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동거를 시작한 지 사흘째, 나는 이미 최도진과 세 번 싸웠다.
정확히는 세 번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하루에 한 번씩, 아침저녁으로 나눠서 싸웠으니 실제로는 훨씬 많았다. 다만 다경이 중재를 서두르는 편이라 그중 절반은 싸움으로 완성되기 전에 끊겼다. 나머지 절반만 제대로 된 싸움으로 기록에 남았다.
첫날은 호칭 문제였다. 최도진은 나를 '여신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신' 아니면 '거기'라고 불렀다. 처음엔 못 들은 척했다. 두 번째부터는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세 번째부터는 참을 수가 없었다.
"거기 밥 다 됐다." 최도진이 부엌 쪽에서 소리쳤다.
"거기라니. 내가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름은 모른다. 직함은 알아도 부르기 싫다."
다경이 옆에서 몇 번이나 정정해줬다. "여신님, 저분은 그냥 존칭이라는 개념 자체를 죽었을 때 두고 온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위로가 되는지 안 되는지 헷갈렸다. 결국 소용이 없었다.
"당신이라니. 최소한 격식을 갖춰라."
"격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필요한 거다." 최도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국그릇을 식탁에 탁 내려놓으면서. "나는 죽었다가 끌려온 몸이다. 격식 챙길 정신이 없다."
그 말에 반박할 논리가 딱히 없었다. 죽었다가 끌려온 사람한테 예의범절을 강요하는 게 오히려 내가 이상한 쪽 같았다. 그래도 억울해서 한마디는 붙였다.
"그럼 나도 너한테 존댓말 안 쓴다."
"편할 대로." 최도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무심함이 얄미웠다.
둘째 날은 식사 문제였다. 최도진은 천계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신들이 먹는 음식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식탁 위에는 회복 마법사들이 정성껏 준비한 요리가 가득했다. 무지갯빛 수프, 별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고기,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과일들. 보기엔 그럴싸했지만 최도진은 숟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이 정도 정성이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내가 물었다.
"고려에서는 이런 걸 먹지 않았다. 밥이랑 국이면 충분하다." 최도진이 수프를 손끝으로 살짝 찍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색깔이 왜 이러냐. 상한 거 아니냐."
"상한 게 아니라 마력을 담아서 그런 거야."
"마력이든 뭐든 색이 이상한 건 먹기 싫다."
결국 다경이 하계 도서관에서 고려의 조리법을 뒤져와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다경이 눈 밑에 그늘을 만들어가며 두꺼운 고서를 몇 권씩 들고 왔다. 여신 담당 회복 마법사가 밥과 국을 끓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일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천계 최고의 치유 마법사가 된장을 풀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 광경을 다른 신들이 보면 뭐라고 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도진이 그 밥과 국을 먹으면서는 처음으로 표정이 풀렸다는 거였다. 숟가락을 뜨는 손이 느긋했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뜨는 그 리듬이 이상하게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도 원래는 평범하게 밥 먹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금은 반쪽짜리 목숨을 걸고 마물을 베는 존재가 됐지만.
셋째 날은 거처 문제였다.
내 방과 최도진의 방은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방을 급하게 정리해서 만든 거라, 두 방 사이에는 얇은 문 하나가 달려 있었다. 문제는 그 문에 자물쇠가 없다는 걸 최도진이 눈치챈 뒤부터였다.
"내 방과 네 방 사이에 문을 두는 이유가 뭐냐." 최도진이 물었다. 문을 밀어보고, 당겨보고, 손잡이를 흔들어보면서.
"당연히 사생활을 위해서지."
"그럼 그 문에 자물쇠는 왜 없냐."
"내가 여신이니까 지켜줄 거라 믿어서다."
최도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썹을 한쪽만 올리고, 입꼬리는 반쯤 내려가 있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은근히 인간적이어서, 나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계에서 흔히 보는 표정이었다. 편의점 알바가 이상한 손님을 상대할 때 짓는 그런 표정. 죽었다가 끌려온 사람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렸다. 저 남자는 명예를 지독하게 중시하는, 그리고 나를 신으로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대였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자물쇠 없는 문은 문이 아니라 그냥 장식이다." 최도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만들겠다."
"뭘 만들어."
"빗장. 나무로 만들면 된다. 재료만 있으면 하루면 된다."
그 말대로, 최도진은 다음 날 아침부터 창고를 뒤져 나무판을 찾아냈다. 도구도 없이 손과 작은 칼 하나로 나무를 다듬는 모습이 보통 사람 같지 않았다. 하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게 뻔했다.
결국 우리가 합의한 동거 규칙은 이랬다. 서로 존댓말은 강요하지 않는다. 식사는 각자 취향대로 준비한다. 방 사이 문에는 최도진이 직접 나무 빗장을 만들어 달았다. 완전히 이상한 조합의 동거였지만, 어쨌든 규칙은 세워졌다.
문제는 그 규칙이 지켜지는 동안에도, 재앙의 그림자는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셋째 관문 인근에서 균열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경이 지도를 펼치며 보고했다. 지도 위에는 붉은 실선이 균열 부위를 표시하고 있었는데, 그 선이 어제보다 확실히 두꺼워져 있었다. "작은 마물 무리가 관문을 넘으려는 조짐이 있습니다."
"작다는 게 얼마나 작은데." 내가 물었다.
