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천장이 낯설었다. 나무 문양도 아니고 시멘트 자국도 아닌, 새하얀 대리석 위에 금빛 문양이 소용돌이치는 그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면서, 나는 어제 분명히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웠던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스마트폰 배터리가 십일 퍼센트였고, 알람을 여섯 시 반으로 맞춰 놓았는데, 지금 눈에 들어오는 건 붉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낯선 빛과 침대 시트에 새겨진 이상한 자수뿐이었다. 자수의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태양과 검이 교차하는 형태였는데,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무늬였다. '이거 꿈인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고, 팔을 들어 살펴보니 익숙한 내 팔이되 어딘가 단단해진 느낌이 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손등에 핏줄이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서 있었고, 팔뚝의 근육도 이십 킬로그램짜리 아령을 매일 든 사람처럼 단단해 보였다. 나는 손가락을 몇 번 접었다 펴 보았다. 관절 소리도 다르게 들렸다. 창밖에서는 새소리 대신 사람들의 함성 비슷한 것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침을 삼켰다.
'설마 강도가 들었나.' 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발밑의 침대보가 비단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집 이불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극세사였는데, 이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흘러내리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어머니가 이불을 바꿔줄 리는 없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갑옷을 걸친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철제 흉갑에 반사된 촛불이 방 안을 어지럽게 흔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지만, 그들은 나를 해치려는 기색 없이 오히려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용사님, 기침하셨습니까." 맨 앞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존경과 안도가 뒤섞여 있어서 나는 순간 이게 몰래카메라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용사라니. 나는 지난주 수학 시험에서 삼십 점 맞고 어머니한테 등짝을 맞은 이도현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짐짓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순간 창밖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다시 터져 나오는 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용사님께서 드디어 눈을 뜨셨다!" 누군가 창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마을 전체를 뒤덮는 듯 겹겹이 퍼져나가는 걸 느끼며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참았다. '종소리 크기가 무슨 학교 예비종보다 열 배는 큰 것 같은데.' 그런 딴생각을 하는 사이,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를 부축하듯 일으켜 세우고, 붉은 망토를 어깨에 걸쳐 주었다. 망토는 무겁고 뜨끈했고, 어깨에 걸쳐지는 순간 묘하게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져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마치 예전부터 몇 번이나 걸쳐본 것 같은 감각이었는데,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져서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손길을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설명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속으로 그렇게 바랐지만 아무도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저마다 감격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도망칠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다.
"용사님, 걸으실 수 있으십니까." 한 남자가 물었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자 그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창가로 안내했다. '걸을 수 있냐고? 나 방금까지 잠만 잤는데 다리가 왜 안 움직이겠어.'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순순히 발을 옮겼다. 발바닥에 닿는 대리석 바닥이 서늘했고, 그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와 정신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시야에 들어온 광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회색 돌바닥 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붉은 검과 태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든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색색이었지만 하나같이 낡고 해진 데가 있었고, 그럼에도 표정만은 눈부실 정도로 밝았다. "용사님! 용사님이시다!" 누군가 외치자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나는 창틀을 붙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스스로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손은 이미 군중을 향해 흔들리고 있었고, 그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목마를 타고 손을 흔들었고, 다른 쪽에서는 노인들이 눈물을 훔치며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마왕을 무찔렀다는 게 이렇게까지 감동적인 일인가.' 나는 그 감정의 온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손을 흔드는 일에만 집중했다.
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작은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 속에는 분명 내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더 날카로워진 턱선과 눈매를 가진 낯선 소년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눈동자 색깔도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고, 눈썹 사이의 흉터 하나가 새로 생겨 있었다. '성형이라도 한 건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뒷목을 살짝 만져보니 예전에 없던 작은 상처 자국이 만져졌는데, 그 감촉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아프지 않아서 더 소름이 돋았다. 거울을 내려놓았을 때, 방문이 다시 열리고 갑옷을 벗은 중년 남자가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나를 '마왕을 무찌른 용사'라고 소개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줄줄 읊었는데, 그 이름들 속에 마왕이라는 단어가 섞여 나오는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낌과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게임 시나리오라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실례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왕을 무찔렀다는 게, 정확히 언제 있었던 일인가?" 남자는 서류를 뒤적이다가 짧게 답했다. "칠 일 전입니다. 용사님께서는 그 이후로 계속 잠들어 계셨습니다." "칠 일이나?" 나는 되물었다. "네. 마왕성 붕괴와 동시에 의식을 잃으셨고, 그 뒤로 오늘 처음 눈을 뜨셨습니다." 그 건조한 대답이 오히려 상황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칠 일 동안 안 씻었는데 왜 몸이 이렇게 개운하지.' 나는 그런 생뚱맞은 생각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했지만, 남자의 다음 말이 나를 다시 붙잡았다. "용사님, 오늘 저녁 마을 회관에서 감사 연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라니, 나는 지금 급식 시간이 그리운데.'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다시 내려다보니, 광장의 함성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고, 그 열기가 마치 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 뜨겁게 느껴졌다.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 내가 손을 살짝 들며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정확히 어떻게 마왕을 무찔렀지?" 어쩐지 그 부분을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남자는 잠시 서류를 내려다보더니 사무적인 어조로 답했다. "정확한 전투 경위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왕성 최상층에서 폭발이 있었고, 그 직후 마왕의 존재가 소멸했다는 것만 확인되었습니다." "그럼 내가 그 안에서 뭘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남자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렇게 답했고, 나는 그 단호한 무지가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모든 게 착각이거나 오해이기를 바랐지만, 손끝에 남은 거울의 서늘한 감촉만은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남자가 나가고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마왕이니 용사니 하는 것들은 흔적조차 없었고, 마지막으로 확실히 기억나는 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던 순간이었다. 참치마요였는지 전주비빔이었는지 그것조차 가물가물했지만, 손끝에 남은 비닐 포장지의 감촉만은 이상하게도 선명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한 거지.' 그렇게 자문하는 순간, 창밖의 함성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용사님이 드디어… 기억을 되찾으셨을까요?" 그 짧은 문장이 방 안의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고, 나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창가로 다가섰다.
광장 저편,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나를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다른 사람들의 환호와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걸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직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사람만은 미동도 없이 그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후드를 눌러쓴 그림자 아래로 얼핏 보이는 눈빛이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혹은 나를 시험하듯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어서, 나는 창틀을 잡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그 사람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는데, 거리가 멀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만은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짜.' 그렇게 읽힌 두 글자가 머릿속에 박히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식은땀이 순식간에 얼음물로 바뀌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