틀리면 그 대가를 치르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밖에서 초소를 지키던 병사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윤서아의 막사에 다시 들렀다. 그녀는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그녀의 실루엣이 어두운 막사 안에서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들었어."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3번 초소." "어."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그녀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처음으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창밖을 봤다. 핏빛 하늘 아래로 진영의 불빛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평소라면 든든하게 느껴졌을 그 불빛들이, 오늘은 유독 작고 위태롭게 보였다. "무서워." 짧은 한 마디였다. 하지만 예전의 그녀라면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용사는 두렵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몇 번이나 봤다. 팔이 부러진 채로도 웃으며 검을 다시 잡던 모습, 동료가 눈앞에서 쓰러져도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던 뒷모습. 그런 그녀가 지금, 나에게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킬게."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지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말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 순간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잠깐 바라봤다. 눈빛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믿음인지, 의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믿어요." 짧은 대답이었다. 그거로 충분했다. 그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잠시 그 옆에 더 머물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더 얹는 순간 지금의 공허한 위로마저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정찰대가 다시 나갔다. 이번엔 마법사 두 명을 포함시켰다. 이상현상의 원인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정찰대가 떠나기 전,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몇 명은 시선을 피했고, 몇 명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무도 이 정찰이 안전하다고 믿지 않았다. 두 시간 뒤, 정찰대가 돌아왔다. 인원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남은 이들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몇몇은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이도 있었다. "보고합니다." 생존한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왕성 앞에... 결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계 안쪽에서, 뭔가가 자라고 있습니다." "뭐가 자라고 있다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형체가... 계속 변합니다.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마법사의 눈에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게 우리 쪽을 봤습니다. 분명히, 우리를 봤어요." 그 말을 하는 동안 마법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생존자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진정시키려 했지만, 떨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지도의 이상한 좌표, 측정 불가능한 마력, 사라진 병사들. 모두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왕성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알던 마왕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머릿속에서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마력 밀도의 급증, 흔적 없이 사라진 병사들, 형체가 일정하지 않은 무언가.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알던 전쟁의 규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 "진격 일정 앞당긴다. 오늘 밤."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준비가 부족합니다." "부족해도 가야 해. 저게 다 자라기 전에." 다 자라기 전에. 그 말을 내 입으로 하면서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누군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전군이 움직였다. 마왕성을 향한 마지막 진격. 병사들의 발소리가 낮게 울렸다.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 무기가 흔들리는 소리마저 최대한 죽인 채, 우리는 조용히 어둠 속을 걸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의 숨소리만이 유일한 대화였다. 하늘은 여전히 핏빛이었고, 그 아래로 우리는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멀리서 윤서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검을 등에 진 채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어젯밤 무섭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지금 저 뒷모습만 보면 누구도 그녀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결계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봤다. 형체가 계속 바뀌는, 거대한 무언가가 결계 안쪽에서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다가, 순식간에 짐승의 윤곽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로 뭉개졌다. 결계 너머로 흘러나오는 마력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짙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전투는 그저 서막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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