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희끄무레한 하늘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나는 천장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겠지.)
방 안의 정적이 낮게 깔려 있었다.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 바람을 맞았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봤다.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눈 밑에 옅은 그늘이 있었지만 그것도 늘 있던 것이었다.
칫솔을 문 채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별일 없을 거야.)
교복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골목 어귀에서 늘 마주치던 옆집 개가 낑낑거렸다.
녀석은 늘 그 자리, 담벼락 아래 웅크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발밑으로 아침 이슬에 젖은 보도블록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몇몇 아이들이 서 있었다.
교복 재킷 깃을 세운 아이들, 이어폰을 낀 아이들, 하품을 하는 아이들.
평범한 아침의 풍경이었다.
"강도현!"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임서현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단발머리가 걸음에 맞춰 살짝 흔들렸다.
"또 늦게 나왔지, 너."
"안 늦었어. 딱 맞게 왔어."
"딱 맞게는 무슨. 지난주에도 지각했잖아."
서현이는 팔짱을 끼고 나를 흘겨봤다.
그 표정이 익숙해서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내가 언제 지각을."
"세 번이나 했거든?"
"세 번은 좀 과장 아니야?"
"과장 아니거든. 내가 다 세고 있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가 도착하고 우리는 나란히 올라탔다.
창가 자리에 앉은 서현이 옆에 나도 몸을 붙였다.
창밖으로 익숙한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한빛고등학교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똑같았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아이들의 웅성거림.
그 익숙함이 오늘도 안심이 되었다.
"어제 숙제 다 했어?"
서현이가 물었다.
"어, 겨우."
"겨우는 무슨. 어제 게임하는 거 봤는데."
"게임하면서 숙제도 했지."
"그게 되냐?"
나는 대답 없이 웃었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잠시 멈췄다.
창밖으로 등교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유지호가 먼저 손을 들어 보였다.
"왔어?"
지호는 늘 그렇듯 무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 걸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뭐 듣고 있어?"
"그냥... 음악."
대답이 조금 늦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가방을 내려놓고 교과서를 책상 위에 올렸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창가 자리에는 한소은이 앉아 있었다.
은발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소은이는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목례를 했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는 늘 그렇게 조용했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낯설지는 않았다.
교실 안은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는 필기구를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큰 소리로 웃었다.
평범한 아침의 소음이었다.
조례 시간이 되자 담임인 박준혁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 출석 부르겠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낮고 단정했다.
한 명씩 이름이 불릴 때마다 대답하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네."
"네, 있습니다."
익숙한 리듬이었다.
그때였다.
형광등이 두 번 깜박였다.
파직—
"어, 뭐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다시 불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웅성거림을 멈췄다.
박준혁 선생님도 잠깐 천장을 올려보더니 다시 출석부로 눈을 돌렸다.
"요즘 전기가 자주 나가네."
선생님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잡음이 있었나.)
마치 라디오가 잘못 맞춰졌을 때 나는 소리 같은 것이 아주 짧게 스쳤다.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교실 안은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정적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공기의 결이 미묘하게 어긋난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강도현."
"네, 있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지호가 옆에서 나를 힐끔 쳐다봤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지호는 별말 없이 다시 앞을 봤다.
출석 부르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슬며시 문질렀다.
(별거 아니야. 그냥 잠깐 이상했던 거야.)
조례가 끝나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1교시 이동 준비로 소란스러워졌다.
의자 끄는 소리, 가방 여닫는 소리,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며 무심코 바닥을 봤다.
그 순간, 발밑에서 희미한 문양이 떠올랐다.
둥근 원 안에 복잡한 선들이 얽힌 모양이었다.
푸른빛이 아주 옅게 배어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잉크가 퍼지는 것처럼, 문양의 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듯도 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뭐야, 이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때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바닥은 그저 평범한 회색 타일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몸을 숙여 바닥을 손으로 쓸어봤다.
차갑고 딱딱한 타일의 감촉뿐이었다.
"뭐 해, 안 가?"
서현이가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착각이었나...)
하지만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다.
복도로 나서자 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 발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뒷목이 서늘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1교시는 평범하게 지나갔다.
선생님의 목소리, 칠판에 적히는 분필 소리, 창밖에서 들리는 새소리.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았다.
나는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도 자꾸 발밑을 힐끔거렸다.
바닥은 여전히 평범한 타일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지호가 다가왔다.
"아까 조례 때 왜 그랬어?"
"뭐가?"
"멍하게 서 있었잖아."
"그냥... 잠깐 이상한 걸 본 것 같아서."
지호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상한 거 뭐?"
"모르겠어. 바닥에 뭔가 그림 같은 게 보였는데."
지호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눈 피곤한가 보다."
대답이 조금 빠르게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웃어넘겼다.
"그런가."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 거 아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호는 다시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운동장에 서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유리창을 통해 아득하게 들려왔다.
평온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 뭔가 삐걱거리는 듯한 기운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옅은 이물감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다음 수업 교과서를 꺼냈다.
(그냥 착각이야. 그럴 리 없어.)
그렇게 되뇌었지만 손끝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나는 다시 한번 이상한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