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보름 동안, 저택은 조용한 전쟁터가 됐다.
설도현은 매일 밤 나를 서재로 불렀다.
"마력을 억누르는 법을 가르쳐 주마."
손을 맞대고, 숨을 고르고, 배 속 열기를 꾹 눌러 담는 연습을 반복했다.
엔지니어식으로 표현하면 리소스 제한이었다.
최대 사용량을 강제로 낮추는 것.
다만 이게 사람 몸으로, 그것도 세 살짜리 몸으로 되는 건지는 의문이었다.
첫날은 완전히 실패했다.
손끝에서 불꽃이 튀었고, 커튼이 반쯤 탔다.
"으아앙!"
"괜찮다, 다시 해보자."
설도현의 목소리는 지칠 줄 몰랐다.
둘째 날은 좀 나았다. 불꽃 대신 스파크만 튀었다. 셋째 날엔 스파크도 안 튀었는데, 대신 방 안 공기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온도계가 있었다면 사우나 수준을 찍었을 거다.
"···덥다."
박노식이 이마를 훔치며 창문을 열러 갔다.
넷째 날부터는 진짜 훈련이 시작됐다. 설도현이 내 앞에 촛불 하나를 켜놓고 말했다.
"이 불을 끄지 말고, 커지지도 않게 유지해봐라."
간단해 보이는데, 이게 진짜 지옥이었다. 마력이라는 게 흐르는 물 같은 거라서, 아예 막으면 터지고 그냥 두면 흘러넘쳤다. 딱 그 사이, 촛불만큼의 틈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었다.
일곱째 날, 처음으로 촛불이 삼십 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됐다."
내 입에서 반말이 툭 튀어나왔다. 세 살짜리 몸으로 반말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이제 안 들었다. 어차피 속으로는 계속 반말이었으니까.
설도현이 처음으로 웃었다. 아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정도였지만.
"잘했다."
박노식은 매 저녁마다 따뜻한 차와 마른 수건을 들고 와서 조용히 지켜봤다. 훈련이 실패로 끝난 날엔 수건이 두 장, 성공한 날엔 과자가 한 접시 추가됐다. 나름의 채점 방식인 모양이었다.
하준은 학당에서 돌아오면 곧장 내 방으로 와서 숨 고르는 법을 같이 연습했다.
"나도 어릴 때 이렇게 배웠어. 너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지만."
[격려 목적 발화입니다.]
대괄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니, 굳이 저런 것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나. 하준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거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저 목소리는 여전히 뭔가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뭔지 아직도 정확히 몰랐지만, 최소한 나쁜 쪽으로 쓰이진 않는다는 확신이 조금씩 생겼다.
열흘째, 열하루째, 열이틀째. 훈련은 계속됐고 촛불은 점점 더 오래 버텼다. 열사흘째 되던 밤엔 일 분을 넘겼다. 그날 밤 박노식이 과자를 두 접시나 내왔다.
"···이거 다 못 먹는데."
"드셔야 합니다. 성장기이십니다."
세 살한테 성장기 타령을 하는 게 웃겼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그냥 먹었다.
* * *
보름째 되는 날, 왕실 문양의 마차가 다시 저택 앞에 멈췄다.
이번엔 은폐가 아니라 정면 대응이었다.
검진관이라는 남자는 회색 로브를 걸친 중년이었다. 눈빛이 서류를 훑듯 날카로웠다. 걸음걸이도 딱딱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보폭으로 걸어와서, 응접실 문 앞에서 딱 멈춰 섰다.
"모든 가문 아동은 검진에 응해야 합니다. 규정입니다."
[규정이 아니라 특별 지시입니다.]
또 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이 목소리는 상대의 진짜 의도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남자, 그냥 순찰 오듯 온 게 아니라 뭔가를 노리고 온 거였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도현이 나를 데리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짚었는데, 그 손끝에서 미세한 긴장이 전해졌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나만큼이나 조마조마한 모양이었다.
검진관 앞에 서자, 그가 내 손목에 은색 팔찌 같은 장치를 걸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검진 장치 활성화. 마력 수치 측정 시작.】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금이다. 배운 대로, 배 속 열기를 최대한 짓눌러 담았다.
식은땀이 났다. 세 살 몸으로 이 정도 자제력을 발휘하는 게 얼마나 무리인지, 근육이 다 저릴 정도였다. 배 속 열기가 마치 압력솥 안에서 끓는 국물처럼 자꾸 뚫고 나오려 했다. 참아, 참아. 촛불만큼만. 촛불만큼만 남기고 다 눌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응접실은 조용했다.
장치에서 낮은 빛이 흘렀다.
검진관의 눈이 숫자를 훑었다.
"···평균 범위 내입니다."
안도의 한숨이 응접실을 채웠다. 설도현의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나도 참았던 숨을 몰래 내뱉었다. 됐다. 보름간의 훈련이 헛짓이 아니었다.
"확인됐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검진관이 팔찌를 회수하려는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
장치 표면에서 미세한 진동이 남아 있었다.
지지직.
짧은 잡음이 들렸다.
검진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그가 팔찌를 눈앞에 들어 다시 살폈다. 팔찌 표면에 자잘한 빛의 결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경고 : 억제된 마력 신호에서 이상 파형 감지.】
내 눈앞에도 똑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등줄기로 소름이 쫙 끼쳤다.
···망했다.
숨을 눌러 담는 데는 성공했지만, 완전히 지운 게 아니라 그냥 압축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압축된 신호는, 새어 나온 그 잔여물만으로도 정상 범위를 벗어나 보였던 거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리소스를 강제로 제한하면 로그에 에러가 찍히는 거랑 비슷한 이치였다. 완전 종료가 아니라 강제 스로틀링이었으니까. 근데 그걸 검진관이 잡아낼 줄은 몰랐다.
검진관이 설도현을 쳐다봤다.
"이 파형, 처음 보는 유형입니다."
"···기기 오류가 아닐까요."
설도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검진관은 대답 없이 팔찌를 소중히 서류함에 담았다. 서류함 뚜껑을 닫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마치 폭탄을 다루는 것 같았다.
"본원에 가져가서 정밀 분석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규정입니다."
이번엔 [진짜 규정입니다.] 라는 대괄호가 따라붙었다.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박노식이 응접실 구석에서 창백해진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떨림을 정확히 봤다.
하준은 문가에 서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뭔가 튀어나가려는 걸 억지로 참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행히 그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진관이 마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돌아봤다.
표정에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처음으로 스쳤다. 아까까지 서류 같던 눈빛이 순간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
"···세 살에 이 정도 억제력이라니."
그가 중얼거리듯 흘린 말이었지만, 나는 정확히 들었다.
그 말투에 뭔가 섞여 있었다.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흥미. 그리고 그 흥미 아래 깔린, 뭔가를 더 캐보고 싶다는 욕구 같은 것.
마차 문이 닫히고,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마차가 떠나고 저택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응접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설도현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작됐구나."
그가 낮게 뇌었다.
박노식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굳어 있었다.
하준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확실한 하나를 읽었다.
이 검진 결과가 어디로 흘러가든, 이제 이 저택 안에서만 나를 숨기는 건 불가능해졌다는 것.
보름 동안 촛불 하나를 지키겠다고 애썼던 시간이, 결국 다른 종류의 불씨를 세상에 던져버린 셈이었다.
【다음 단계 : 왕실 마법사원 정밀 조사 예정.】
창이 떠오른 채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경고음처럼, 아주 오래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임이 멈추지 않는 걸 보고 있자니, 이게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졌다. 뭔가가, 이제 곧, 이 저택 문턱을 넘어 들어올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