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얘들아, 미소국 먹고 싸우자

3화

노예시장은 수도 뒷골목 깊숙한 곳에 있었다. 큰길에서 세 번 꺾어 들어가야 나오는 그 좁은 골목은 낮인데도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썩은 짚 냄새와 오물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쇠창살이 촘촘히 박힌 나무 우리 안에 사람들이 짐짝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문명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정의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세계에서는 전투 등급이 낮거나 부양할 곳을 잃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나갔다. 특히 '대식' 디버프를 가진 이들은 최하 취급이었다. 먹는 양이 일반인의 몇 배씩 되면서 별다른 능력도 없다면, 이 세계에서는 그냥 밥만 축내는 짐덩이였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들을 '구멍'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돈을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그런 이들 중 하나가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푸른빛 머리카락에 개의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였다. 나이는 열두 살쯤 되어 보였는데, 몸은 그보다 훨씬 작고 앙상했다. 갈비뼈가 옷 밖으로 드러날 정도였고, 팔목은 내 손가락으로도 한 바퀴 감고 남을 만큼 가늘었다. 그런데도 눈빛만은 이상하게 죽지 않은 채 형형하게 빛났다. 다른 우리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저 소녀만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듯 훑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서 뭔가를 봤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든데, 굶어 죽어가면서도 아직 뭔가를 놓지 않은 사람의 눈이었다. "저 애는 왜 저래요?" 지나가는 상인에게 물었다. 상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그래도 손님이니까 대답은 해줘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식 디버프요. 하루에 어른 열 명분을 먹어치우는데 전투력은 거의 없어서. 검술 기프트가 있긴 한데 굶어 죽어가는 판이라 써먹지도 못해요. 그냥 헐값에 팔려고 내놨습니다." "검술 기프트가 있는데도요?" "기프트가 있어봤자 뭐 합니까. 밥 먹일 돈이 더 나가는데. 저 나이 애 열 명분 먹는 거 감당할 주인이 어디 있겠어요. 차라리 전투력 낮은 성인 노예 하나 사는 게 훨 낫지." 상인의 말투에는 죄책감 같은 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냥 시장에서 흔히 하는 물건 설명 정도의 어조였다. 나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헐값이라는 게 얼마인지 물었다. 상인이 답한 액수는 동화 500냐. 내가 가진 전부의 몇 배는 됐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 지갑 걸림 없이 흥정을 시작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저 소녀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걸린 게 아니라, 뭔가 계산 이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400냐에 하죠." "아니, 무슨 소리세요. 500냐도 손해 보고 파는 겁니다." "350." "장난하십니까?"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했다. 상인은 처음엔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가, 내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가격을 부르니까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런 애를 뭐하러 저렇게까지 사려고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라도 이해가 안 될 상황이었다. 결국 여관비까지 아껴서 모은 돈으로, 정확히는 다음 사흘간 잠잘 곳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 소녀를 사들였다. 지갑 안에 남은 동전 몇 개를 세어보고는 잠깐 현실을 자각했다. 씨발, 나 오늘부터 노숙이구나. 그런데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이름을 물었더니, 소녀는 짧게 대답했다. "리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사람 같은 목소리였다. 리나는 우리에서 나온 뒤에도 눈빛에 경계심을 가득 담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마치 언제든 나를 물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빨을 슬쩍 드러내는 것도 봤다. 개의 귀가 쫑긋 섰다가 다시 눕는 걸 반복하는 걸 보면, 경계와 허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배고프니?"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대식 디버프를 가진 아이한테 배고프냐고 묻는 건, 물고기한테 물 있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리나는 대답 대신 배에서 나는 소리로 답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마치 배 속에서 작은 짐승이 아우성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골목 한구석으로 데려가 손을 오므렸다. 익숙한 감각이 손바닥을 채웠고, 김이 오르는 미소국 한 그릇이 만들어졌다. 국물 표면에 뜬 기름기가 반짝였고, 향긋한 냄새가 좁은 골목에 순식간에 퍼졌다. 리나에게 건넸다. 리나는 그릇을 받아 들고 잠시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국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릇 가장자리를 이빨로 긁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급하게 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일어났다. 리나의 몸에서 옅은 빛이 새어나왔다. 푸른빛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흩날렸고, 등에 붙어 있던 꼬리가 곧추서듯이 뻗쳤다. 눈동자 색깔이 순간적으로 짙어졌다. 방금까지 앙상하게만 보였던 몸의 윤곽이 아주 잠깐, 뭔가 팽창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리나가 근처에 버려진 나무 막대기를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 예고도 없이 그 막대기를 휘둘렀는데, 그 동작이 방금까지 굶어 죽어가던 아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막대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마치 칼바람 같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했고, 낭비되는 힘이 없었다. "이게…… 뭐야." 리나 본인도 놀란 눈으로 자기 손을 바라봤다. 방금 뭘 한 건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손바닥을 몇 번이나 펴보고 쥐어보고, 그러다 자기 팔뚝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방금 전까지 뼈밖에 없던 팔에 뭔가 다른 게 붙은 느낌이 낯설다는 표정이었다. "몸이…… 가벼워요." 리나가 처음으로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그릇을 하나 더 청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오므려 또 한 그릇을 만들어줬다. 리나는 그것도 순식간에 비웠고, 그럴수록 빛은 더 짙어졌으며 몸놀림은 더 날카로워졌다. 세 번째 그릇을 청했을 땐 이미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의 경계심 대신, 뭔가 확신에 가까운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었다. 이거였다. 이게 내 능력의 진짜 의미였다. 미소국은 그냥 밥이 아니었다. 대식 디버프를 가진 이들에게 먹였을 때, 그 디버프를 원동력으로 바꿔주는 열쇠였다. 남들에게는 짐이었던 그 디버프가, 미소국을 먹은 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역전되는 구조였다. 먹는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위력도 비례해서 커지는 것 같았다. 조상신이 나를 완전히 버린 게 아니었다. 그냥 사용법을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재조립되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이 능력을 그냥 밥 한 그릇 만드는 잡기술로만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벌어진 건 그 정의를 통째로 뒤엎는 광경이었다. "너…… 검술 기프트도 있다고 했지."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에는 처음의 경계심이 조금 걷혀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낯선 것이 채워지고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는데,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감정 때문이었다. 가능성. 이 능력이 저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첫 단서를 방금 내 눈으로 확인했다. 손바닥으로 국그릇을 만들 때마다 느껴지던 그 허무함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리나는 여전히 막대기를 손에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언제든 물어버릴 준비를 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묻고 싶은데 말을 고르지 못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능력에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대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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