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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흘이 지났다. 손끝의 저림은 사라졌다. 피부 위에 남았던 따끔거림도, 감각도, 전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느껴졌다. 사지 끝에서 단전으로 흘러들던 그 뜨거운 흐름. 서른 해를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몸이 아니라 기억이 반응하는 감각. 나는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박덕수의 눈이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서고에 갈 때도, 정원을 걸을 때도. 그의 시선은 늘 한 발짝 뒤에 있었다. 감시라고 하기엔 부드러웠다. 그런데 감시는 감시였다. "도련님, 오늘도 서고에 가십니까." "응." "제가 모시겠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서고로 걸었다. 다섯 살 아이의 걸음으로. 서른 해를 살아본 사람의 머리로. 그 간극이 매번 낯설었다.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정말 내가 기억하는 게 맞을까. 정말 그날, 마나가 반대로 흘렀던 걸까. 혹시 다섯 살 아이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서른 해의 기억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 어린 몸이 만들어낸 망상은 아니었을까. 그 질문이 밤마다 나를 붙잡았다. 답이 없었다. 증거가 없었다. 오전 11시. 서고 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책상 위에 길게 늘어졌다.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쳤다. 가문의 마나 수련서. 표지가 낡아 손끝에서 종잇가루가 묻어났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마나를 단전에서 사지 끝으로 밀어낸다.』 이 문장을 몇 번째 읽는지 셀 수 없었다. 스무 번쯤, 서른 번쯤. 읽을수록 확신이 흔들렸다. 틀렸다. 분명히 틀렸다. 단전에서 밀어내는 게 아니었다. 사지에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내가 느꼈던 흐름은 그 반대였다.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도 있었다. 가문의 모든 사람이 이 문장대로 수련했다. 큰형도, 둘째 형도, 심지어 누나도. 그들 중 누구도 이상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틀렸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내가 다섯 살 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증거가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박덕수가 서고 문 앞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날 오후, 기회가 왔다. 큰형의 검술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가문의 훈련장은 본채 뒤편, 흙바닥이 넓게 다져진 공터였다. 정오가 지나자 형제들이 하나둘 모였다. 큰형이 가장 먼저 왔다. 둘째 형이 그 뒤를 따랐다. 누나도 멀찍이 서서 지켜볼 준비를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냥 서 있었다. 다섯 살 막내가 훈련장 구석에 서 있는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교관이 목검을 나눠주었다. 나무 냄새가 진하게 났다. 손잡이가 거칠어서 쥐면 손바닥이 아팠다. 큰형이 먼저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의 얼굴에 힘줄이 섰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훈련장에 울렸다. "오, 확실히 빨라지셨습니다." 교관이 감탄했다. 다른 형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만이 표정 없이 서 있었다. "도련님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교관이 나에게 목검을 내밀었다. 지난번처럼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그저 예의상, 막내도 껴주는 시늉일 뿐이었다. 지난번엔 내가 이 질문에 목검을 들었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그 기억이 있어서인지, 교관의 눈에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나는 목검을 쥐었다. 무거웠다. 지난번과 똑같은 무게였다. 다섯 살 아이의 팔에는 여전히 버거운 무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훈련장의 소음이 멀어졌다. 바람 소리, 형제들의 숨소리, 교관의 목소리. 전부 뒤로 밀려났다. 사지 끝에서 단전으로. 지난번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두르지 않았다. 그날 밤의 감각을 그대로 따라갔다. 손끝이 저려왔다. 하지만 통증이 아니었다. 뜨거운 감각이 팔을 타고 흘렀다. 어깨를 지나, 가슴을 지나, 단전 쪽으로. 책에 쓰인 방향과 정반대였다. 그런데 그 반대 방향이,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웠다. 몸이 원래 알고 있었던 길처럼. 검을 들었다. 가벼웠다. 놀랄 만큼 가벼웠다. 방금까지 무겁던 목검이, 손끝에서 마치 젓가락처럼 느껴졌다. 나는 목검을 휘둘렀다. 다섯 살의 팔로는 낼 수 없는 속도였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큰형이 냈던 소리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였다.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교관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교관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큰형도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이상했다. 방금까지 자랑스러워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둘째 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목검을 내려놓았다. 숨이 가빴다. 다섯 살 아이의 폐로는 이 정도 움직임도 버거웠다. 하지만 숨이 가쁜 것과 별개로, 나는 확신했다. 책이 틀렸다. 내가 맞았다. 서른 해의 감각이 옳았다. 손끝에서 다시 열기가 올라왔다. 이번엔 통증이 아니라, 뭔가 다른 감각이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서른 해 만에 처음 느끼는 것 같았다. 아니, 정정한다. 이 몸으로는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성취감, 이라고 하면 맞을까. 아니면 확신에서 오는 안도감일까. 이름을 붙이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도련님, 지금 뭘 하신 겁니까." 교관이 다가와 물었다. 목소리에 경계가 섞여 있었다. 방금까지 형식적이던 말투가 사라지고, 진짜 질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마나를 반대로 돌렸다고? 가문의 수련서가 틀렸다고? 다섯 살 아이가,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믿어줄까. 그 순간, 훈련장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다가오는 발소리였다. 박덕수였다. 그의 눈이 커졌다. 숨이 찬 듯 어깨가 오르내렸다. "도련님…"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놀라움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 두 감정이 한 목소리에 뒤엉켜 있는 게,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그를 향해 웃으려 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확인했다. 내 기억이 진짜였다. 서른 해의 삶이 진짜였다. 그 확신은 뜨거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뭔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었다. 살아 있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훈련장 뒤편에서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눈길을 느꼈다. 누나였다. 표정이 없었다.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기뻐하는 것도 아니었고, 놀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찰하는 눈이었다. 그 눈빛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그때는 몰랐다. 오후 4시. 훈련이 끝난 뒤, 형제들은 각자 흩어졌다. 큰형은 아무 말 없이 먼저 훈련장을 떠났다. 평소라면 나에게 잘했다고 한마디쯤 던졌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교관이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방향이 이상했다. 본채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있는 별채 쪽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성공했다. 확실히 성공했다. 목검이 가벼워졌고, 속도가 빨라졌고, 모두가 그걸 봤다. 그런데 왜,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았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기도 전에, 박덕수가 내 옆에 다가왔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도련님, 오늘 일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 내 목소리가 예상보다 담담하게 나왔다. "다섯 살에 마나를 다루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이었다. "그것도 형님보다 나은 방식으로요."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가문에서 재능이 있는 아이는 칭찬받는 게 당연하지 않나. 빠르면 좋은 거고, 강하면 좋은 거지. 그게 왜 나쁜 일이 될 수 있다는 걸까. 박덕수의 얼굴에는 걱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 표정을, 나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얼굴엔 늘 부드러운 배려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아래 다른 무언가가 깔려 있었다. 두려움. 그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사람을 향한 두려움이 아니라, 상황을 향한 두려움. 나는 그에게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나를 데리고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하지만 저녁이 되기 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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