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끝이 안 보인다.'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그 말이 딱 맞다는 걸 알았다.
통로 가득, 닭도깨비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깃털도 아니고 털도 아닌 것들이 곤두선 채로,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마치 수백 개의 숟가락으로 냄비 바닥을 긁는 것 같았다.
끼에엑, 끼에엑—
삼 년 동안 이 미궁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규모는 처음 봤다.
'저게 다 몇 마린데.'
세어보려던 걸 바로 관뒀다. 세다가 죽을 것 같았으니까.
[취독관: 잔여 독침 1발]
[폭탄액: 잔여 2병]
숫자를 확인한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걸로는 절대 못 버텨.'
독침 한 발로 뭘 하나. 저 앞에 서 있는 놈 눈이나 하나 찌르면 다행이지.
폭탄액 두 병도 마찬가지였다. 저 파도 같은 무리 앞에서는 물총 두 자루 든 거나 다름없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죽는구나 싶네.'
그런 생각이 스치는 와중에도 발은 이미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몸이 머리보다 먼저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생존 본능이라는 거겠지.
"야, 저짝!"
애가 갑자기 통로 옆쪽 좁은 틈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은, 내가 보기엔 그냥 벽에 금 간 자국이었다.
"거긴 막힌 길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여기서 삼 년을 살았다. 이 미궁 벽에 있는 갈라진 틈들, 뭐가 진짜 통로고 뭐가 그냥 벽인지 정도는 눈감고도 안다. 저긴 백 퍼센트 막힌 곳이었다.
"아니다! 내가 아까 지나왔다, 뒤로 빠지는 길 있다!" 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믿을 수 있나.'
세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애다. 이름도 얼마 전에야 알았고, 어디서 왔는지, 왜 이 미궁 안을 혼자 헤매고 있었는지도 아직 다 못 물어봤다.
근데 그 애가 지금 자기 목숨 걸고 저길 가리키고 있다.
'설마 나 죽이려고 유인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거면 진작에 뒤에서 찔렀지.'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계산이 돌아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은 선택지가 없었다.
뒤에서 밀려오는 닭도깨비 무리의 울음소리가 벌써 등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애를 따라 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몸이 벽 틈에 낄 뻔했다. 어깨가 긁히면서 살갗이 따끔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좁은 통로가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정말로 뒤편의 낡은 배수로로 이어졌다.
'이게... 진짜 있었네?'
삼 년 동안 여길 지도까지 그려가며 다녔는데, 이런 길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 애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의문은 잠시 미뤄둬야 했다.
뒤에서 닭도깨비들 발톱이 벽을 긁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끼이익, 끼이익—
발톱이 돌벽을 스치는 소리가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장난으로 그러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짜증났는데, 지금은 그 소리 하나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비교할 걸 비교해라, 다홍아.'
좁은 배수로 안에서는 놈들도 한 줄로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폭 넓은 통로였다면 벌써 사방에서 둘러싸였을 텐데, 이 좁은 관 같은 길 덕분에 놈들도 한 놈씩밖에 들어올 수 없었다.
'좁은 게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네.'
나는 남은 폭탄액 병을 꺼내 뒤로 던졌다.
콰앙!
폭발음이 배수로 벽을 타고 울리면서 귀가 먹먹해졌다.
앞선 놈 서너 마리가 튕겨나가며 뒤따라오던 놈들까지 막아버렸다.
좁은 통로가 순간 병목이 됐다.
깃털 타는 냄새와 살점 익는 냄새가 확 밀려왔다. 코를 막고 싶었지만 손이 없었다. 손은 이미 애의 손목을 붙잡고 앞으로 달리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내 자리다!" 나는 소리치며 앞으로 달렸다.
애도 숨을 헐떡이며 따라왔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나만큼 지쳤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앞장서서 길을 알려준 애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속으로 이 애가 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니 자리가 있다고?" 애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게 있으니까 삼 년을 살았지." 나는 짧게 답했다.
'지금 소개할 상황은 아니지만.'
부동산 중개하는 기분으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역세권입니다, 배수로 도보 삼 분, 채광은 별로지만 방음은 그럭저럭..." 이런 소리를 하다가 뒤에서 목덜미 뜯길 판이었으니까.
배수로 끝에 다다르자, 낡은 철문이 보였다.
내가 삼 년째 살고 있는 은신처, 옛 관리소 지하 창고였다.
녹슨 문틈으로 밀어붙여 만든 좁은 입구, 그 안에는 손수 만든 등, 재료 보관함, 이불 몇 장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랑스러운 집은 아니다. 전기도 없고, 물도 안 나오고, 겨울엔 이불 세 장을 겹쳐 덮어야 겨우 잔다. 그래도 이건 삼 년 동안 내가 죽지 않고 버틴 증거였다.
'이걸 남한테 보여줄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다시 울음이 터졌다.
끼에에엑!
'따라 붙었나.'
목덜미에 소름이 확 돋았다. 병목으로 막아둔 것도 잠깐이었나 보다.
나는 남은 폭탄액 병을 문틈에 놓고, 마지막 독침을 취독관에 걸었다.
손이 떨렸다. 독침 한 발, 폭탄액 한 병. 이게 진짜 마지막 카드였다.
'이거 쓰면 나 진짜 맨손이야.'
앞장선 닭도깨비 한 마리가 배수로를 통과해 이쪽으로 튀어나왔다.
다른 놈들보다 유난히 크고, 몸에 금속을 훨씬 많이 두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딴 놈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닭도깨비들이 동네 조기축구회 수준이었다면, 이놈은 국가대표급이었다.
[경고: 상위 개체 감지]
'상위 개체까지 나왔다고?'
이건 처음 보는 종류였다.
몸 전체가 은과 청동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이 다른 놈들보다 훨씬 붉게 빛났다.
마치 갑옷 입은 장수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삼 년 동안 이 미궁 어디에서도 저런 놈은 못 봤다.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지금.'
로또도 이렇게는 안 맞는데, 이런 건 왜 하필 이 순간에 걸리는지.
나는 마지막 독침을 발사했다.
피융.
취독관에서 나간 독침이 정확히 목덜미에 꽂혔다.
'맞았다!'
순간 안도했지만, 그 안도는 반 초도 못 갔다.
독침이 목덜미에 박혔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네 발까지 세는 것도 안 통하는 거야?'
지금까지 잡았던 놈들은 독이 들어가면 보통 네 발 안에 쓰러졌다. 그게 이 독의 효과였다. 근데 이놈은 아예 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상위 개체라 이건가.'
독에 안 먹히는 놈이라니. 이건 게임으로 치면 보스몹한테 일반 몹용 아이템 쓴 격이었다. 데미지는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체감이 안 되는 그런 상황.
놈이 부리를 벌리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부리 안쪽이 시커멨다. 저기 물리면 어디가 어떻게 되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다홍!"
애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은 어떻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세 시간 전에 만난 애가, 내가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는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 있었다.
'설마... 아니, 지금 그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놈의 발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바람이 확 밀려왔다. 놈의 몸에서 나는 쇠 냄새와 뭔가 썩은 냄새가 섞여서 코를 찔렀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발톱 끝의 은빛이, 부리 안쪽의 어둠이, 그 붉은 눈동자가 하나하나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이렇게 끝나는 거야?'
삼 년을 버텼는데.
관리소 지하 창고까지 겨우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