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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한을 앞당긴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재료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바구니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지운의 표정이 어두웠다. "작은 도련님, 그러니까 아가씨의 작은아버지께서 채권자들에게 손을 쓰셨다는 소문입니다." "작은아버지가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위가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저택을 빨리 넘겨받고 싶으신 거겠지요."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 주였던 기한이 며칠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채권자들이 정말 그 말을 들을까요?" "돈이 얽힌 일에서는, 누구든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한지운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 낮음 속에 확신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명확했다. 부엌으로 향했다. 오전 아홉 시. 재료를 하나씩 꺼내 늘어놓았다. 아몬드 가루, 설탕, 계란 흰자, 버터, 색소. 식탁 위에 재료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생에서도 이랬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 자료를 늘어놓고 하나씩 검토하던 순간들. 지금 이 재료들도 그때의 자료들과 다르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 속에서 마카롱을 직접 구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수백 번 사업 미팅에서 마카롱을 먹었고, 그 레시피를 다루는 유명 파티시에와 협업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카롱은 과학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만드는 겁니다." 비율, 온도, 시간. 숫자들이 머릿속에 선명했다. 첫 시도. 계란 흰자에 힘을 모았다. 손끝이 뜨거워졌다. 머랭이 부풀었다. 너무 빨리 부풀었다. 거품이 순식간에 꺼졌다. 반죽이 흐물흐물해졌다. "실패네요." 나는 중얼거렸다. 한지운이 옆에서 지켜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실패한 반죽을 그릇에서 걷어냈다. 아까운 재료들이 흘러내리듯 사라졌다. 설탕 한 줌, 계란 두 알. 숫자로 따지면 별것 아니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전부였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엔 힘을 천천히 모았다. 머랭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반죽을 오븐 마법으로 구웠다. 결과물은 갈라졌다. 표면이 매끈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균열이 갔다. "온도가 안 맞아요." 손끝의 감각을 다시 확인했다. 생산 마법은 익힐수록 정교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사치였다. "아가씨, 마법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한지운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세 번째 시도. 네 번째 시도. 숫자만 늘어갔다. 계란은 여섯 알로 줄었고, 설탕도 절반 남았다. 오후 세 시. 또 실패. 반죽이 오븐 안에서 주저앉았다. 오후 다섯 시. 또 실패. 이번엔 색소가 균일하게 섞이지 않아 반죽에 얼룩이 졌다. 오후 일곱 시. 또, 실패. 발이 생기지 않았다. 평평한 채로 눌어붙은 반죽만 남았다. 세 번 연달아 같은 결과가 나오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쳐서가 아니었다. 뭔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떨림을 느낀 적이 있었다. 큰 계약이 눈앞에서 무너질 때. 숫자가 붉게 물들며 떨어질 때. 그때의 떨림과 지금의 떨림이 겹쳐졌다. "아가씨, 잠깐 쉬시죠." "아니요, 재료가 얼마 안 남았어요." "몸이 안 좋아 보입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시야가 흐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마법을 쓸수록 몸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몰랐다. 다만 물을 마셔도 목이 계속 마른다는 것. 손끝이 저리다는 것. 그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한지운이 물잔을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목은 여전히 말라 있었다. 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이 마법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몸에 부담을 주는 겁니까?" 한지운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이라."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몰랐다. 다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만 있었다. 밤 아홉 시. 남은 재료로 마지막 시도를 준비했다. 계란 두 알, 설탕 한 줌, 아몬드 가루 조금. 이게 마지막이었다. 식탁 위에 남은 재료들을 보자 숨이 막혔다. 더는 없었다. 이게 전부였고, 이것마저 실패하면 끝이었다. 실패하면 더 이상 시도할 재료가 없었다. 돈도 없었다. 저택도, 시간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한지운이 조용히 다가왔다. "아가씨,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안 돼요. 지금 해야 해요." "내일 다시 하셔도 됩니다." "내일은 재료가 없잖아요." 한지운은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말릴 수 없다는 걸 알아챈 눈빛이었다. 나는 계란을 깨뜨렸다.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손끝에 힘을 모았다. 이번엔 조금 더 신중했다. 낮의 시행착오가 몸에 새겨진 것처럼, 손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머랭이 부드럽게 부풀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았다. 정확히 그 사이의 속도였다. 색소를 섞었다. 연한 분홍색이 퍼졌다. 아몬드 가루를 넣고 폴더링, 반죽을 접어가며 섞는 과정을 했다. 주걱을 든 손이 떨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몸은 지쳐 있는데, 손끝만큼은 침착했다. 적당한 점도. 리본처럼 흘러내리는 정도가 되어야 했다. 손끝의 감각을 온전히 반죽에 실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반죽을 눈으로 쫓았다. 너무 묵직하면 안 됐다. 너무 흐르면 그것도 안 됐다. 그 미묘한 경계를 손끝으로 찾아냈다. 짜주머니에 반죽을 담았다. 동그란 모양으로 하나씩 짜냈다. 일곱 개, 여덟 개, 아홉 개. 트레이 위에 작은 원들이 늘어섰다. 하나하나 크기가 비슷했다. 전생의 기억 속 파티시에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크기가 균일해야 굽는 시간도 균일합니다." 그 말대로 손을 움직였다. "이제 굽는 거예요." 오븐 마법을 켰다. 온도를 정확히 맞췄다. 전생의 기억 속 숫자 그대로. 섭씨로 환산해도, 이 세계 단위로 환산해도 같은 값이 나왔다. 숫자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십오 분. 타이머를 맞췄다. 그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한지운도 옆에서 오븐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십 분이 지났다. 오븐 안에서 반죽이 부풀기 시작했다. 마카롱 특유의 발이 생기고 있었다. 숨이 절로 멈췄다. 오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지금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십삼 분. 표면이 매끈했다. 갈라지지 않았다. 숨을 죽였다. 손끝이 저릿했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십사 분. 색이 서서히 진해지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은, 딱 적당한 정도였다. 십오 분. 오븐 문을 열었다.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확 끼쳤다. 그 열기 속에서, 트레이가 서서히 드러났다. 작고 동그란 마카롱 아홉 개가 트레이 위에 놓여 있었다. 연한 분홍색, 매끈한 표면, 완벽한 발. "됐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안도감인지 다른 무엇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한지운이 다가와 트레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이게… 아가씨가 만든 겁니까." "네." 그의 시선이 트레이 위의 마카롱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손이 트레이로 향했다. 마카롱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그것이 미세하게 눌리는 것이 보였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그 질감이 손끝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드셔보세요." 한지운이 입에 넣었다. 그의 표정이 멈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씹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어때요?" 나는 물었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한지운은 대답 대신 다시 마카롱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남은 조각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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