"보통 하급 정도입니다. 다만 숫자가 좀 있습니다."
"좀이라니. 구체적으로."
"관측된 걸로는 오십에서 칠십 사이입니다."
그 정도면 좀이라는 표현은 사기다. 나는 지도를 다시 들여다봤다. 균열 지점 근처에 표시된 붉은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급 마물이라고 해도 그 정도 숫자가 몰려들면 관문 방어벽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였다.
최도진이 그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의 상처는 다경의 회복 마법으로 겉보기엔 다 나은 상태였다. 붕대를 풀어보니 흉터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가서 보자." 최도진이 말했다.
"몸도 다 안 나았잖아."
"겉으로 안 나은 게 아니라 속으로 안 나은 거다. 겉은 문제없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붉은 점들은 지도 위에서 점점 더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셋째 관문까지 우리는 함께 이동했다.
관문 앞은 이미 어지러웠다. 검은 형체를 한 마물들이 균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숫자가 수십을 넘었다. 하나하나는 어린아이 팔뚝만한 크기였는데, 그게 떼로 몰려드니 어마어마했다. 관문을 지키던 하급 신관들이 방어벽을 치며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벽이 얇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방어벽 표면에 균열이 실핏줄처럼 번지고 있었다.
"신관님들,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다경이 소리쳤다.
"오래 못 갑니다! 벌써 세 번이나 재구성했습니다!" 신관 하나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정도면." 최도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소환될 때 같이 끌려온, 날이 무딘 장검이었다. 칼날 표면에 자잘한 흠집이 나 있는, 좋게 봐도 명검은 아닌 검. 그런데 그 검을 뽑아 드는 순간, 뭔가 달라졌다.
최도진의 눈빛이 변했다.
전까지 부엌에서 밥투정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초점이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깨선이 낮아지고, 발끝이 살짝 벌어지면서 무게중심이 안정됐다. 몸 전체가 다른 사람처럼 재배열되는 걸 눈으로 목격했다.
"물러서 있어라." 최도진이 나를 향해 짧게 말했다. 존댓말도 아니었고 명령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거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이 먼저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최도진이 마물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서걱. 서걱.
검이 움직이는 게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마물들이 하나씩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최도진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없었다. 낭비 없는 동작이 이어졌다. 베고, 몸을 낮추고, 다시 베고. 그 사이 발이 땅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속도가 났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죽음 직전에서 끌려온, 반쪽짜리 상태의 인간이 이 정도 힘을 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깨의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보니, 저 움직임이 더 이상하게 보였다. 통증이 전혀 없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다경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저게 재앙에 맞설 잠재력입니다. 소환진이 왜 저 사람을 골랐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게 정상적인 힘이냐고."
"정상적이라는 표현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저 정도 위력을 내는 건 하급 신관 전체가 붙어도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정상이 아닌 힘이라는 뜻이니까.
마물 무리가 절반 넘게 정리됐을 때, 최도진의 움직임이 갑자기 흐트러졌다.
뭔가 이상했다. 검을 쥔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정교하게 움직이던 검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물 한 마리를 베는 각도가 아까보다 어설퍼졌다.
"저 사람 왜 저래." 내가 물었다.
다경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지도를 접던 손이 멈췄다. "신력 반응이 이상합니다. 저 사람 몸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도진이 마지막 마물을 베어 넘긴 뒤 그대로 무릎을 꺾었다.
쿵.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관문 안을 울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어벽이 걷히면서 소음이 잦아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그 순간 내 심장이 멈춘 것 같은 착각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정신없이 뛰어갔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최도진의 어깨를 붙잡았을 때, 그의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회복 마법으로 나았던 어깨의 상처가, 다시 벌어져 있었다. 옷 사이로 검붉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뭐야." 나는 다경을 향해 소리쳤다. "방금까지 멀쩡했잖아."
"저도 모릅니다." 다경의 목소리가 급했다. 이미 무릎을 꿇고 최도진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 사람이 강한 힘을 쓸 때마다 뭔가 몸을 대가로 쓰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조건을 파악해야—"
"파악은 나중에 하고 일단 지금 어떻게 좀 해봐."
"회복 마법은 걸었습니다. 그런데 상처가 마법보다 빠르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외상이 아니라—" 다경이 말을 멈췄다. 뭔가 더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 그걸 다 캐물을 시간이 없었다.
최도진이 낮게 웃었다. 아픈 사람 웃음소리 같지 않게 낮고 태연했다. 숨소리 사이로 새어나오는 웃음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다.
"괜찮다." 최도진이 말했다. 이 사람 입버릇이었다. 죽어가면서도 이 말만 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는 원래 이랬다."
"원래 이랬다는 게 무슨 뜻이야."
최도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얕아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든지, 내가 붙잡고 있던 어깨가 슬며시 무게를 더 실어왔다.
관문 신관들이 뒤늦게 달려와 방어벽 상태를 확인했다. 그중 하나가 나를 향해 뭔가 보고를 하려는 것 같았는데, 지금 그런 걸 들을 정신이 없었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 식어가는 체온, 벌어진 상처. 그 어느 것도 '괜찮다'는 말과 어울리는 게 없었다.
나는 다경을 다시 다급하게 불렀다. "빨리 뭐라도 해봐. 이러다 진짜—"
말을 끝맺지 못했다. 끝맺으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