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승님, 정체가 뭐예요?

4화

김도진과의 대련 이후, 나는 도장에 정식으로 다니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한지운이 나를 제자로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볼 때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직 스물이 넘게 남았잖아" 같은 말을 던지며 판단을 미뤘고, 나는 그 태도가 못내 답답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루하루 도장 마당을 쓸고, 목검을 정리하고, 문하생들 사이에서 눈치껏 자세를 흉내 내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완전히 무의미했던 건 아니었다. 도장에서 배우는 기초 검술 동작들은 놀랍도록 체계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이곳이 단순히 취미로 검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실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그 체계를 몸에 새기듯 반복했고, 김도진은 가끔 지나가다 내 자세를 슬쩍 고쳐주며 짧은 조언을 던지곤 했다. "어깨 내려. 힘 빼고." 그런 식이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조언 하나하나가 실제로 몸에 적용됐을 때의 차이는 놀라웠다. 요컨대, 이 도장의 지도 방식은 겉보기엔 방치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자극을 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도장에는 매달 첫 번째 주에 공식 대련이 열린다고 했다. 도장에 소속된 문하생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는 자리였는데, 그날은 마침 그 대련이 열리는 날이었고 김도진은 나를 이 대련에 출전시키기로 했다. "보여줄 기회다." 김도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첫 대련에서 그에게 완패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고, 그 굴욕을 씻어낼 기회가 지금 눈앞에 있다는 생각에 손끝이 살짝 떨렸다. 상대는 도장 내에서도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문하생 셋이었고, 나는 그들을 차례로 상대하며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세 번의 대련에서 단 한 번도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첫 번째 상대는 체구가 크고 힘이 좋은 문하생이었는데, 그는 초반부터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나를 몰아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힘이라는 건, 정확히 궤도를 벗어난 순간부터는 오히려 상대에게 되돌려주기 쉬운 재료였다. 나는 그의 목검을 살짝 흘리듯 받아내고, 무게가 앞으로 쏠린 그 순간을 노려 옆구리를 짧게 찔러넣었다. 퍽. 한 번의 타격으로 승부가 갈렸다. 두 번째 상대는 좀 더 신중한 스타일이었지만, 그 신중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그는 내 움직임을 읽으려다 오히려 자신의 리듬을 잃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세 번째 상대는 그나마 가장 까다로웠다. 속도가 빠르고 잔기술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그가 원래 체술 계열에서 넘어온 문하생이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는 계속 거리를 좁히며 잔손을 놀렸고, 나는 그 리듬에 억지로 맞춰주는 척하다가 순간적으로 스텝을 바꿔 그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부우욱. 마지막 상대의 옷깃이 내 목검에 걸려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 번째 승리가 확정되었다. 도장 안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고, 최홍련이 팔짱을 낀 채로 낮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기사단 애들, 확실히 다르긴 하네." 나는 그 반응에 자존심이 조금 회복되는 걸 느꼈다. 김도진에게 완패했던 첫 대련의 굴욕이, 이번 승리로 어느 정도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몇몇 문하생들은 대놓고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몇몇은 나에게 다가와 짧게 손을 내밀며 인정한다는 듣기 좋은 말을 던졌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낯선 세계에서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 비슷한 걸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순간, 도장 한쪽 구석에서 벌어진 아주 짧은 광경이었다. 한지운은 그날도 여전히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술병을 옆에 두고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대련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는지, 나는 순간 이 사람이 정말로 이 도장의 관주가 맞나 싶은 의심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문하생 하나가 실수로 창틀 위에 세워둔 진검 하나를 건드려 그것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순간을 정확히 목격했다. 검이 떨어지는 속도로 보면, 반응할 시간이 채 반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 각도라면,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그대로 갈라졌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지운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손을 뒤로 뻗어 그 검의 손잡이를 정확히 잡아냈다. 딱. 그 소리는 도장 안의 모든 소음을 뚫고 들릴 만큼 선명했는데, 정작 한지운 본인은 그 검을 대충 옆에 세워두고는 다시 하품을 했다. 심지어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여유까지 부렸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목격한 게 나뿐인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내 대련 결과에 흥분해 있어서 그 장면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검을 떨어뜨린 문하생조차,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몇 번이나 되짚어 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건 뒤통수로 소리를 듣고 대응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정확했고, 우연히 손이 그쪽으로 향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빠른 반사였다. 게다가 각도까지 완벽했다. 검의 손잡이를 정확히, 날이 아니라 손잡이를 잡는다는 건, 그 궤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밖에는 되지 않았다. 요컨대, 방금 그 동작은 절대 B랭크 모험가의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마주친 수많은 강자들을 떠올려봤다. 김도진의 압도적인 검술도, 최홍련의 단단한 방어도, 그리고 그 외에 스쳐 지나갔던 몇몇 실력자들의 움직임도. 그런데 방금 본 그 동작은, 그 어떤 것과도 결이 달랐다. 마치 애초에 반응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는 사람처럼, 검이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다. 나는 그날 대련에서 세 번을 이겼다는 사실이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방금 목격한 그 한 동작이, 내가 해낸 세 번의 승리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손바닥에 남아 있던 뿌듯함이 스르르 식어가는 게 느껴졌고, 대신 그 자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 비슷한 감각이 들어찼다. 나는 대련이 끝나고 한지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 검,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한지운은 나를 쳐다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뭐가." "머리 위로 떨어진 검 말입니다. 보지도 않고 잡으셨잖습니까."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웃음이 어딘가 익숙했는데, 곱씹어보니 이전에 김도진이 나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 지었던 그 여유로운 표정과 비슷했다. 다만 한지운의 그것은 몇 단계 더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착각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는 도장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그건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의 손동작, 정확한 각도, 그리고 그 이후 무심하게 하품을 하던 태도까지, 그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확신을 더 굳혀줄 뿐이었다. 나는 그날 밤, 여관 방에서 서채린에게 그 광경을 설명했는데, 그녀도 처음에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에이, 그냥 반사적으로 손이 간 거겠지. 그런 우연이 종종 있잖아." 서채린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최대한 그 순간을 구체적으로 다시 재현하려 애썼다. 검이 떨어진 속도, 한지운의 시선이 그쪽을 전혀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잡은 지점이 정확히 손잡이였다는 것까지. 내 설명이 구체적으로 이어지자 서채린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잠깐, 그러니까... 안 보고, 소리도 거의 안 났는데, 그걸 손잡이로 정확하게 잡았다는 거야?" "그래. 손잡이. 날이 아니라." 서채린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향한 채 뭔가를 계산하는 듯 미세하게 흔들렸는데, 나는 그 표정을 통해 그녀 역시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서채린이 말을 끝내지 못하고 멈췄고, 나 역시 그 말의 끝을 채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초라한 술주정뱅이가, 사실은 우리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실력자일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왜 그가 굳이 이런 조그마한 지방 도장에서, 문하생들 뒤치레나 하면서 술만 마셔대고 있는지가 의문으로 남았다. 그만한 실력자라면, 어디에서든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처박혀 있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고, 그 알 수 없음이 오히려 더 큰 불안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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