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설원에 새긴 견장

5화

"그만해라, 박기석." 곽태산이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넌 빠져." 박기석이 눈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소위님이랑 나 사이 얘기야." 돌아오는 길, 협곡을 벗어나 요새가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였다. 해는 이미 절반쯤 기울어 있었고, 병사들의 발소리는 하나둘 늘어지고 있었다. 긴장은 이미 풀렸어야 할 상황인데, 박기석은 오히려 거기서 판을 다시 벌였다. 그의 옆에는 늘 붙어 다니는 제8소대원 두어 명이 서 있었고, 다들 나를 흘겨보는 눈빛이 똑같았다. "박기석 조장."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임무 중 상관에게 검을 겨누는 건 군율 위반입니다. 지금 그만두면, 경고로 끝낼 수 있습니다." "경고." 그가 픽 웃었다. 웃음이 입꼬리에서 끝나지 않고 눈까지 올라갔다. 비웃음이었다. "내가 삼 년 동안 몇 번 경고받았는지 알아? 여기선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럼 이번엔 신경 쓰게 만들어야겠네요." 나는 답했다. 그는 대답 없이 검집에 손을 얹은 채로 걸음을 돌렸다. 부하들도 따라 흩어졌다. 그 등을 보며, 나는 곽태산 쪽을 흘낏 봤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게 더 불안했다. 그날 밤, 나는 그 말이 그냥 협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 야간 순찰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요새 안은 이미 불빛이 절반쯤 꺼져 있었고, 남은 등불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리며 벽에 그림자를 던졌다. 곽태산이 먼저 발을 멈췄다. "소위님, 저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눈짓했다. 막사 뒤편 창고 근처, 어둠 속에 세 명이 서 있었다. 제8소대 소속이었다. 낮에 박기석 옆에 붙어 있던 자들이었다. 손에는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어깨에 걸치듯 들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양손으로 꽉 쥔 채였다. 세 번째는 뒤쪽에서 담벼락에 반쯤 몸을 숨기고 있었다. 숨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그림자가 벽보다 컸다. 괜찮은 척은 안 하겠다. 이건 훈련이 아니었다. "소위님 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잖습니까." 곽태산이 말했다. "우연은 아니겠고요." "박기석이 시킨 거겠죠." 나는 답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택지는 몇 개 있었다. 조용히 길을 돌아 피하는 것. 최무성에게 즉시 보고하고 정식 절차로 처리하는 것.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내는 것. 정식 절차는 시간이 걸린다. 서류를 작성하고, 증인을 세우고, 조사관이 파견되기까지 최소 열흘. 그 사이 소대 전체가 이 일을 알게 될 것이고, 박기석은 자신이 시킨 일이 아니라고 잡아뗄 여지를 만들 것이다. 부하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조장으로서 관리 소홀에 대한 견책 정도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았다. 조용히 피하면, 다음엔 더 대담해질 게 뻔했다. 오늘은 몽둥이지만, 다음엔 검일 수도 있다. "지금 끝내야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세 명이 그를 발견하고 몽둥이를 고쳐 잡았다. 셋 중 가운데 있던 자가 침을 뱉듯 말을 던졌다. "호위무사 씨, 이건 소위님하고 우리 문제야. 넌 빠져." 셋 중 하나가 말했다. "호위란 게 그런 거야." 곽태산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안 빠지는 거." 말이 끝나기 전에 한 명이 먼저 몽둥이를 휘둘렀다. 곽태산은 몸을 살짝 틀어 피한 뒤, 상대의 손목을 붙잡아 그대로 꺾었다. 뚝.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신음이 터졌다. 남은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나는 왼쪽에서, 하나는 정면에서.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두 번 이어졌다. 곽태산의 움직임은 절제돼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썼다. 팔을 꺾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달려든 자는 몽둥이를 놓치기도 전에 다리가 걸려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왼쪽에서 온 자는 팔이 등 뒤로 꺾인 채 무릎을 꿇었다. 세 명 모두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곽태산은 발로 짓누르는 대신 그대로 물러섰다. 마치 청소를 마친 사람처럼, 옷자락의 먼지를 한 번 털어냈을 뿐이었다. "괜찮으시죠, 소위님." 그가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답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셈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셋은 어떻게 하죠." 바닥에 쓰러진 세 명은 신음만 낼 뿐, 다시 일어설 기미는 없었다. 손목이 꺾인 자는 손을 감싸 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곽태산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박기석은 이 정도로 안 끝낼 겁니다. 소위님이 아니라, 다음엔 정말 신병 쪽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낮에 협곡에서 넘어졌던 신병의 얼굴이 떠올랐다. 검을 처음 잡아본 것처럼 서투르게 휘두르던, 아직 이름도 다 못 외운 얼굴들. "그래서요." 나는 물었다. "박기석을, 지금 확실하게 눌러야 합니다." 곽태산이 나를 정면으로 봤다. 등불 아래 그의 눈빛이 유난히 짙었다. "정식 절차 밟으면 몇 주는 걸립니다. 그 사이 소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나서서 끝내겠습니다. 