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고전마도 최후사범

1화

가온 왕국에서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주문이 아니다. 영맥(靈脈) 접속 카드를 어디서 발급받는지, 그 카드를 학원 정문 인식석에 어떻게 태그하는지부터 배운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된다. 화염구를 쏘고 싶으면 화염 계열 부적을 사서 지팡이에 꽂고 방아쇠 문양을 그리면 끝이다. 원리는 몰라도 된다. 영맥이 다 계산해준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고전 주문과학과에는 학생이 없다. 정확히는, 학생이 한 명 있다. 오늘도 강의실 맨 앞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은소율이라는 여학생이다. 남작가 딸인데, 영맥 적성 검사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들었다. 마력이 없는 건 아닌데 영맥 카드가 인식을 거부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낙오자 낙인이 찍혔고, 자동마법 학과 어디에도 못 붙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텅 빈 강의실에 앉아 낡은 두루마리를 펼치는 학생 한 명과, 그 앞에서 삼십 분 넘게 룬 문자 하나를 그리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교사 하나. 이게 왕립마법학원 고전 주문과학과의 전부다. 강의실은 원래 오십 명은 앉아야 정상인 규모였다. 지금은 책상 마흔아홉 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고, 나머지 한 개에만 사람이 앉아 있다. 가끔은 이 빈자리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망상이겠지만, 그런 망상이라도 안 하면 하루가 너무 조용해서 버티기 힘들다. "교수님, 이거 왜 안 되는 걸까요." 소율이 손끝으로 룬을 짚으며 물었다. 화염 룬인데 불이 아니라 미약한 열기만 올라오고 있었다. "의도가 부족해서 그래." "의도요?" "영맥은 네 의도를 계산해서 대신 실행해주는 시스템이야. 그런데 넌 영맥이 안 붙잖아. 그러니까 룬 자체에 네 의도를 직접 눌러 넣어야 해. 손끝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불이 붙는다는 확신을 그림에 새기라고." "확신이요···." 소율은 다시 눈을 감고 룬을 노려봤다. 이번엔 손끝에서 손톱만 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됐다!" "의도가 부족하다고 했지, 재능이 부족하다곤 안 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이 아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왜냐면 이 학과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나와 이 학생, 딱 둘뿐이라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다고 말해줘도, 없다고 말해줘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그냥 있다고 말해주는 게 서로에게 이득이다. 삼십 년 전만 해도 고전 주문과학과는 학원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영맥이 없던 시절, 마법사들이 하나하나 룬을 그리고 원소의 흐름을 계산해서 주문을 완성하던 시절 말이다. 그 시절 교재를 보면 지금도 감탄이 나온다. 화염 룬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계산식이 두 장을 넘어간다. 지금 자동마법과 학생들은 그 두 장짜리 계산을 부적 한 장으로 대체한다. 편리한 세상이다. 영맥이 왕국 전역에 깔리면서 그 자리를 다 대체해버렸다. 이제는 아무나 부적을 사서 지팡이에 꽂으면 마법사가 된다. 원리를 모르는 마법사가. 그리고 원리를 아는 마법사는, 나 하나 남았다.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왜냐면 이 학과 교사 월급이 이번 학기부터 반으로 깎였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적으니 예산도 적어야 한다는 게 재무처 논리였는데, 학생이 한 명뿐이라 예산도 딱 한 명분만 나온다는 계산법이 이해는 가면서도 기분이 더러웠다. "교수님, 오늘 점심은 뭐 드세요?" "물." "에? 진짜요?" "어제는 빵이었으니까 오늘은 물로 마무리해야 균형이 맞지." "그게 무슨 균형이에요. 그냥 굶는 거잖아요." "영양학적으로는 굶는 게 아니라 절식이라고 하지. 훨씬 고급스러운 표현이야." 소율이 잠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도시락 통을 슬며시 내밀었다. "저희 집 요리사가 반찬을 너무 많이 싸줘서요."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받았다. 남작가 딸이 자기 도시락을 이렇게 자주 '남긴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뚜껑을 열자 고기 조림과 계란말이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반찬이 너무 많이 남았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두 사람 몫으로 싸온 것 같은 배치였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대신 오늘 룬 하나 더 가르쳐주세요." 장사꾼 기질이 있는 아이였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식으로 계산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인간이 옆에 있으면 최소한 배는 곯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긴다. 창밖으로 학원 본관 쪽이 보였다. 