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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폭음은 학원 본관 마술사 대기실 쪽에서 났다. 궁정 마술사장 강태오가 상주하는 곳이었다. 처음엔 그냥 화력 실험이 잘못됐나 싶었다. 마술사들이 새 부적을 시험하다 사고를 내는 일은 한 학기에 한두 번은 꼭 있었으니까. 그런데 폭음 뒤에 이어진 정적이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곧바로 경보 부적이 울려야 했다. 그게 없었다. 나와 소율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발밑에서 계단 자체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건물 문제인지 내 다리가 풀린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복도마다 조명 부적이 깜빡거리다 완전히 꺼졌고,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반대 방향으로 몰려갔다. 누군가는 넘어졌고, 넘어진 애를 밟고 지나가는 애도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다. "영맥이 죽었어!" "내 지팡이가 안 먹혀!" 부적을 아무리 문질러도 반응이 없다는 아이들의 절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한 녀석은 손바닥에 부적을 대고 침까지 발라가며 문지르고 있었는데,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기서 멈춰 설명해줄 여유가 없었다. 자동마법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세상에서 그 자동이 갑자기 멈췄을 때 벌어지는 일은 상상보다 단순했다. 모두가 순식간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됐다. 편리함이라는 게 결국 이런 식으로 배신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갔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길 처지는 아니었지만. "교수님, 저기!" 소율이 앞을 가리켰다. 대기실 문틈으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자 그 연기가 확 뿜어져 나와 얼굴을 덮쳤다. 매캐한 냄새에 눈이 시려서 반사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다. 강태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의 지팡이는 반쪼가리로 부서진 채 불꽃을 뿜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의 잔재가 아직도 파직거리며 튀었다. "강 마술사장님!" 내가 다가가 부축하려는데, 소율이 먼저 뛰어들어 그를 잡아 일으켰다. 손이 야무지게 움직였다. 그가 콜록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얼굴에 화상 흔적이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아 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취소해야 했다. 이 사람 몸 상태보다 훨씬 큰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까. "뭐, 뭐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주문을 쓰셨습니까?" "평소처럼··· 화염 계열 상급 부적을 썼을 뿐인데, 갑자기 영맥이 응답을 안 하는데도 지팡이가··· 알아서 폭주했어. 계산이 안 끝난 채로 마력이 그냥 쏟아졌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이해됐다. 영맥이 봉인되면서 계산 기능이 멈췄는데, 지팡이에 저장된 마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마력이 통제되지 않은 채 터져 나온 거였다.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원리 없이 힘을 다루면 벌어지는 전형적인 사고였다. 세상 편한 마법. 계산은 영맥이 다 해주고, 인간은 그냥 손끝만 갖다 대면 되는 구조. 그 계산기가 꺼지자 다들 손에 쥔 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을 뿐이다. "보통 이럴 때는 마력을 손으로 직접 흩어 제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쿠웅, 하는 낮은 진동이 발밑에서 올라와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다. 창밖을 보니 학원을 넘어 왕도 전역의 불빛이 차례로 꺼져가고 있었다. 가로등, 상점가 조명, 심지어 왕궁의 첨탑 불빛까지도. 마치 누군가 위에서 스위치를 하나씩 내리는 것처럼, 순서대로, 착실하게. "이건··· 학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소율이 창가에 붙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 평소의 야무진 기색이 사라져 있었다. 영맥은 왕국 전역을 도는 마력 관로 시스템이다. 학원의 봉인이 학원에서만 끝나지 않고 관로를 따라 왕국 전체로 퍼지고 있는 거였다. 학과 폐지 결의안 하나가, 삼십 년간 유지되던 안전장치를 뽑아버린 셈이었다. 서명 몇 개, 회의 삼십 분. 그걸로 왕국 하나가 통째로 어두워지는 데 걸린 시간이 이 정도였다니, 참 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대기실 문이 다시 벌컥 열리며 오정한이 뛰어들었다. 좀 전까지 나를 냉정하게 내쫓던 사람이 지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넥타이도 반쯤 풀려 있었는데, 저 인간이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나는 처음 봤다. "한 교수! 왕궁에서 연락이 왔어. 왕도 전역 영맥이 정지됐다고 하네. 대체 무슨 일이야!" "제가 계속 말씀드렸잖습니까. 이 학과가 보수 역할을 했다고." 말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하루 전 그 회의실에서 들었던 말들이 아직 귀에 생생했으니까. 예산 낭비, 실효성 없는 커리큘럼, 시대에 안 맞는 학과. 