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숲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새소리가 없었다. 완전히. 이 계절 이 시간이면 최소한 몇 종류는 지저귀어야 정상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빛도 평소보다 탁했다. 마치 누가 색을 반쯤 걷어낸 것처럼.
"조용하네."
최민재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손가락이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버릇이었다. 긴장하면 저렇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평소보다 좀 그렇긴 하죠."
배진우가 활을 고쳐 메며 대답했다. 목소리에 긴장이 살짝 묻어났다.
조현수가 앞장서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정찰수 특유의 신중한 발걸음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지면을 먼저 눈으로 훑고 나서야 체중을 옮겼다.
"제 탐지 범위 안에는 특이 반응 없습니다. 60미터 반경. 짐승 몇 마리, 그 외엔 깨끗해요."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냐."
윤성민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깨끗하다는 말이 이렇게 불안하게 들릴 수 있다니.
걸으면서 코끝으로 계속 그 냄새를 쫓았다. 처음보다 진해졌다. 썩은 것과 차가운 것이 섞인 그 이상한 냄새는 특정 방향에서 더 강하게 흘러왔다. 북서쪽. 숲 깊은 안쪽. 냄새라는 게 이렇게 방향성을 가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뚜렷했다. 마치 누가 그쪽으로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태오 형."
내가 불렀다.
"뭔데."
"저쪽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요."
강태오가 나를 돌아봤다.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냄새?"
"그, 약초 캐면서 감이 좀 좋아져서요."
대충 둘러댔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저 진짜 이유를 숨긴 거였다. 속으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걸 언제까지 감춰야 하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형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약초맨이 이제 냄새로 몬스터도 잡겠네."
"허튼소리 그만하고."
강태오가 오형준을 제지하며 나를 다시 봤다.
"확실해?"
"확실해요."
강태오는 잠시 고민하다 방향을 틀었다. 북서쪽으로. 파티원들이 하나둘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이 파티에서 내 말이 이 정도 무게를 가진다는 게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들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처음엔 그냥 노목이라 그런가 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나뭇결이 마치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나선형으로 휘어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짚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자연스러운 성장이 아니었다.
"이거 좀 이상한데."
최민재가 나무를 만지며 말했다.
"만지지 마."
조현수가 급하게 제지했다.
"뭔데 그렇게 급해."
"모르니까요. 모르는 건 건드리면 안 됩니다."
최민재가 마지못해 손을 뗐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뭇결의 나선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까. 확인할 새도 없었다.
그 순간, 발밑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작은 소리였는데도 모두가 얼어붙었다. 배진우가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최민재가 검을 반쯤 뽑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난 방향을 봤다. 마른 나뭇잎이었다. 그냥 나뭇잎. 그런데도 아무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 숲 자체가 사람을 긴장시키는 힘을 가진 것 같았다.
"저기."
윤성민이 낮게 말하며 앞을 가리켰다.
나무꾼들이 쓰다 버린 도끼 하나가 나무 밑동에 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신발 한 짝이 나뒹굴었다. 발은 없었다.
속이 뒤틀렸다. 이게 실종자의 흔적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신발은 낡았지만 최근에 벗겨진 것처럼 단면이 깨끗했다. 찢긴 게 아니라 벗겨진 것 같았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신발만 남았네요."
조현수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주변에 다른 흔적은?"
강태오가 물었다.
조현수가 눈을 감고 정찰 스킬을 확장했다. 이마에 살짝 땀이 배어 나오는 게 보였다.
"…없습니다. 60미터 반경에 아무것도 안 걸려요. 이상해요. 뭔가 있어야 정상인데."
배진우가 신발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강태오가 손을 뻗어 막았다.
"건드리지 마."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아요?"
"확인은 내가 한다. 넌 뒤로."
강태오가 조심스럽게 신발 근처로 다가가 살펴봤다. 나는 그 사이 계속 냄새를 쫓았다. 그 이상한 냄새는 신발 근처에서 가장 강하게 났다. 그리고 그 냄새 아래로,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뭔가 살아있는 것의 숨소리 같은. 처음엔 내 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집중하니 확실했다. 숨소리였다. 느리고 불규칙한.
"태오 형, 여기 뭔가 있어요."
"어디."
"저 나무 뒤쪽. 확실치 않은데 뭔가 숨소리 같은 게 들려요."
그 말에 오형준이 코웃음을 쳤다.
"숨소리? 야, 정찰수도 못 잡는 걸 네가 잡는다고?"
"형, 일단 확인이라도 해봐요."
"허, 이 새끼 근거 없는 소리를 자꾸."
"오형준."
강태오가 짧게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오형준이 입을 닫았다. 그 위계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강태오의 말 한마디가 이 파티 안에서 갖는 무게.
강태오가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모두가 멈췄다. 조현수가 다시 정찰 스킬을 시전했다. 이번엔 더 오래, 더 깊이 집중하는 게 보였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무것도 안 걸립니다. 정말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냄새가 갑자기 사라졌다.
완전히.
방금까지 진하게 느껴지던 그 냄새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뭐야."
윤성민이 나를 봤다.
"냄새가 사라졌어요. 갑자기."
내 손끝이 저절로 단검 손잡이로 향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냄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강태오의 표정이 굳었다.
"그거 좋은 신호가 아니지."
순간 숲 전체가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도 멈추고, 잎사귀 흔들림도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뭔가가 이 공간을 장악한 느낌이었다. 귀가 먹먹했다. 방금까지 들리던 미세한 자연의 소리들, 벌레 우는 소리,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 그 모든 배경음이 한꺼번에 지워졌다.
조현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태오 형. 이거… 제 탐지가 갑자기 아무것도 안 잡혀요. 방금 전까지 잡히던 짐승들 반응도 전부 사라졌어요."
그 말에 파티 전체가 얼어붙었다.
정찰수의 감각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 숲에 우리가 알던 규칙이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오형준의 얼굴에서도 방금까지의 여유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배진우는 화살을 쥔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다.
"전부 등 맞대고 원형으로 서."
강태오가 낮고 빠르게 명령했다.
모두가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나도 단검을 뽑았다. 손이 떨렸다. 등 뒤로 최민재의 어깨가 닿았다. 그 온기마저 이상하게 서늘했다.
숲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던 모든 것이 지워지고, 오직 우리 여섯 명의 숨소리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둠 속을 노려봤다. 저기 어딘가에 그 숨소리의 주인이 있다.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무들 사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