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샘가에 짓는 낙원

1화

새벽 세 시, 사무실 창밖은 캄캄했다. 강태오는 모니터 세 대를 켜놓고 코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어디서 터졌는지도 모를 에러 로그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삐빅. [배포 실패: 원인 미상] 또야. 태오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화면을 스크롤했다. 로그는 백 줄이 넘었다. 그중에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이건 로그가 아니라 낙서네. 태오는 혼잣말을 뱉었다. 오늘로 사흘째 집에 못 갔다. 사무실 구석에 접이식 매트리스가 있었다. 그걸 깔고 두 시간씩 눈을 붙인 게 벌써 세 번째였다. 팀장은 여섯 시에 퇴근했다. 대표는 애초에 출근을 안 한다. 남은 건 나 하나뿐이네. 태오는 실소를 흘렸다. 책상 위엔 빈 커피캔이 세 개, 편의점 삼각김밥 껍질이 두 개 널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배가 고픈 건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몸이 그냥 멍했다. 2년 전, 이 회사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워라밸이란 말을 믿었다. 면접 때 인사팀장이 웃으면서 그랬다. “여기 야근 거의 없어요.” 지금은 그 단어를 들으면 헛웃음이 나왔다. 믿은 내가 병신이지. 태오는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팀장이 문틈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얼굴에 화장이 하나도 안 지워져 있었다. 집에서 다시 나온 건가, 태오는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태오씨, 오늘 새벽까지 끝내야 되는 거 알지?” “알죠.” “내일 아침 회의 전까지.” “새벽인데 내일 아침이 벌써 오늘인가요.”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지금이 이미 내일이네요.” “그러네.” 팀장은 웃으며 문을 닫았다. 쾅. 그 웃음이 유독 얄미웠다. 작년 프로젝트 사고, 그거 원래 팀장 책임이었지. 서버 장애로 고객사 데이터가 통째로 날아갔던 그 사건. 원인은 팀장이 승인한 배치 스크립트였다. 그런데 사후 보고서엔 태오 이름이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왜 내가 야근을 하고 있나. 태오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속으로 되물었다. 뭐 하나 제대로 돌려준 적이 없는 회사였다. 승진에서도, 인센티브에서도, 항상 뒷전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한 번쯤 이름 불려본 게 다였다. 그런데 사고만 나면 제일 먼저 불려 나오는 것도 자신이었다. 사람 갈아 쓰는 회사도 아니고, 사람 버리는 회사도 아니고. 그냥 사람 잊는 회사였다. 태오는 그렇게 정리했다. 에러 로그를 다시 뜯어봤다. 서버 설정 파일 하나가 잘못 배포된 게 원인이었다. 누가 건드렸는지는 뻔했다. 어제 오후에 팀장이 급하게 손댄 부분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다. 태오는 아무 말 없이 고쳤다. 따지고 들면 새벽 다섯 시가 될 게 뻔했다. 밤 네 시, 배포가 겨우 끝났다. [배포 성공] 알림이 뜨는 순간, 어깨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좌우로 꺾었다. 뚝뚝 소리가 났다. 허리도 한 번 젖혔다. 뼈마디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집에 가자. 사흘 만에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노트북을 접고 가방에 쑤셔 넣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나오는 순간, 형광등이 한 번 파직거렸다. 저것도 갈아야 되는데. 남의 회사 걱정을 하며 태오는 문을 닫았다. 지하철 막차는 이미 끊긴 뒤였다. 첫차를 기다리며 플랫폼 의자에 앉았다. 새벽 지하철역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자판기 앞에 캔 하나가 굴러다녔다. 누가 마시다 버린 건지, 반쯤 남아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네시 삼십칠 분. 첫차까지 이십 분 넘게 남아 있었다. 눈이 뜨겁고 뻑뻑했다. 잠깐 감았다 뜨자. 그 잠깐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그때는 몰랐다. 스크린도어 너머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덜컹. 태오는 몸을 일으켰다. 발밑이 휘청했다. 뭐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난 사흘간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몸이 균형을 잃었다. 손으로 스크린도어를 짚으려 했다. 손끝이 허공을 스쳤다. 스크린도어 틈으로 팔이 먼저 넘어갔다. 어, 이거 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쾅. 마지막으로 본 건 헤드라이트였다. 하얗고, 눈부시고, 아주 가까웠다. 이렇게 죽는 건가. 태오는 그 짧은 순간에도 냉정하게 생각했다. 야근하다 죽는 거, 뉴스에서만 보던 거였는데. 억울하네. 딱 그 한 마디였다. 유서도 못 썼는데, 이거 퇴사 처리는 누가 해주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스쳐 지나갔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몸이 아니라 시간이 끌려가는 느낌. 주변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덜컹거리던 열차 소리도, 형광등 깜빡임도, 전부 정지했다. 그리고 사방이 물빛으로 물들었다. 촤아아아. 어딘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오는 눈을 떴다. 분명 죽었는데. 주변은 온통 푸른 빛이었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아프지도 않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봤다. 피도, 상처도 없었다. “어이, 죽은 것 같은데 안 죽었네.” 태오는 자기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대답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도, 천장도 없었다. 그냥 사방이 물빛이었다. 발을 굴러봤다. 아무 감각도 없었다. 대신, 저 멀리서 무언가 반짝였다.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모여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태오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거 뭐야, 게임이야? 죽어서 튜토리얼 들어온 건가. 실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 픽 웃었다. 어이없게도 무섭지가 않았다. 빛의 알갱이가 점점 가까워졌다. 형체가 소녀의 모습으로 굳어갔다. 물빛의 긴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흘렀다. 눈동자도 같은 색이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매끄러운 윤곽이었다. “왔구나.” 낯선 목소리가 태오의 귀에 닿았다. “어디 왔다는 건데요.” 태오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빛 눈으로 태오를 훑어봤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감정 없이. “몇 년 만이지.” 소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가요.” “계약자.” 태오는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실감했다. 이건 죽음 이후다. 그리고 이건, 뭔가 아주 큰 일의 시작이라는 것도. [세계의 균열이 감지되었습니다] [샘의 여신 ‘소하’가 계약자 후보를 확인합니다] 태오는 침을 삼켰다. 죽은 지 채 몇 분도 안 됐는데, 세계라니. 샘의 여신이라니, 그건 또 뭔데. 이거 규모가 좀 큰데.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웃음이 먼저 나왔다. 소하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마치, 이 순간을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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