그 표현들을 곱씹으며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 그럼 지금 당장 되돌릴 방법이 있나?" 순간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사흘 전만 해도 낭비되는 예산이라며 나를 잘라내려던 사람이, 이제는 매달리듯 나를 붙잡고 있었다. 세상 참 편리하게 돌아간다. 필요할 때만 부르고, 아닐 때는 내치고. 이럴 때 속으로 실컷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도 아까웠다. "바로는 안 됩니다. 영맥이 봉인되는 원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그걸 되돌리려면 룬석판 각인을 다시 활성화해야···." "그러니까 할 수 있다는 거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 혼자로는 부족합니다." "뭐가 더 필요한가! 사람이면 사람, 예산이면 예산, 뭐든 다 대주겠네!" 방금까지 예산이 아까워 학과 하나를 통째로 없애려던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 웃음이 나왔다. 물론 웃을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참았다. 강태오가 그 옆에서 아직도 몸을 떨며 벽에 기대고 있었다. 부서진 지팡이를 손에 쥐고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대기실 바닥에 흩어진 강태오의 부서진 지팡이 파편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왔다. 파편들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저게 왜···." 강태오가 뒷걸음질 쳤다. 그 큰 몸으로 뒤로 넘어질 뻔하면서까지 물러나는 모습이, 이 상황에서도 조금 우스웠다. 마력 파편이 하나로 뭉치면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그 소용돌이 안에서 희미한 문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보였다. 룬 문자였다. 삼십 년 전 각인과 똑같은 형태의 문자. 나는 그 문자들을 눈으로 훑으며 머릿속으로 자료실에서 봤던 옛 각인 도록을 떠올렸다.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이게 왜 여기서 재현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최소한 낯선 현상은 아니라는 확신은 들었다. "저건 영맥의 잔재 마력이 폭주하면서 우연히 룬 형태를 만든 겁니다. 위험합니다, 다들 물러나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소용돌이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곧게 뻗어 나왔다. "교수님!" 소율이 소리쳤다.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거리가 닿지 않았다. 몸을 피할 틈도 없이 소용돌이가 내 가슴께에 닿았고, 뭔가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파고드는 감각이 들었다. 뜨겁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마치 누가 심장 바로 옆에 불붙은 쇠막대를 꽂아넣는 느낌이었다.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정신이 아찔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을 뻔했는데, 옆에서 소율이 팔을 붙잡아준 덕에 겨우 버텼다.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귓속에서 이명이 웅웅 울렸다.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나서, 룬석판에 있던 각인 하나가 스르륵 지워졌다. 마치 그게 내게 옮겨 온 것처럼. 가슴께가 뜨끈했다. 옷 위로 손을 대보니 화상은 없었는데, 뭔가가 그 아래에서 옅게 빛을 내고 있다는 게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오정한과 강태오, 심지어 뛰쳐나가려던 학생들까지 모두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 가슴께에서 옅게 빛나는 룬 문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정적이 잠깐 흘렀다. 다들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지는 얼굴들이었다. "저게··· 뭡니까, 저 표식은." 강태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답을 몰랐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영맥이, 나를 골랐다. 왜인지는 몰랐다. 원하지도 않았다. 학과 하나 지키는 것도 힘겨워서 서류 뭉치나 붙잡고 있던 내가, 왕국 전체 마력 시스템에 뭔가로 낙점됐다는 이 상황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왕국 전체가 불빛을 잃어가는 이 순간, 이 표식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야 할 사람이 바로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소율이 여전히 내 팔을 붙잡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걱정하는 건지 놀란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정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한 교수, 자네가 해결해야 하네. 자네밖에 없어." 사흘 전엔 자격을 박탈한다더니, 이제는 매달리고 있다. 세상이 참 편리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때만 부르고, 아닐 때는 내치는. 속으로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럴 거면 진작 예산이나 좀 남겨두시지 그러셨습니까, 라고. 하지만 이 순간 화를 낼 여유는 없었다. 창밖으로 왕도 마지막 불빛까지 완전히 꺼졌기 때문이다. 암흑 속에서, 내 가슴께의 룬 문자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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