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닷새가 지났다.
훈련장 출입은 금지된 채였다.
문 앞을 지키는 시종의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눈이 계속 내렸다.
쌓이고, 녹지 않고, 다시 쌓였다.
방 안의 온도는 일정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오전 7시.
시종이 세숫물을 가져왔다.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마저도,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식사 시간에도 형제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마주치면, 시선이 불편했다.
큰형은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숟가락을 드는 손, 국을 뜨는 손, 그 모든 동작이 나를 지나쳐 갔다.
한 번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벽을 보는 것처럼.
누나는 가끔 곁눈질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동정인지, 경멸인지, 그 중간 어디쯤인지.
한 번은 입을 열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다물었다.
셋째는 아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접시에서 반찬이 줄어드는 속도만이, 그가 그 자리에 있다는 증거였다.
어머니는 아예 나를 부르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할 때도.
"도훈이는 왜 안 오니" 같은 말조차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이, 어떤 매질보다 더 아팠다.
매를 맞으면 적어도 반응이 있는 거니까.
지금은 그저, 없음이었다.
오전 9시.
박덕수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늘 그렇듯 표정이 없었다.
"도련님, 오늘도 서고에 가실 겁니까."
"응."
"준비하겠습니다."
서고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곳.
책장 사이를 걸을 때, 발소리조차 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쳤다.
평범한 영웅.
표지는 낡았고, 종이는 누렜다.
하지만 그 안의 문장들은 여전히 생생했다.
책장을 넘기며, 선우결의 문장을 읽었다.
그의 문체가 낯설지 않았다.
문장을 짧게 끊는 습관, 은유를 즐기는 방식, 가끔 튀어나오는 냉소적인 유머까지.
삼십 년을 함께한 친구의 목소리가, 문장 사이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몇 문단을 더 읽었다.
전투 장면 하나에서, 나는 멈췄다.
틀렸다.
검을 쥐는 방식이 틀렸다.
그건 실전에서 통하지 않는 자세였다.
전장에서 서른 해를 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오류였다.
하지만 그 오류가 마음에 걸렸다.
이 책을 읽고 검을 배우려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이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한다면.
마지막 장에, 저자 소개가 있었다.
『선우결. 선우 공작가 출신. 현재 한도에서 저술 활동 중.』
한도.
같은 도시였다.
멀지 않았다.
마차로 반나절이면 닿을 거리.
하지만 다섯 살 귀족 아이가, 그것도 가문의 눈 밖에 난 아이가, 어떻게 그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편지를 쓴다 해도, 그것이 전해질 방법이 없었다.
전서구도, 정식 서신도, 모두 성인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오후 2시.
박덕수와 마주 앉았다.
그의 앞에 놓인 찻잔에서 김이 올라왔다.
"부탁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선우결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박덕수의 표정이 굳었다.
찻잔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선우 공작가 사람에게 말입니까."
"응."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나는 대답을 고민했다.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쓴 책에, 틀린 부분이 있어. 그걸 알려주고 싶어."
"…도련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냥 알아."
부족한 대답이었다.
박덕수도 그걸 알았다.
그의 눈빛이 잠시 나를 훑었다.
마치 다섯 살 아이의 몸 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위험한 일입니다."
"왜?"
"제경가와 선우가는, 겉으로는 대등하지만, 실제로는 미묘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도련님 입지가 더 어려워질 겁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됐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받는데, 그보다 더 아래로 떨어질 자리가 있을까.
하지만 박덕수의 말은 진지했다.
"그래도 보내고 싶어."
"…왜 그렇게까지 하려 하십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른 해를 함께한 친구라고?
그가 쓴 책 속의 오류 때문에, 누군가 다칠 수도 있다고?
그런 말을 하면, 박덕수는 나를 다른 눈으로 볼 것이다.
"그냥,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박덕수는 오래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의심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도련님은, 요즘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래?"
"예전이라면, 이런 위험한 일은 시도조차 안 하셨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다섯 살의 이도훈이라면, 조용히 방 안에 있는 게 최선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자라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서른 해를 살아본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망설임이 줄어들었다.
위험을 재는 감각이, 예전과 달라졌다.
시장에서 오르는 종목을 볼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위험이 크더라도, 기대값이 그보다 크다면 움직여야 했다.
지금 이 편지도 그런 계산의 결과였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부탁이야, 박덕수."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오십 줄을 산 사람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약속해주십시오. 이 일이 발각되면, 저 혼자 책임지겠습니다. 도련님은 절대 나서지 마십시오."
"그건 싫어."
"도련님."
그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저는 이 가문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도련님 부친 대부터입니다. 제 한 몸 지키는 방법은 압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아직 지켜야 할 것이 많으십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오십 줄의 노집사, 한때는 기사였던 사람.
손등의 흉터가, 그가 검을 들었던 시절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은 나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그 눈빛에 담긴 무게가, 다섯 살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컸다.
하지만 서른 해를 산 사람에게도,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알겠어."
거짓 약속이었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체념 같기도, 웃음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날 밤, 박덕수는 어딘가로 나갔다.
방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초 하나, 초 둘, 그렇게 세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을 때쯤, 문이 다시 열렸다.
돌아온 건 늦은 시각이었다.
그의 외투에는 눈이 묻어 있었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
숨소리도 평소보다 거칠었다.
"어떻게?"
"장에 나가는 상인 중, 선우가 저택에 물건을 대는 이가 있습니다. 그를 통해 서신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도해볼 만합니다."
그는 외투를 벗으며 말을 이었다.
"그 상인도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얼마나?"
"제가 처리했습니다. 도련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묻지 않았다.
묻는다 해도, 그는 답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았다.
펜을 쥐었다.
다섯 살 아이의 손으로는 서투른 글씨밖에 쓸 수 없었다.
손가락 마디가 아직 작았다.
펜을 쥐는 힘조차, 원하는 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그래도 써야 했다.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몰랐다.
서른 해를 함께한 친구에게, 다섯 살 아이의 몸으로 편지를 쓴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알았다.
그가 이 편지를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필체를 보고 이상하다 여길까.
아니면 그냥 어린 아이의 장난이라 여기고 버릴까.
하지만 침묵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잉크가 살짝 번졌다.
"선우결 님께."
첫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멈췄다.
손이 떨렸다.
이름 세 글자를 쓰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서른 해 동안 수백 번은 불렀을 그 이름을, 지금은 종이 위에 옮기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 편지가 그에게 닿을 수 있을지, 아니면 도중에 누군가의 손에 가로채질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상인이 배신할 수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람이 먼저 알아챌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낮았지만, 없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편지를 쓰는 순간부터, 나는 더는 예전의 도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창밖의 눈은, 그날도 그치지 않았다.
펜을 쥔 손 위로, 창문을 넘어온 냉기가 스쳤다.
나는 다시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