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날 아침, 마당에 나갔다가 그 집 창문에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오는 걸 봤다.
하얀 연기가 창틀 사이로 흘러나와 흩어졌다. 담배 냄새인지 확신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놀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날 이후 며칠간 나는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마당을 쓸 때도 그 집 쪽으로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빗자루질을 하다가도 담벼락 너머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빗자루를 움직였다.
장을 볼 때도 반대편 골목으로 돌아갔다. 원래 다니던 길은 그 집 앞을 지나야 했다. 나는 일부러 큰길로 나가서 슈퍼 뒷문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십 분은 더 걸리는 길이었다.
이 좁은 동네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게 웃겼지만, 실제로 며칠은 마주치지 않았다.
슈퍼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요즘 왜 이 길로 와?"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냥, 산책 삼아서요." 아주머니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했다.
혼자 사는 삶이란 원래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이 집에서 하루를 정확히 세 부분으로 나눠 살았다.
아침엔 마당을 쓸었다. 낙엽이 없어도 빗자루를 들었다. 그건 습관이었고, 동시에 뭔가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마당을 다 쓸고 나면 화분에 물을 줬다. 할머니가 키우시던 소국 화분이었다. 매년 가을이면 노랗게 피었다.
낮엔 부업으로 하는 온라인 문서 작업을 했다. 남의 회사 서류를 정리하고 엑셀 표를 만드는 일이었다. 특별히 재미있진 않았지만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밤엔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잠들었다. 소리가 있어야 잠이 왔다. 완전한 정적 속에서는 이상하게 눈이 더 또렷해졌다.
말을 섞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체국 직원, 마트 계산원, 반상회 총무 아주머니 정도였다. 그마저도 대화라기보다는 짧은 인사, 몇 마디 안부 정도였다.
"오늘도 혼자 왔네." 마트 계산원이 그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게 편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달랐다.
저녁마다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들었다. 할머니는 옛날 가요를 좋아했다. 이미자, 나훈아, 그런 이름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옆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마루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할머니가 부채질을 하며 흥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들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서연아." 할머니가 부르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응."
"너 나중에 시집 안 가도 돼. 그냥 네가 좋은 대로 살아."
할머니는 부채를 흔들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목소리에 별다른 무게가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냥 흘려들었다.
"할머니는 무슨 그런 말을 해." 나는 그렇게 대꾸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뭔가를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좋은 신랑감 있다며 사진을 들고 올 때마다 할머니는 늘 얼른 돌려보냈다. "우리 서연이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그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그 말이 그냥 손녀를 아끼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몰랐다. 좋아한다는 감정과 편안하다는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좋다고 다가와도 심장이 뛰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애 하나가 웃을 때 이상하게 얼굴이 뜨거워지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늘 두려웠다.
할머니가 떠난 뒤, 그 두려움은 더 짙어졌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위로한다며 붙잡던 손, 그 손들이 낯설고 무거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게 자연스러운 방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
일주일쯤 지났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문서 작업을 하다가 노트북 화면에서 손을 뗐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짧고, 다시 짧게.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구멍으로 밖을 확인할까 하다가, 그냥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채린이 서 있었다.
그날과 똑같이 화려한 차림은 아니었다. 편한 니트에 청바지, 화장도 가벼웠다. 손에는 반찬통 몇 개가 들려 있었다.
머리는 대충 묶어 올린 상태였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화려한 여배우 같은 분위기는 없었다. 그냥 동네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거, 이삿짐 정리하다가 남은 거예요. 김치랑 나물이요."
나는 문 사이로 그 반찬통을 봤다.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 너머로 노르스름한 나물과 붉은 김치가 보였다.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채린이 먼저 말했다.
"저번 일 사과하려고 왔어요."
예상 못 한 말이었다.
"제가 좀 이상하게 굴었죠. 놀랐을 텐데."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담벼락 너머에서 나를 뚫어지게 보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채린이 웃었다. 이번엔 조롱 같지 않았다. 조금 미안한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방식이 전과 달랐다. 전에는 그 웃음이 날카로웠는데, 지금은 그냥 사람 같았다.
나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반찬통을 받았다.
플라스틱 통이 손끝에 닿는 순간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냉장고에서 막 꺼내온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저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여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채린이 어깨를 움츠렸다. "근데 방법이 좀 잘못됐죠."
"많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했다.
채린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 웃음은 진짜처럼 들렸다.
한참을 웃던 채린이 눈가를 훔쳤다. "제가 너무 웃겼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말을 흐렸다. 왜 이렇게 편하게 웃는 사람 앞에서 자꾸 말이 막히는지 몰랐다.
"다시 시작해도 돼요? 정상적으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끝이 반찬통의 차가운 표면을 만지고 있었다.
채린은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게 더 낯설고 이상했다.
"생각해볼게요." 겨우 그렇게 말했다.
채린은 더 조르지 않았다. 그냥 손을 흔들고 돌아갔다.
돌아서는 뒷모습을 잠깐 지켜봤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휴대폰이 걸을 때마다 살짝 흔들렸다. 담벼락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
문을 닫고 반찬통을 식탁에 올려놨다.
뚜껑을 열자 나물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것과 비슷했다.
시금치나물이었다. 참기름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넣으셨다. 이렇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왜 이래. 나는 손등으로 눈을 눌렀다.
반찬통 하나 받은 걸로 이렇게 흔들릴 일인가.
하지만 그건 반찬통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게,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반찬통 뚜껑을 열어놓은 채로, 냄새만 맡으면서.
그날 밤 나는 반찬을 데워 저녁을 먹었다. 김치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쳐서 밥과 함께 먹었다. 혼자 먹는 밥이 그날은 조금 덜 외로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빈 반찬통을 씻어 말렸다. 깨끗하게 씻긴 통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돌려줘야 할까 잠깐 생각했다. 그냥 대문 앞에 두고 올까, 아니면 직접 가져다줄까.
직접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그 집 창문에서 새어 나왔던 담배 연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 안에 채린이 혼자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자꾸 그려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상상일 뿐이라고,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나는 결국 그 반찬통을 들고 담벼락 너머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