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레벨1 미믹, 첫 사냥감

3화

그림자가 문틀에 걸린 순간, 그것의 안에서 두 개의 힘이 충돌했다. 하나는 이성이었다. '멈춰라. 위장을 완성하라. 혀를 거둬들이고 상자처럼 굳어라.' 명령은 명확했다. 오래전부터 반복해서 되새긴 규칙이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다른 하나는 본능이었다. '먹어라. 지금 눈앞에 있는 살점을 삼켜라. 채워라.' 명령은 그보다 더 크게 울렸다. 몸통 안쪽에서부터 뜨겁게 치솟는 갈증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오래도록 누적되어 있었고, 그 허기는 이성 따위를 손쉽게 짓눌러 버릴 만큼 강렬했다. '이대로 먹으면, 저 소리의 주인들에게 들킨다.' 그것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인지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팔다리도 없고, 눈도 없고, 오직 감각으로만 세상을 더듬는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 지금 발각되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것. 발소리는 셋. 냄새는 피와 쇠와 슬픔이 뒤섞인 냄새. 그 모든 정보가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그것은 그 정보들을 헤아릴 새도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스승 격의 존재도, 가르침을 준 누군가도 없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아무도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무엇이 위험이고 무엇이 안전인지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오로지 감각으로 겪어내며 하나씩 깨우쳐야 했다. 판단의 근거는 오직 하나,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굶어 죽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삼키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 안쪽에서 뒤틀리듯 요동쳤지만, 그것은 그 요동을 짓눌렀다. 지금 삼키는 순간이,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시간을 무너뜨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혀를 거둬들였다. 스륵- 혀는 아쉬움을 매단 채 입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붉은 살점의 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었다. 그 잔향마저 삼키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그것은 그 욕구조차 억눌렀다. 핏자국은 대부분 지워졌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다. 겉면에 배어든 얼룩 몇 점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그것을 지울 방법은 없었다. 오직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몸통이 스스로 굳는 감각이 느껴졌다. 처음엔 어색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낯선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낯섦을 억누르고 익숙한 것처럼 다뤘다. 뚜껑이 살짝 벌어져 있던 틈도 서서히 닫혔다. 표면의 흠집과 색깔이 다시 낡은 나무 상자의 결로 정돈되었다. 나뭇결 하나하나, 삭은 이음새 하나하나까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흉내 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되는 대로 버텨야 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되뇌는 순간, 문턱을 넘어선 발이 석실 바닥에 닿았다. +++ 첫 번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큰 체격의 남자였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고, 걸음마다 절제된 무게가 느껴졌다. 발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랜 수련을 거친 몸이라는 것을 그 무게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군."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심함 속에는 이 방을 몇 번이고 드나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익숙함이 배어 있었다. "당연하지, 재훈 오라버니가 여기서..." 뒤이어 들어온 목소리는 여자였다. 말끝이 흔들렸다. 슬픔을 억지로 참는 듯한 어조였다.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끊어버리는 습관에서,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죽은 자의 이름이 오르는군.' 그것은 그 대화를 통해 이 방이 왜 이렇게 피로 물들어 있는지, 대강의 그림을 그렸다. 재훈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흔적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과 바닥에 스민 냄새, 상자 표면에 남은 얼룩까지, 모든 것이 그 죽음의 자취였다. "울지 마라. 여기 오면 매번 그러는데, 그게 도움이 되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위로처럼 들리지 않는 말투였다. 오히려 타박에 가까운 어조였지만, 그 속에 숨은 감정은 위로였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서투른 사람의 화법이었다. "오라버니는 안 그런 것 같아 보이겠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이번엔 말을 끝맺었다. 대신 숨을 크게 들이켜는 소리가 뒤따랐다. 눈물을 억지로 삼키는 소리였다. 두 사람의 발소리 뒤로 세 번째 인기척이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그러나 발끝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로 보아, 몸놀림이 가볍고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걸음 하나에 담긴 균형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자의 걸음이었다. '셋이다. 최소한 셋.' 그것은 각각의 진동과 냄새를 조합해 위치를 가늠했다. 검을 찬 남자는 방 중앙 근처, 슬픔을 참는 여자는 그보다 안쪽, 세 번째 인기척은 문 쪽에서 주변을 살피는 듯 서성이고 있었다. 세 번째 사람의 걸음은 유독 신중했다. 마치 방 안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살피며 나아가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뭔가를 찾고 있다.' 그것은 그 걸음의 패턴에서 그 사실을 읽어냈다. 단순히 방 안에 들어와 슬픔을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었다. 세 번째 사람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 "저쪽에 상자가 있는데요." 세 번째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젊고 가벼운, 그러나 신중함이 섞인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 말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찾아 헤맨 자만이 낼 수 있는, 마침내 발견했다는 안도와 경계가 뒤섞인 어조였다. 그것의 몸통 전체가 그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발견됐다.' 버티기로 한 선택이, 이제 시험대에 오를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다짐이 무색하게,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곤두섰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다리도, 팔도 없는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굳어 있는 것뿐이었다. 발소리가 그것을 향해 다가왔다. 세 번째 사람의 걸음이었다. 가볍고 날카로운 걸음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자신의 표면에 남은 흠집과 핏자국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발각을 앞둔 감각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상자? 어디 있길래." 검을 찬 남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무심하던 어조에 옅은 흥미가 섞였다. "저기, 벽 쪽에요. 낡은 나무 상자인데... 왜 이런 게 여기 있나 했어요." 세 번째 목소리가 그렇게 대답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것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걸음의 속도가 오히려 느려졌다. 무엇이든 함부로 다루지 않는 손길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그 걸음만으로도 짐작되었다. '조심스럽다. 저 여자는, 이 방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판단했다. 세 번째 사람의 목적이 이 상자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방 전체에 흩어진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지지 마라. 뭐가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목소리가 경고처럼 던져졌다. 그러나 그 경고는 오히려 그것에게 실낱같은 안도를 안겨주었다. 만약 저 손이 상자를 열어 확인한다면, 그때는 진짜로 끝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그 한마디가, 그 확인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미뤄줄 수도 있었다. 발소리가 멈췄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그런 거리였다. '여기서 끝인가.' 그것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지워냈다. 아직 손이 닿지 않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른 일이었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것은 다시 그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의 손끝이, 상자의 표면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