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로부터 두 해가 흘렀다. 시간이라는 게 참 얄궂어서, 아기의 몸이 답답할 때는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졌는데, 정신이 서서히 이 몸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두 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나는 이제 걷고, 뛰고, 서투르게나마 말도 할 줄 아는 세 살배기 강도훈이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건 결국 몸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고, 이도윤으로서의 기억과 지식은 그대로 남았지만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은 세 살짜리의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요컨대, 머리는 대학생인데 입은 아직 어른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더럽게 불편했다. 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질이 서툴러서 국물을 흘렸고, 화가 나거나 답답할 때 어른처럼 조리 있게 항의하고 싶어도 입에서 나오는 건 "시러, 시러!" 같은 억지스러운 발음뿐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계획과 분석을 굴리고 있는데, 겉으로 표현되는 건 세 살짜리의 짜증 섞인 투정이라는 이 괴리감이, 생각해보면 이 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 두 해 동안 나는 이 가족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아버지 강태오는 이제 막 스물한 살, 젊은 나이에 가주 자리를 물려받은 기사였는데, 성격이 어찌나 충동적인지 마물 사냥과 마석 수집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렸다. 한번은 저택 뒷마당에서 갓 잡아온 마물의 마석을 손질하다가 실수로 손을 베였는데, 어머니한테 혼날까 봐 소매로 슬쩍 가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이 사람, 나중에 게임 설정상 그 강도훈의 아버지로서 짧게 언급되던 인물이 이런 캐릭터였나' 하고 새삼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 강미래도 똑같이 스물한 살이었지만, 남편보다는 훨씬 신중하고 실질적이어서, 집안의 실제 운영은 전부 그녀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하녀들의 급여 계산부터 저택 보수 일정까지 그녀가 직접 장부를 들여다보며 처리했고, 아버지가 무모하게 위험한 사냥을 나가려 할 때마다 그녀가 나서서 말리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는데, 다만 그 사이좋음의 절반은 아버지가 어머니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가끔 아버지가 뭔가 고집을 부리다가도 어머니가 눈썹 한 번 치켜올리면 그대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세 살짜리 얼굴로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나는 문설주에 걸려 있던 그 낡은 검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신경 쓰였다. [특수 스킬 '마검 소환'의 봉인 조건이 감지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본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그 검을 훔쳐보며 뭔가 반응이 있는지 살폈지만, 정작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은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그 검 앞에 서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는데, 세 살짜리 팔로는 문설주에 닿지도 않았고, 설령 닿았다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조건이 뭐길래 이렇게 아무 낌새도 없냐' 하고 몇 번이나 곱씹어봤지만, 정작 답은 그 문구가 알려준 그대로였다. 봉인 조건이 '감지'됐을 뿐, 발동 조건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알 도리가 없어서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난 건, 정원 한구석에서 놀던 어느 오후였다. 볕이 좋았고, 하녀 하나가 빨래를 널고 있었고, 어머니는 저택 안에서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던 시간이었다. 나는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혼자 검술 흉내를 내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게임 속에서 봤던 기사들의 검술 폼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거였다. 세 살짜리 몸으로는 균형도 제대로 안 잡히는데, 굳이 그걸 하고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심심해서였다. 그러던 중 그 막대기가 발밑에 있던 돌부리에 걸리면서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퍽!
정확히는 정원 한켠에 쌓여 있던 장작더미를 향해 처박히는 자세였는데, 그 장작더미 위에는 하필이면 아버지가 손질을 미뤄둔 낡은 도끼가 날을 세운 채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손질이 끝난 도구는 곧바로 창고에 넣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마물 사냥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지 그걸 정원에 그대로 두고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 순간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세 살배기의 반사신경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거리였고, 도끼날은 내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도끼날이 눈에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늘어졌고, 나는 그 사이에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했다.
'아, 이건 죽는다' 하는 생각이 진짜로 들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게임 최종 보스가 이런 시시한 사고로 죽으면 대체 무슨 개그냐는 자조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마왕도 아니고, 대군세도 아니고, 도끼 하나에 세 살짜리 몸으로 허무하게 갈리는 최종 보스라니.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진짜 죽는구나 싶은 그 순간에.
