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 세 번 마력 점검을 받았다.
아침, 정오, 취침 전.
정확히 시계처럼 돌아가는 스케줄이었다.
설도현이 직접 손목을 잡을 때도 있었고, 낯선 하인이 대신할 때도 있었다.
손목을 잡는 손길은 매번 조심스러웠지만, 그 조심스러움 자체가 오히려 더 신경을 긁었다.
꼭 폭탄 처리반이 시한폭탄 다루는 것 같은 손길이었으니까.
매번 같은 창이 떴다.
【마력 수치 측정 중···】
그 문구가 뜰 때마다 손목 안쪽이 미세하게 저릿했다. 마치 혈관 속으로 뭔가가 흘러 들어가는 느낌.
측정값은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위험 근처를 서성였다.
빨간 게이지가 8, 9를 찍었다가 살짝 내려가는 정도.
이 정도면 그냥 회사 서버였어도 벌써 장애 티켓이 세 개는 열렸을 거다. 아니, 티켓이 아니라 팀장이 직접 자리로 뛰어와서 "이거 왜 이래요" 소리 질렀을 거다.
근데 여긴 팀장 대신 집사가 온다는 게 다를 뿐이지.
측정이 끝나면 다들 표정 관리를 했다.
안심한 표정도 아니고, 실망한 표정도 아니고, 그냥 무표정.
그 무표정이 제일 무서웠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방문 앞에 낯선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 나와 비슷한 눈매. 열두 살쯤 되어 보였다.
키는 나보다 훨씬 컸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선에 아직 애기 티가 남아 있었다.
"네가 하린이구나."
목소리가 담담했다. 어른들처럼 조심스럽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러웠다.
그게 오히려 신선했다.
"내가 하준이야. 네 오빠."
···오빠라니.
이 저택에 형제가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설도현도, 박노식도, 심지어 그 대괄호 목소리도 여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존재.
숨겨놓은 카드였나, 아니면 그냥 내가 놓친 정보였나.
하준은 방에 들어와 내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방석이 눌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손에 든 종이봉투에서 말린 과일 몇 조각을 꺼내 건넸다. 마른 살구 냄새 같은 게 훅 풍겼다.
"먹어. 이건 아버지도 모르는 간식이야."
[감시 시간에는 아버지가 안 오시거든요.]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대괄호로 겹쳐 들렸다.
존댓말. 하준의 나이답지 않은 격식체.
누가 열두 살짜리 입에서 "감시 시간에는 아버지가 안 오시거든요" 같은 문장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겠어.
의아했지만 일단 넘어갔다. 어차피 이 세계는 처음부터 이상했으니까.
말린 살구 조각을 입에 넣었다. 새콤하면서도 쫀득한 맛이 혀 위에서 퍼졌다.
"오늘은 내 차례야. 감시 로테이션."
감시 로테이션이라니, 그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더 소름 돋았다.
회사 다닐 때도 로테이션이란 말 들으면 짜증 나던데, 여기서까지 이 단어를 들을 줄이야.
"감시 로테이션이 뭐야?"
내 발음은 여전히 어눌했지만 뜻은 명확히 전달됐다.
하준이 잠깐 멈칫했다.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너 되게 어른스럽게 말하네."
[세 살짜리답지 않은 발화입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대괄호 목소리, 설마 내 내면을 읽는 건가.
아니면 그냥 이 세계 특유의 뭔가인가.
관찰 로그를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 화면 한 켠에 자막을 깔아주는 것처럼.
"질문에 대답 안 해줄 거야?"
일단 화제를 돌렸다.
하준이 한숨을 쉬었다.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우리 가족은 교대로 너를 지켜봐. 아버지, 박 집사님, 그리고 나."
"왜?"
"···그건 지금 말해줄 수 없어."
"왜 못 말해줘."
"약속이야."
짧고 단호했다.
[정보 개시 제한 규정에 따라 답변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목소리.
이건 확실히 하준의 속마음이 아니라, 뭔가 외부에서 삽입되는 정보 같았다.
꼭 게임 속 NPC한테 질문했더니 "그 정보는 아직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하는 메시지 뜨는 느낌.
···내가 시스템처럼 이 세계를 읽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세계 자체가 시스템처럼 돌아가는 건가.
둘 다 소름 끼치는 가설이었다.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다. 전자면 내가 진짜 미친 거니까.
하준이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손이 크고 따뜻했다.
"언젠가는 알려줄게.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
"···네가 좀 더 크면."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그 눈빛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이 오빠는 나를 감시 대상이 아니라 동생으로 보고 있었다.
그게 이 저택에서 처음으로 느낀 온기였다.
하준은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창밖 해가 기울기 시작할 즈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가봐야 해. 다음 로테이션이 올 시간이거든."
"또 올 거야?"
"당연하지. 나 네 오빠잖아."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오빠라는 관계도, 로테이션이라는 시스템도, 뭔가 서로 안 맞는 조합처럼 느껴졌으니까.
* * *
그날 저녁, 박노식이 처음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독 조심스러웠다.
예상보다 키가 작고, 흰 수염을 짧게 다듬은 노인이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도 있었다. 오래 훈련받은 사람 특유의 자세.
"작은 아가씨."
존댓말이 자연스러웠다.
"오늘 하루 어떠셨습니까."
의례적인 질문 같았지만 눈빛은 유심히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 눈빛이 꼭 CCTV 렌즈 같았다. 감정 없이, 그냥 기록하는 눈.
"괜찮았어요."
"다행입니다."
박노식이 창가에 앉아 조용히 나를 지켜봤다.
방 안에는 잠시 침묵만 흘렀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박 집사님."
"네, 말씀하십시오."
"저한테 뭔가 있죠."
노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동요하고 있습니다.]
대괄호 목소리가 다시 끼어들었다.
이건 확실했다. 이 목소리는 상대의 반응을 관찰해서 알려주는 무언가였다.
마치 로그 뷰어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능력, 편리한데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남의 속마음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었으니까.
"제가 뭔가 잘못된 거잖아요. 다들 그렇게 보시니까."
박노식이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게 늘어졌다. 초침이 세 번, 네 번 돌아갈 만큼.
"···아가씨는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뭔데요."
"그건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똑같은 답변이었다. 하준과 똑같은 벽.
정말 이 집안 전체가 같은 대본을 외운 건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박노식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하준의 목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언젠가 아셔야 할 때가 오면, 아가씨는 반드시 알게 되실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유독 크게 울렸다.
"오늘은 이만 쉬십시오."
문이 닫히기 직전,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슬리퍼가 아니라 구두 소리. 뛰는 소리였다.
"집사님! 정문에 마차가 왔습니다!"
박노식의 발걸음이 멈췄다.
등이 순간적으로 굳는 게 보였다.
"어느 문양입니까."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왕실입니다."
순간, 저택 전체가 정지한 것 같았다.
바람 소리도, 촛불 흔들리는 소리도, 모든 게 멈춘 듯한 정적.
박노식의 얼굴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