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끼에에엑—!
또 한 번 울음이 터졌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벽을 타고 울리는 소리라 방향을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왼쪽인가, 아니 오른쪽인가.'
삼 년째 이 미궁을 들락거리면서도 이 반향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GPS도 없고, 나침반도 안 통하는 동네에서 방향 감각만으로 버텨야 하니 이게 무슨 007 첩보전도 아니고.
"야, 너 진짜 그 불 좀 꺼!" 나는 소녀 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싫다니까! 이거 없으면 나 죽는다!" 애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죽는 거야 나도 마찬가진데, 왜 자꾸 네 사정만 말해.'
애는 횃불을 꽉 껴안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불빛이 애 얼굴을 붉게 물들였는데, 그 와중에도 눈빛만은 또렷했다.
어린 게 겁은 없고 고집만 세다.
딱 저 나이대 특유의,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이 상황에서 안 죽으면 다행이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순간 판단을 내렸다.
취독관을 들어 애의 손목을 향해 겨눴다.
독침 대신, 그냥 손목을 밀쳐서 횃불을 떨어뜨리려는 거였다.
살상용이 아니라 타격용, 이런 걸 응용사격이라고 부르면 너무 거창한가.
피융.
[경고: 조준 오류]
'젠장, 이 각도로는 명중이 안 되잖아.'
독침이 아깝게 벽에 박혔다.
남은 재고는 딱 한 발.
이 취독관이란 물건이 재장전이 얼마나 느린지, 마치 옛날 활 게임에서 화살 하나 아끼려고 사경을 헤매던 그 기분이 딱 이거였다.
'재고 관리 실패, 인벤토리 갱신 없음.'
나는 속으로 셀프 놀림까지 던지며 상황을 정리했다.
애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 바람에 횃불이 크게 흔들렸고, 불빛이 통로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봤다.
통로 저 안쪽, 아니 미궁 심장부라고 부르던 그 넓은 공터에서 수십 개의 눈이 동시에 열리는 걸.
'수십 마리.'
등골이 얼어붙었다.
삼 년 동안 이 미궁에서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개체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몰려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여긴 원래 닭도깨비들이 흩어져 사는 구역이었으니까.
서로 영역 다툼도 하고, 먹이도 나눠 먹는 놈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다는 건.
'뭐야, 단체 회식이라도 하나.'
농담으로 넘기려 해도 손끝이 떨리는 건 못 숨겼다.
[경고: 다수 개체 흥분 상태 감지]
감지석이 아주 요란하게 깜빡였다.
그럼 그렇지, 이번엔 제때 알려주는구나.
평소엔 몬스터 코앞에 가서야 "삐빅, 위험합니다" 하고 뒷북이나 치던 놈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성실한지.
'하필 이럴 때 일 잘하네.'
끼에엑! 끼에엑! 끼에에엑!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닭도깨비들이 일제히 몸을 세우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마치 수백 개의 못이 동시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몸에 걸치고 있는 조잡한 금속 장신구들이 부딪히면서 짤랑짤랑, 시장바닥에서 잡동사니 파는 소리랑 똑같았다.
'평화로운 소리인데 왜 이렇게 무섭냐.'
"저, 저게 다 뭐고!" 애가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네가 만든 거잖아!" 나는 반사적으로 애 손을 확 잡아채고 뒤로 뛰었다.
"내, 내가 뭘!" 애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그 횃불 흔들어서 애들 다 흥분시켰잖아, 지금!"
"몰랐다고! 나도 처음 보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말싸움은 꼭 하고 넘어가야 하나 보다.
나도 참, 이 나이 먹고 애랑 티격태격하는 게 웬 청춘 드라마 재방송도 아니고.
애가 놀라서 횃불을 손에서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횃불이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다행히 통로 구석 물웅덩이에 처박히며 꺼졌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운 연기 한 줌이 피어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네.'
하지만 늦었다.
이미 대군단이 소환된 뒤였다.
불이 꺼졌다고 해서 이미 튀어나온 놈들이 다시 들어갈 리가 없었다.
마치 판도라 상자 열어놓고 뚜껑 다시 닫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폭탄액.'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유리병들을 훑었다.
딱 세 병.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값을 생각하면, 이걸 다 써야 할 상황이 온다는 게 벌써 속이 쓰렸다.
재료 구하는 데만 반나절, 조합하는 데만 또 몇 시간.
이거 하나 만드는 데 드는 정성이면 웬만한 요리 레시피 하나는 완성하겠다.
닭도깨비 무리가 통로를 가득 채우며 밀려들었다.
앞장선 놈들 몸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짤랑짤랑, 요란했다.
붉은 벼슬을 곧게 세운 채 달려오는 모습이, 흡사 예전에 봤던 어느 옛날 만화 속 전투 부대 행렬 같기도 했다.
'저놈들도 대오는 갖췄네.'
지금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뒤로 붙어!" 나는 애한테 소리쳤다.
"어, 어디로!" 애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아무 데나, 살고 싶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이럴 땐 큰소리부터 치는 게 먹혔다.
나는 병 하나를 뽑아 불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던졌다.
이 폭탄액은 불이 아니라 접촉만으로 터진다, 그게 이 물건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불붙일 여유가 있으면 그냥 도망치는 게 낫지, 이런 상황에서 라이터 켜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나.
콰아앙!
앞줄이 통째로 튕겨 날아갔다.
연기가 자욱하게 통로를 채웠다.
매캐한 화학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귀가 잠깐 멍해졌다.
[대상 다수 마비 진입]
'이건 폭탄액이 아니라 마비액인데.'
원래는 신경독을 안개 형태로 만든 물건이었다.
터지는 순간 신경독 성분이 퍼지는 거지, 화력은 부수적이었다.
이름이야 폭탄액이지만 진짜 목적은 마비, 이름 짓는 사람이 좀 낚시성 제목 짓기를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이번엔 그 부수적인 화력만으로도 앞줄 여섯 마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남은 놈들은 몸이 굳은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발버둥을 치면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대단하네." 애가 옆에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감탄은 나중에 하고 뛰어!" 나는 애 등을 밀며 소리쳤다.
"아, 알겠다니까!" 애도 정신을 차리고 다리를 움직였다.
나는 애 팔을 다시 잡아끌며 뒤쪽 통로로 달렸다.
발밑으로 쓰러진 놈들의 몸이 밟혔다.
질척, 하는 소리가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기분 나쁜 감촉이네.'
하지만 뒤에서 더 큰 울음이 터졌다.
앞의 무리보다 훨씬, 훨씬 많은 발소리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발톱 소리가 아니라 이제는 진동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 안쪽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의 무언가가 통로를 가득 메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감지석이 다시 미친 듯이 깜빡였다.
이번엔 경고음까지 겹쳐서 울렸다.
[경고: 대규모 개체군 접근 중]
[경고: 상위 개체 신호 감지]
'상위 개체?'
나는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애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