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3반 교실은 이틀 만에 이상한 소문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진짜야? 은서랑 그 조용한 애?"
"이서준이랬나. 걔 원래 존재감도 없었잖아."
민재가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키우며 떠들었다.
"자판기 앞에서 둘이 계속 붙어 있었대."
"에이, 설마."
도현이 팔짱을 끼고 웃었다.
교실 뒤편에서부터 앞줄까지, 소문은 파도처럼 번져갔다.
누가 봤다더라, 누가 들었다더라, 근거는 흐릿한데 확신은 또렷했다.
"은서야, 진짜야?"
은서는 책을 펼치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순간 쿵 내려앉았다.
'벌써 여기까지 왔어?'
이틀 전 자판기 앞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생됐다.
동전이 걸려서 낑낑대던 것, 서준이 대신 눌러준 것, 그게 전부였는데.
"뭐가 진짜냐고."
"너랑 그 조용한 애랑 뭐 있냐고."
"아무것도 없어."
은서는 최대한 평온하게 대답했다.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손끝은 책상 아래에서 살짝 떨렸다.
"그냥 자판기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야."
"근데 둘이 그날 이후로도 계속 얘기하던데?"
민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왜 이렇게 자꾸 캐물어.'
은서는 속으로 짜증이 올라왔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토끼처럼 겁먹은 눈을 하고 있으면 더 의심받을 게 뻔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같은 반이니까 인사 정도 하는 거지."
"인사 정도? 야, 인사 정도로 그렇게 오래 얘기해?"
"오래 안 했어. 잠깐이었어."
"근데 되게 정색하네."
"내가 언제 정색했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교실 안 몇 명이 이쪽을 쳐다봤다.
은서는 아차 싶어서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도현이 은서를 잠깐 바라봤다.
뭔가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눈동자 안쪽에 숨겨진 질문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됐어, 그럼. 근데 다음 주에 체육대회잖아. 반별 종목 정해야 돼."
"아, 맞다. 벌써 다음 주네."
민재가 화제 전환에 냉큼 올라탔다.
"우리 반 계주 누가 뛸 거야? 도현이 너 뛰지?"
"당연히 뛰지. 작년에도 내가 1등 했잖아."
"자랑 좀 그만해."
교실은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은서는 그제야 어깨에서 힘을 뺐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책상 아래로 시선을 내리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같은 시간, 교실 뒤쪽에서 서준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야, 이서준."
민재가 서준의 책상 옆으로 다가왔다.
"뭐."
"너 은서랑 뭐 있냐?"
서준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창밖을 봤다.
창밖으로 운동장에 체육대회 준비를 위한 라인이 그려지고 있었다.
"말이 없네. 있는 거네."
"없어."
짧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소문이 벌써 다 퍼졌는데."
"소문은 소문이고, 사실은 사실이야."
"오, 논리적이네."
민재가 낄낄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서준은 창밖을 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귀찮아지겠네.'
관자놀이가 살짝 욱신거렸다.
이런 종류의 관심은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존재감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게 편했는데.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잘 정리되지 않았다.
'별거 아닌 일인데 왜 이렇게 커지는 거야.'
체육대회 종목 배정은 담임이 진행했다.
칠판에 이름표를 붙여가며 종목을 정하는 과정이었다.
계주,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반별 응원전까지 하나씩 채워지는 칠판을 아이들이 눈으로 좇았다.
"2인3각은 제비뽑기로 조 정한다."
담임이 상자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들이 하나씩 나가서 종이를 뽑았다.
낄낄거리는 소리,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은서가 뽑은 종이에는 숫자 7이 적혀 있었다.
'평범한 숫자네.'
별 생각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차례로 서준이 나가서 종이를 뽑았다.
그의 종이에도 7이 적혀 있었다.
담임이 확인하고 말했다.
"한은서, 이서준. 같은 조."
교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가 곧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우, 대박."
민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거 완전 짜고 친 거 아니야?"
"운명인가 보다, 야."
여기저기서 놀림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현이 팔짱을 끼고 은서를 바라봤다.
표정이 이상했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는 것 같았다.
화난 복어처럼 볼이 살짝 부풀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은서는 등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왜 하필.'
숫자 7이 이렇게 무서운 숫자였나 싶었다.
서준을 슬쩍 쳐다봤다.
서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조금 담담해 보였다.
담임이 다음 조를 발표하는 사이,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서 쪽으로 걸어왔다.
교실 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괜찮으세요?"
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은서 옆으로 지나가면서, 다른 아이들이 못 듣게 작게.
"뭐가."
"이런 상황 불편하실까 봐."
은서는 잠깐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은 항상 이렇게 남 생각부터 하나.'
자기가 더 곤란한 처지일 텐데, 정작 걱정하는 건 남의 기분이었다.
강아지 같은 눈빛이 살짝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괜찮아."
은서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오히려 잘됐지. 다리 짧은 애랑 하면 힘드니까."
농담을 던졌지만 서준은 그냥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러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유난히 곧게 뻗어 있었다.
은서는 그 뒷모습을 잠깐 눈으로 좇다가, 도현의 시선이 여전히 이쪽에 꽂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또 왜 저래.'
쉬는 시간, 도현이 은서에게 다가왔다.
책상에 손을 짚고 몸을 살짝 기울인 채였다.
"진짜 우연이야?"
"뭐가?"
"조 뽑기."
"당연하지. 내가 조작했겠어?"
은서가 웃으며 받아쳤다.
"그럼 뭐, 종이에 미리 표시라도 했겠니.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모르지. 너라면 할 수도 있잖아."
"야, 나 그렇게 대단한 애 아니야."
가볍게 넘기려 했지만 도현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도현은 잠시 은서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턱을 살짝 당기고, 눈썹 사이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그래.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지만,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의자를 끄는 소리조차 평소보다 날카롭게 들렸다.
타탁, 하고 앉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은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왜 저렇게 신경 쓰는 거지.'
장난으로 고백했던 애가 이제 와서 왜.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가슴 아래쪽이 뭔가에 눌린 것처럼 묵직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친구 사이에서 이런 식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게 맞는 건지도 헷갈렸다.
종이 울리고 다음 수업이 시작됐다.
창밖으로 체육대회 준비 현수막이 걸리는 게 보였다.
바람에 현수막 끝자락이 팔락거렸다.
칠판에는 여전히 조 편성 명단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 나란히 적힌 두 이름이 유독 눈에 밟혔다.
한은서, 이서준.
숫자 7 옆에 나란히 붙은 이름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냥 2인3각일 뿐이잖아.'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가오는 주말,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은서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수업이 시작되고도 은서의 시선은 자꾸만 칠판 구석, 지워지지 않은 조 편성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