소위님은 못 본 걸로 하십시오." "그건." 나는 잠시 멈췄다. "위법입니다." "압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하겠습니다. 말리지 않으시면."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가 나서야 할 때, 말리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규정을 지키면 절차는 완벽하겠지만, 그 사이 누군가는 다칠 수 있었다. 규정을 어기면, 나는 소대장으로서 명백한 결함을 하나 안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곽태산이 대신 그 짐을 짊어지게 두는 것도, 옳은 방식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나는 대신 손목의 봉인문 위에 손을 얹었다. 곽태산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봤다. "소위님이 직접―" "박기석은 규정으로 막을 수 없는 상대입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럼 규정 밖에서 확실하게 새겨줘야죠. 대신, 이건 내가 하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 "위험합니다." 곽태산이 짧게 말했다. "압니다." 나는 그대로 답했다. 그가 방금 나에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셈이었다. 곽태산은 더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쓰러진 세 명을 하나씩 어깨에 걸쳐 창고 안으로 옮겼다. 아침이 오기 전에 소대 막사 어딘가에 조용히 눕혀둘 모양이었다. 몸은 다치고 자존심은 상했겠지만, 목숨엔 문제없을 정도로만. --- 그날 밤, 나는 사람이 없는 훈련장 구석에서 벽라를 몇 차례 불러냈다. 손목의 봉인문은 내 의지에 따라 열렸고, 푸른 실도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흩어졌다가 모였다. 다만 막아야 할 대상과 사용 목적을 분명히 떠올릴수록 반응은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 박기석을 상대하는 것도 개인적인 보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신병과 다른 소대원들을 다시 해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새벽, 나는 박기석을 훈련장으로 불렀다. 정식 대결이라는 명분이었다. 조장 대 소대장의 실력 대결.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는 절차였다. 다만 그 안에서 무엇이 벌어질지는, 규정에 나와 있지 않았다. 훈련장은 아직 새벽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발밑의 흙이 밤사이 내린 이슬로 축축했고,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옅게 퍼졌다. 그 안개 사이로, 박기석이 검을 들고 나타났다.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밤새 부하들이 당한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제 일, 소위님이 시켰나." 그가 낮게 물었다. "호위무사가 소대장을 보호한 겁니다." 나는 답했다. "그쪽이 먼저 야습을 계획했으니까요." "증거 있어?" "증거는 필요 없을 겁니다." 나는 손목의 봉인문을 완전히 풀었다. 푸른 실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안개 속에서 그 빛이 유난히 선명하게 번졌다. "지금부터 확인시켜 드릴 테니까요." 훈련장 가장자리로 소대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소문이 벌써 새벽부터 퍼진 모양이었다. 최무성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곽태산은 저 뒤편 기둥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박기석이 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발끝으로 흙을 튀기며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나는 벽라를 펼쳤다. 그물이 그의 발목을 휘감으려는 순간, 그가 몸을 틀어 피했다. 예상보다 민첩했다. 삼 년을 이 요새에서 버텨온 자다웠다. 검이 내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나는 몸을 숙여 피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옷자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촤악. 찬 새벽 공기 속에서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소대원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괜찮다. 아직 첫 수다. 소대원들이 훈련장 가장자리로 몰려나와 이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은 박기석을 향해 응원인지 걱정인지 모를 시선을 던졌고, 몇몇은 나를 향해 같은 눈빛을 보냈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은, 애매한 긴장이 훈련장 전체를 감돌았다. 그 시선들 사이에서, 나는 그물을 다시 펼쳤다. 이번엔 발목이 아니라 검을 쥔 손목을 노렸다. 손끝에서 뻗어나간 푸른 실이 허공을 가르며 그의 팔을 향해 좁혀 들었다. 벽라가 그의 팔을 옭아매려는 찰나, 박기석의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겁먹은 눈빛이었다. 그가 검을 쥔 손을 뒤로 빼며 몸을 젖혔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물 끝이 그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옷소매가 살짝 그슬린 듯 검게 변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군율 위반에 대한 확인입니다." 나는 답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소대원들도, 나도,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박기석의 눈빛에 처음으로 실린 그 흔들림이, 이 싸움이 이제 막 시작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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