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달콤별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 일주일은 앞치마 끈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해서 다솜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매면 손님 앞에서 풀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등 뒤로 손을 뻗어 끈을 다시 묶어주었는데, 손끝이 스칠 때마다 나는 괜히 어색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그런 날들이 며칠 쌓이고, 또 며칠이 쌓이더니 보름쯤 지났을 무렵에는 눈을 감고도 앞치마 끈을 묶을 수 있게 되었고, "주인님, 맛있게 드세요~" 라는 대사도 이제는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올 정도가 되어 있었다. 손님이 몰릴 때는 트레이 세 개를 한 팔에 걸치고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요령도 붙었다.
다솜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대했지만, 가끔 쉬는 시간이 되면 뒷문 계단에 나란히 앉아 같이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까지는 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뜨거운 국물에서 올라오는 김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다솜이 나무 스푼으로 라면 국물을 뒤적이며 문득 이렇게 물었다.
"너 예전에 진짜 유명했다며."
순간 숨이 살짝 막히는 기분이었다. 스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나는 애써 그것을 감추며 라면 면발을 후루룩 삼켰다.
"...그냥, 얼굴만 유명했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시선을 내렸는데, 다솜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고마웠다. 캐묻지 않는다는 것, 더 파고들지 않는다는 것. 그게 지금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배려였으니까.
"난 원래 여기 안 살았어요."
다솜은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을 흘렸다.
"집 나와서 사장님이 재워주는 거예요. 방 하나 내주고, 밥도 챙겨주고. 뭐, 대신 일은 죽어라 시키지만."
말끝에 옅은 웃음이 붙었는데, 그 웃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 순간 뭔가 우리 둘 사이에 비슷한 구멍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집을 잃은 사람과 집을 나온 사람. 겉으로는 담담하게 라면만 먹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남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미레는 겉으로 보기엔 시크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다. 카운터에 서 있을 때도, 주문을 받을 때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손님들 중 몇몇은 그녀를 두고 "저 사장님 되게 차가워 보인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들은 미레의 다른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까.
손님이 다 빠져나간 늦은 밤, 카페 청소를 마치고 둘이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였다. 형광등 불빛 아래로 먼지가 뽀얗게 떠다니는 게 보였고, 걸레질을 하느라 젖은 손끝이 시렸다. 미레는 그런 내 손을 잠깐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주며 말했다.
"눈 진짜 예쁘다, 너."
"...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나는 되묻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생각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돌려 다시 청소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괜히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냥 그날 밤 잠들 때까지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눈 진짜 예쁘다, 너. 처음 봤을 때부터.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주말에는 셋이서 처음으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카페 뒤편에 붙은 작은 방, 좁은 상 위로 미레가 직접 끓인 된장국과 다솜이 만든 계란말이가 올라왔는데, 특별한 것도 아닌 그 밥상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와 계란말이 위로 살짝 흩뿌려진 대파 향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맛없으면 말해."
미레가 그렇게 말하며 국그릇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떠먹었는데,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맛이었다.
"맛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솜이 옆에서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먹으며 무표정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사장님 요리는 늘 짜요. 오늘은 봐줄 만하네."
"뭐?"
미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가 싶더니,
탁!
다솜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한 대 후려쳤다. 다솜은 "아야" 소리를 내면서도 여전히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어먹었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부모님이 사라진 이후로 이렇게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가에 살짝 물기가 배어나는 걸 느끼고는 슬쩍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곳이 '집'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방도, 밥도, 사람들도. 좁은 이불 속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옆방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두런거림이 벽 너머로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그 소리조차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겉으로는 그저 알바생일 뿐이었지만, 속으로는 이곳에서라면 나도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지내다 보면, 예전의 나는 완전히 잊혀지고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다음 주, 손님이 몰리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카페 안은 퇴근길 손님들과 저녁 약속을 잡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커피 머신에서는 연신 원두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나는 정신없이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트레이를 나르느라 이마에 땀이 살짝 배어났을 정도였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어? 너 강하윤 아니야?"
우뚝!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손에 쥐고 있던 진동벨이 미끄러질 뻔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고, 거기엔 예전 학교 동창들 세 명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서 있었다. 낯익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얼굴들은 하나도 잊히지 않았다. 저 애들 앞에서 예전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을 저 애들이 어떻게 볼지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필, 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