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숲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이상했다.
태오는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처럼 짚고 걸었다.
[정원] 스킬로 이미 주변 흙 곳곳에 작은 물길을 만들어둔 참이었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촉촉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퀘스트: 거처 확보]
[진행률 0%]
“일단 집부터.”
태오는 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 자리를 골랐다.
햇빛이 잘 드는 쪽이었다.
물길에서 가까운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제작] 스킬을 켜자, 눈앞에 설계 화면 같은 게 떠올랐다.
[제작 가능 목록: 오두막(기초), 울타리, 저장고]
손으로 오두막을 선택하자 재료가 표시됐다.
[필요 재료: 목재 20, 짚 10, 돌 5]
태오는 도끼도 없이 나무를 두드려봤다.
딱딱, 소리만 났다.
손바닥이 얼얼했다.
이대로는 하루 종일 걸려도 못 끝낸다.
“도끼 하나만 있어도.”
중얼거리다 말고 태오는 피식 웃었다.
없는 걸 아쉬워해봐야 소용없다.
그때 손끝이 저절로 움직였다.
[정원] 스킬이 활성화되며 나무 밑동 주변 흙이 부풀어 올랐다.
뿌드득.
나무가 스스로 기울어지며 쓰러졌다.
뿌리가 약해진 자리로 정확히 넘어간 거였다.
태오는 나무가 쓰러지는 방향을 눈으로 좇았다.
정확히 자신이 원했던 자리, 오두막이 들어설 터 옆이었다.
“이거 완전 벌목 치트잖아.”
태오는 눈을 크게 떴다.
전투 능력이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상관없을 줄은 몰랐다.
[정원 효과: 지반 약화]
[대상 식물의 생장 방향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스킬 설명이 갈수록 사기처럼 느껴졌다.
땅을 만지는 게 아니라, 세계를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나무도 같은 방식으로 쓰러뜨렸다.
세 번째, 네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태오는 슬슬 이 감각이 손에 익는 걸 느꼈다.
흙에 손을 짚고, 뿌리 쪽으로 의식을 흘려보내면 됐다.
말로 설명하기엔 애매한데, 하다 보니 되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나무 다섯 그루가 정확히 필요한 위치에 쓰러져 있었다.
[제작] 스킬이 자동으로 목재를 재단해줬다.
톱질도 없이 나무가 저절로 잘려나가는 걸 보면서 태오는 몇 번이나 헛웃음을 흘렸다.
태오는 그저 조립만 하면 됐다.
쾅쾅쾅.
망치질 소리가 숲에 울렸다.
[진행률 40%]
기둥이 세워졌다.
[진행률 70%]
지붕틀이 얹혔다.
[진행률 100%]
오두막이 완성됐다.
작지만 지붕이 있고, 문도 달렸다.
태오는 팔짱을 끼고 그걸 바라봤다.
문을 한 번 열었다 닫아봤다.
경첩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루도 안 걸렸는데.”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세계에서였다면 이 정도 속도는 사기라고 신고당했을 거다.
현장 소장이 봤으면 눈이 뒤집혔을 거고.
[퀘스트 완료: 거처 확보]
[보상: 스킬 경험치 지급]
[정원 레벨업: Lv.1 → Lv.2]
태오는 상태창을 다시 열었다.
레벨이 오르니 효과 범위가 넓어졌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숫자 하나가 슬쩍 늘어난 걸 보고 태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음은 식량인가.”
태오는 오두막 뒤편으로 걸어갔다.
[정원]으로 만든 작은 샘 주변에 씨앗 몇 개를 심어봤다.
씨앗은 원래 세계에서 챙겨온 마지막 물건이었다.
죽기 전에 편의점에서 산 방울토마토 모종,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정원 효과 적용: 생장 가속]
순간 씨앗이 땅 위로 싹을 틔웠다.
초록 줄기가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자라났다.
스르륵.
태오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줄기가 팔뚝만큼 굵어지는 데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농사도 이렇게 하면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 걸리겠다.
[퀘스트: 식량 확보]
[진행률 50%]
채소가 순식간에 열매를 맺었다.
태오는 그중 하나를 뜯어 한 입 베어물었다.
달았다.
죽기 전엔 삼각김밥이나 씹던 신세였는데.
편의점 알바비로 저녁마다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하나씩 챙겨 먹었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궁전 밥상이었다.
[퀘스트 완료: 식량 확보]
[보상: 스킬 경험치 지급]
연속으로 퀘스트가 완료되는 알림이 떴다.
태오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 정도면 낙원 건설도 금방이지 않나.”
태오는 남은 채소를 오두막 안에 쌓아두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저장고도 하나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도 더 심고, 물길도 더 늘리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획이 술술 풀려나왔다.
그때, 저 멀리서 낮고 무거운 소리가 다시 울렸다.
으르렁.
태오의 손이 딱 멈췄다.
아까보다 더 가까웠다.
태오는 오두막 벽에 손을 짚고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짐승 울음소리 같은데, 크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숲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경고: 미확인 개체 감지]
[거리: 300미터 이내]
태오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투 능력 없는 크래프터한테 이런 알림을 왜 띄우는 거지.
설마 도망치라고 알려주는 배려인가.
그런 배려면 참 고마운데, 별로 안 고맙게 느껴졌다.
“설마 싸워야 되는 거 아니지.”
혼잣말이 떨렸다.
소하가 계약할 때 전투는 안 시킨다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근데 저건 이미 세계 쪽에서 먼저 다가오는 문제였다.
계약서에 뭐라고 써도 짐승이 그걸 읽어줄 리 없었다.
숲 저편, 나무들 사이로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 형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졌다.
나무 하나가 통째로 휘청거리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태오가 온종일 정성 들여 눕힌 나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칠고 무자비한 쓰러짐이었다.
태오는 침을 삼켰다.
목이 바짝 말랐다.
오늘 만든 오두막이, 벌써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자신도, 함께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경고: 대상이 접근 중입니다]
[거리: 200미터 이내]
거리가 좁혀지는 알림이 뜨자마자, 으르렁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태오는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