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를 고치면, 전쟁이 진다

2화

"이서윤 치료사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돌아보니 윤미래였다. 레인저 계급의 어깨끈이 그녀의 왼쪽 팔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짧게 자른 갈색 머리카락 아래로 눈빛이 날카로웠다. 나는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걸음을 멈췄다. "네, 무슨 일이세요?" 그녀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붉은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신호처럼. "저거 보이세요?" "아까부터 신경 쓰였어요. 저게 뭐죠?" "이상 신호가 뭔지 아세요?" 윤미래는 잠시 나를 보다가 낮게 웃었다. 웃음에 온기가 없었다.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알고 싶어요." 그녀는 창밖의 어둠을 눈으로 가리켰다. "혈마군 척후병일 겁니다. 정찰조가 며칠에 한 번씩 저렇게 신호를 흘려요. 우리가 얼마나 대응하는지 재는 거죠." 나는 그 붉은 점을 다시 바라보았다. 깜빡임이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적월... 때문인가요?" 윤미래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공부는 좀 하셨네요." "자료로만 읽었어요. 적월이 뜨면 혈마군의 전투력이 급증한다고..." "급증이 아니라 폭증이에요." 그녀가 말을 정정했다. "이번 적월까지 여드레... 아니, 이레 남았어요. 그날이 오면 저 황무지 전체가 붉게 물들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두려움도 아니고, 그저 익숙함에서 나오는 피로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피로 밑에 오래된 상흔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저 붉은 점을 보며 지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이 얘기를..." "강도현 담당이시잖아요." 그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가 없으면 이 기지는 벌써 세 번은 무너졌을 거예요. 그러니까 치료사님 임무가 뭔지 잘 생각하셔야 해요." "...무슨 뜻이죠?" 윤미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재차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일 정찰조에 합류하실 거예요. 단장님 지시입니다." "제가요? 저는 전투 요원이 아닌데..." "강도현도 갈 거예요. 현장 적응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설마... 그를 관찰하라는 뜻인가.) 윤미래는 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한 번 펴고는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다시 창밖을 보았다. 붉은 점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오래, 더 짙게 느껴졌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기지 정문에 서 있었다. 하늘은 아직 짙은 남색이었고, 별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정찰조는 총 여섯 명이었다. 윤미래가 선두에 섰고, 강도현은 대열 맨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짙은 느낌이었다. 마치 밤새 무언가와 싸운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다.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어깨는 평소보다 조금 더 굽어 있었다. "잠은 잤어요?" 내가 다가가 물었다. "...상관없는 질문이라고 했잖습니까." 그는 시선을 돌린 채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약간의 지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대답인데, 왜 오늘은 조금 다르게 들릴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장갑 밖으로 드러난 손등의 힘줄이 팽팽하게 서 있었다. 쥐고 있지도 않은 주먹을 쥐려는 것처럼. 정찰조는 황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른 풀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바람은 차가웠고, 먼 산등성이 위로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지평선을 물들이는 모습이, 어제 창밖에서 보았던 신호의 붉은 빛과 겹쳐 보였다. (같은 붉은색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걸음을 옮기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찰조원들의 발소리와 마른 풀이 스치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가끔 멀리서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그칠 때마다 정적이 더 깊어졌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강도현의 숨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그의 숨은 일정했지만, 어딘가 억지로 눌러놓은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 때였다. 윤미래가 손을 들어 정찰조를 멈춰 세웠다. "조용히."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모두가 자세를 낮췄다.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저 멀리 언덕 위, 검붉은 로브를 걸친 형체 셋이 서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움직임이 이상했다. 관절이 꺾이는 방향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앉은 것처럼, 팔이 한 번 더 접혔다. "혈마군 척후병입니다." 윤미래가 낮게 속삭였다. "저희를 발견했을까요?" "아직은... 아니요." 그녀가 활을 조용히 등에서 내렸다. 시위에 화살을 매기는 손이 흔들림 없었다. 그 순간, 강도현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나는 그의 손끝을 보았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플래시백인가.) 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동공이 풀린 듯 흔들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추운 새벽 공기 속에서도 땀이라니, 이상했다. "강도현 씨." 나는 낮게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언덕 위 척후병들에게 고정된 채,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살짝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끝이 그의 소매에 닿기도 전에, 그가 몸을 살짝 틀었다. 마치 누군가 다가오는 걸 본능적으로 피하듯이. 그때, 척후병 하나가 갑자기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윤미래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발견됐어요." 척후병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달리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낮은 자세로, 관절을 꺾어가며, 마치 짐승이 네 발로 뛰는 것 같은 속도였다. "본대에 보고하러 가는 겁니다. 서둘러 후퇴해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왔다. 기지 방향이 아니었다. 동쪽, 보급로 방향이었다. "저건..." 윤미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보급대예요. 오늘 아침 신참 병사들이 물자를 옮기러 나간다고 했는데..."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동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나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연기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일으키는 흙먼지였다. 그 순간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짧고, 날카롭고, 끝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정찰조원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윤미래가 활을 고쳐 쥐며 몸을 일으켰다. "움직입니다. 지금 당장." 나는 강도현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붉은 눈이 동쪽을 향한 채, 손끝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마치 그 비명 소리가 그를 어딘가로,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이건... 단순한 긴장이 아니다.) "강도현 씨, 정신 차려요!" 내가 그의 어깨를 붙잡는 순간,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입술 사이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짓눌린 짐승의 소리 같은. 윤미래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설마." 그녀가 활시위를 살짝 당기며 강도현을 향해 반쯤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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