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먼지가 걷히고 나서야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콰아앙.
방금까지 폭음의 잔재가 귓속에서 웅웅 울렸다. 눈앞이 뿌옇다가 서서히 걷혔다. 흙먼지 사이로 반경 십여 미터가 통째로 파헤쳐진 게 보였다. 지면이 마치 거대한 손톱으로 긁어낸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세 명이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시체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핏자국도, 갑옷 조각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지형만 바뀌어 있었다.
숨을 참았다.
목 안쪽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려 했다. 삼켰다.
감정을 밀어내야 했다.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 아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주먹을 쥐어 감췄다. 남들 눈에 보이면 안 된다. 지휘하는 사람이 흔들리면 그 다음은 붕괴다.
"조은채."
"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떨림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저 팔, 다시 휘두르기 전에 전조가 있었어. 봤어?"
조은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가벼운 말투와 다르게 그녀의 눈은 늘 진지했다. 상황이 아무리 급박해도 저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 파티에 합류했을 때부터 그랬다. 웃으면서도 계산은 멈추지 않는 여자였다.
"안개가 팔 쪽으로 몰렸어. 그다음에 휘둘렀지."
"몇 초 걸렸지?"
"셋. 아니, 넷 정도."
넷을 센다. 그 안에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되뇌었다. 하나, 둘, 셋, 넷. 그 안에 몸을 움직여야 산다. 반박자라도 늦으면 방금 사라진 셋의 뒤를 따르게 된다.
전생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어떤 강적이든 반드시 패턴이 있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든,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완전한 무작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몇 번이고 되뇐 말이었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은 규칙 안에서 움직인다. 규칙을 찾아내면 이긴다. 못 찾으면 셋 중 하나가 된다. 방금 사라진 그 셋처럼.
"임도윤, 저 눈 보여?"
"보이긴 하는데."
임도윤이 창을 고쳐 쥐며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창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방금 눈앞에서 동료 셋이 지워지는 걸 본 사람치고 저 정도면 잘 버티고 있는 거다.
"저게 왜."
"마물 떼가 움직일 때마다 저 눈이 먼저 돌아가. 명령을 내리는 게 저 눈인 것 같아."
임도윤의 시선이 안개 덩어리 중심부로 향했다. 그 안에서 붉게 빛나는 눈 하나가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눈꺼풀도 없이, 깜빡임도 없이, 그저 돌아가기만 했다.
"확실해?"
"확실하진 않아. 근데 지금까지 세 번 다 저 눈이 먼저 돌았어."
강서아가 헐떡이며 다가왔다. 갑옷 옆구리가 찢어져 있었다. 방금 폭발의 여파에 휩쓸렸다가 겨우 피한 모양이었다.
"그럼 저 눈만 찌르면 끝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정 불가 판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마물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등급 자체를 매기지 못했다. 시스템이 침묵하는 상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유난히 담담하게 들렸다. 나조차도 놀랐다.
동료가 셋이나 사라졌는데, 나는 벌써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게 정상인가. 검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인했던 게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남들은 여기서 멈추는데, 나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죽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이런 인간이었던 걸까. 답을 낼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마물 떼가 다시 대형을 짜기 시작했다. 개체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서걱, 서걱.
안개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마찰음이라기엔 너무 축축했다. 마치 젖은 천 여러 장이 겹치는 소리 같았다.
관찰했다. 눈은 쉬지 않는 게 아니라, 특정 각도에서만 정확히 대상을 포착하는 듯 보였다.
한 번 시선이 어긋나면 반응이 반 박자 느려졌다.
한 번. 눈이 왼쪽으로 돌았을 때, 오른쪽에 있던 임도윤이 반보 움직였는데도 반응이 늦었다.
두 번.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 확인했다. 역시 늦었다.
세 번째는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저 안개, 밀도가 일정하지 않아."
조은채가 손끝으로 허공을 짚었다.
"저쪽. 눈 아래쪽이 옅어."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개체의 몸 대부분이 안개 그 자체로 뭉쳐 있는데, 눈 바로 아래쪽만 유독 옅게 흩어져 있었다. 마치 그 부분만 밀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기가 본체일 수도 있어."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걸 확신하지 못했다. 반쪽짜리 정보로 전면전에 뛰어드는 건 도박이다.
그런데 도박 말고는 다른 패가 없었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식은땀인지 더위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일 거다.
"근접해서 저길 찌르는 사람이 필요해."
임도윤이 숨을 삼켰다.
"내가 할게."
"안 돼."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왜 안 되는지 나 자신도 바로 설명하지 못했다.
"왜. 나 창 잘 다뤄."
"거리가 제일 긴 무기가 창이니까 네가 맞아. 근데 저기까지 붙으려면 마물 떼를 뚫어야 해. 혼자로는 안 돼."
임도윤의 눈빛이 흔들렸다가 다시 단단해졌다. 저 녀석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을 삼키는 법을 아는 거다. 언제부턴가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조은채가 끼어들었다.
"내가 길을 뚫을게. 서아는 후방에서 도윤이 지원해."
계획이 세워졌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강서아가 창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엄호 범위는?"
"임도윤이 붙는 순간까지. 그 이후엔 각자 판단해."
"각자 판단이라니, 너무 대충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 세밀한 작전 짤 여유 있어?"
강서아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라 반박하지 못한 거다.
"하나만 물을게."
조은채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저게 진짜 약점이 아니면 어떡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대답을 굴려봤다. 그럼 다음 방법을 찾는다, 그때는 후퇴한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또 잃는다.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조은채도 그걸 원해서 물은 게 아니었을 거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이 도박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지.
"그럼 다른 걸 찾아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다였다.
조은채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엔 힘이 빠진 소리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 순간, 안개가 요동쳤다.
철커덕, 하고 뭔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우리 쪽을 정확히 향했다.
마치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는 듯이.
숨이 멎었다.
지금까지 관찰한 패턴이, 눈의 회전 속도가, 전부 어긋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