그리고 그 순간,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정확히는 내 몸이 아니라, 내 안의 뭔가가 반응했다.
[생명의 위협을 감지했습니다.]
[특수 스킬 '마검 소환'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스킬을 발동합니다.]
번쩍!
손끝에서 빛이 터져 나왔고, 나는 얼떨결에 뭔가를 움켜쥐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검이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내 몸통보다 더 긴 검 한 자루가 허공에서 그대로 튀어나와 내 손에 잡혔고, 그 검이 도끼날을 정확히 튕겨냈다.
콰앙!
도끼는 그대로 옆으로 나가떨어졌고, 나는 장작더미 위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멍하니 손에 쥔 검을 바라봤다. 손이 떨렸는데, 그게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마력을 다뤄본 첫 감각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건 게임 후반부, 강도훈이 최종 보스로 등장할 때 들고 나오던 바로 그 마검이었다. 이름하여 '심연의 검'. 설정상으로는 마력 그 자체를 압축해 형상화한 무기라, 실체가 없는 대신 소유자의 마력을 직접 갈아 넣어 실체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게임 내에서는 이 검을 뽑아 드는 순간부터 필드 전체의 배경음이 바뀌던, 그런 상징적인 무기였다. 그걸 세 살짜리 손으로 쥐고 있다는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
'...이게, 되네...?'
나는 그 순간 정말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게임 최종 보스전에서나 보던 스킬이, 세 살짜리 몸에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는 게 웃긴 건지 무서운 건지 감이 안 잡혔다. 게임에서는 이 스킬 한 번 쓰는 데 마력 게이지가 절반 이상 깎였고,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건 만렙 최종 보스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몸은 만렙 최종 보스도 아니고, 걷다가 자빠지는 세 살배기였다. '그럼 이 대가는 대체 얼마나 크려나' 하는 불안한 예감이 스치는 것과 동시에, 다음 문구가 떠올랐다.
[스킬 사용 대가로 마력이 소진되었습니다.]
[3세 신체 기준 과다 사용 - 3일간 극심한 무기력이 예상됩니다.]
그 문구를 읽자마자 나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모래주머니가 사라진 게 아니라, 오히려 사지에 모래주머니가 하나씩 새로 달린 듯한 무게감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것조차 새삼 힘이 들어갔고, 눈꺼풀은 자꾸 아래로 처졌다. 3일간 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니, 세 살짜리한테는 거의 중병 걸린 거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검은, 도끼를 튕겨낸 직후 스르르 빛의 입자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 입자가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실체화 유지가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는데, 지금은 그런 분석을 할 정신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도훈아!"
소리를 듣고 뛰어온 건 어머니였다. 그녀는 쓰러진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는데, 정작 그녀의 시선이 향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 옆에 나가떨어진 도끼와, 그리고 방금까지 빛의 입자가 흩어지던 그 자리였다. 그녀는 나를 안아 올리면서도 눈은 계속 그 자리를 훑고 있었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방금, 그게 뭐였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놀란 티를 내며 호들갑을 떨었을 사람인데, 지금은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해서 더 무서웠다. 나는 세 살짜리의 어눌한 발음으로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건 "모, 몰라..." 라는 짧은 한마디뿐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나도 그게 왜 발동했는지, 어떻게 발동했는지 절반쯤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게임 설정을 안다고 해서 그게 왜 내 몸에서, 이 타이밍에, 이런 식으로 튀어나왔는지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서 도끼를 치우는 하녀에게 아무 일 없었던 척 말을 돌렸다. "그냥 놀다가 넘어진 거야,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하녀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도끼를 챙겨 갔지만, 나는 그녀의 팔 너머로, 저 멀리서 이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금까지 빛이 흩어졌던 그 자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는 놀람도, 걱정도 아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다른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그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무언가가 결국 눈앞에 나타난 걸 확인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면서, 무기력함에 잠식되어가는 정신 한구석으로도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저 표정, 단순히 아들이 마법 같은 걸 부렸다는 걸 목격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