자동마법과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맥 카드를 목에 걸고, 부적이 가득한 지갑을 들고 다닌다. 마법을 쓸 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영맥이 대신 계산해주는 결과물을 받아 쓰는 것뿐이다. 그걸 알려줘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잘 굴러가는데 왜 원리를 알아야 하냐는 게 그들의 논리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 더 짜증이 났다. 실제로 잘 굴러가니까. 원리를 몰라도 화염구는 나가고, 방어막은 쳐지고, 학점은 나온다. 원리를 아는 쪽은 나 하나뿐인데, 그 나 하나가 지금 도시락 한 통에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처지다. 이게 지식의 가치라는 게 이런 식이면, 지식은 대체 왜 쌓는 걸까 싶다가도, 소율이 룬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또 그럭저럭 답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나는 늘 텅 빈 학과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정리한다. 정리할 서류가 딱히 없어서 사실은 낡은 주문서를 다시 필사하는 게 전부지만, 그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필사한 주문서는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종이가 삭기 전에 옮겨 적어두지 않으면 삼십 년 전 마법사들이 남긴 계산식이 통째로 사라진다. 그런 걸 지키는 게 내 역할이라고 스스로 정해두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날도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조교 하나가 헐떡이며 들어왔다. 뛰어온 모양인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했다. "교수님, 재무대신님이 오신답니다." "누가?" "조필상 재무대신님이요. 예산 관련해서 학과를 직접 방문하신다고···." 재무대신이 이 유령 같은 학과를 왜 직접 찾아온단 말인가. 예산이야 매년 삭감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것도 이제는 삭감할 게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바닥까지 긁어낸 상태였다. 책상도 낡았고, 등불도 반은 꺼져 있고, 교사 월급도 반으로 잘렸다. 여기서 뭘 더 자르겠다고 대신이 직접 걸음을 한다는 건가. "확실한 정보야? 서기관 보내는 거 아니고?" "아뇨, 대신님이 직접 오신다고 공문이 내려왔어요. 제가 직접 봤습니다." "공문에 이유는 안 적혀 있고?" "그냥 '현장 시찰'이라고만···." 현장 시찰이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시찰이라는 건 원래 볼 게 있는 곳에 가는 거다. 이 학과에 볼 게 뭐가 있나. 책상 마흔아홉 개의 먼지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언제 오신다는데?" "내일 오전이랍니다." 소율이 도시락 통을 정리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교수님, 안색이 왜 그러세요?"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예산 더 깎일까 봐요? 이제 깎을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상한 거야. 깎을 게 없는데도 온다는 건." 삭감할 예산이 없는데 굳이 사람이 온다는 건, 삭감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하러 온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직 그게 뭔지 몰랐다. 학과를 아예 없애러 오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머릿속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봤지만 하나같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최선의 경우가 '아무 일 없음'이고, 그 밑으로는 죽 나쁜 쪽으로만 뻗어 있었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행히 그 예감이 틀리길 바랐지만, 그런 바람이 이뤄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교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필사하던 주문서를 손에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소율이 도시락 통을 챙겨 나가면서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더니 물었다. "교수님, 내일 저도 와야 할까요?" "수업 있는 날이잖아." "그렇긴 한데, 재무대신님이 저 보면 뭐라고 안 할까요? 낙오자라고···." 낙오자. 그 말을 자기 입으로 태연하게 뱉는 게 안쓰러웠지만, 걱정을 덜어주는 대신 다른 말을 골랐다. "올 거면 와. 대신 룬 하나 더 배운 뒤에 오는 거로 하자." 소율이 픽 웃었다. 그 웃음이 어색하게 걸려 있는 걸 보니, 나만큼이나 이 아이도 내일이 뭔가 심상치 않은 하루가 될 거라는 걸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창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등불 반쪽이 꺼진 사무실에서, 나는 필사하던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오전, 조필상 재무대신이 이 유령 학과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가 무엇을 들고 올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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