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주먹이 뺨에 닿았다.
고통이 없었다.
이상했다.
아파야 하는데 아프지 않았다.
대신 배 위, 문양에서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손끝까지 저릿하게 번졌다.
심장이 아니라 배가 먼저 반응하는 감각이었다.
박덕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안 쓰러지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반응이 없으니 당황한 얼굴이었다.
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피하려 했지만 몸이 굳었다.
주먹을 맞았다.
이번에도 아프지 않았다.
세 번째 주먹도 그랬다.
이게 힘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영광의 힘.
주목받는 순간 강해진다던 그 말.
계약할 때 그 존재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됐다.
"관심을 먹고 사는 힘이야. 사람들이 널 볼수록, 널 기억할수록, 넌 강해져."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주목받고 있나.
복도에 몇 명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싸움 구경이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흥미.
그런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용역 하나가 소원의 팔을 잡아 끌었다.
"형!"
소원의 비명이 귀를 찔렀다.
몸이 반응하기 전에 생각이 먼저 움직였다.
힘을 써야 한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힘을.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잡히는 게 없었다.
빈손이었다.
사기였나.
계약이 가짜였나.
의심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그 존재의 얼굴을 떠올렸다.
웃지 않는 눈, 단정한 목소리.
그런 얼굴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확신할 수 없었다.
박덕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허세도 여기까지네."
주먹이 배에 박혔다.
숨이 컥 막혔다.
무릎이 꺾였다.
이번엔 아팠다.
아프다는 감각이 뒤늦게 돌아온 게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적어도 몸이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개를 들었다.
소원이 끌려가고 있었다.
발끝이 바닥을 긁으며 끌려가는 소리가 났다.
다른 학생들도 복도 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울음소리, 신음소리.
누군가의 가방이 바닥에 떨어져 내용물이 쏟아졌다.
교과서, 필통, 노트.
아무도 줍지 않았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가 갈렸다.
뭔가 해야 했다.
뭐든 해야 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미끄러졌다.
그 순간, 복도에 있던 다른 학생 하나가 소리쳤다.
"저 사람... 이도윤이잖아! 예전에 수석이었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짜? 저 사람이 그때 그..."
"맞아, 뉴스에도 나왔었잖아. 몰락한 수석."
몰락한 수석.
그 단어가 가슴 어딘가를 긁고 지나갔다.
예전엔 자랑스러웠던 이름이 지금은 조롱거리가 되어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시선이 몰려들었다.
쓰러진 나를 향한, 여러 개의 눈.
조롱도 있었고, 놀람도 있었고, 궁금함도 있었다.
배 위 문양이 확 뜨거워졌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숫자로 세자면, 순식간에 온도가 십 도쯤 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도 안 되는 비유였지만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됐다.
숨을 삼켰다.
손끝에서 빛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금색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금색과 검붉은 색이 섞인 빛.
색이 섞이는 방식이 이상하게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했다.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발바닥에 힘이 실리는 감각이 낯설었다.
박덕수가 뒷걸음쳤다.
"뭐, 뭐야 이거."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손을 들었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손이 이미 반응했다.
손바닥에서 빛이 뻗어 나갔다.
용역 하나가 뒤로 튕겨 나갔다.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다른 용역이 달려들었다.
주먹을 피했다.
반응 속도가 달라져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빨랐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이 먼저 판단하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반격으로 손을 뻗자, 다시 빛이 터졌다.
용역이 튕겨 나가 복도 바닥을 굴렀다.
바닥에 긁힌 자국이 길게 남았다.
"이게 무슨..."
박덕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은 용역 두 명이 서로 눈치를 봤다.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뒷걸음질 쳤다.
복도에 있던 학생들이 숨죽인 채 지켜봤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진짜네. 진짜 그 이도윤이야."
그 말이 파도처럼 퍼졌다.
낮은 웅성거림이 복도를 채웠다.
박덕수가 이를 갈았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넌 이미 몰락한..."
말이 끝나기 전에 다가갔다.
발걸음 하나에도 힘이 실렸다.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았다.
힘이 넘쳤다.
박덕수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에 공포가 스쳤다.
방금까지 나를 내려다보던 눈이었다.
"다신 여기 오지 마."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았다.
박덕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겁먹은 얼굴로 물러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였다.
남은 용역들과 함께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복도가 조용해졌다.
숨소리만 가득했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몇 초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박수 소리가 늘어났다.
처음엔 한 명이었는데, 곧 여러 명의 손이 부딫치는 소리로 번졌다.
"이도윤! 이도윤!"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다른 이들이 따라 불렀다.
이름이 복도를 채우는 소리가 낯설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좋아야 하는데, 좋은 감정이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환호를 받는데 왜 속이 불편한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관심이 힘이 된다면, 이 순간이 딱 그 순간일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불쾌한 기분이 함께 따라오는지.
배 위 문양이 여전히 뜨거웠다.
식지 않고 계속 열을 내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계속 빨아들이는 것처럼.
소원이 다가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형... 괜찮아요?"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몸은 멀쩡한데 속이 울렁거렸다.
소원의 시선이 내 배 쪽으로 향했다.
옷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나 보았다.
순간 옷깃을 여몄다.
감추듯이.
"그거... 뭐였어요?"
소원이 작게 물었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지금은 설명할 수 없었다.
나조차 다 이해하지 못한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환호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왔다.
발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다른 소음들 사이에서도 그 소리만은 선명했다.
지기석 교장이었다.
단정한 정장, 안경, 손에는 서류철.
표정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 눈이 나를 훑어보는 방식이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환호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하나둘 그를 알아보고 입을 다물었다.
박수 소리가 멈췄다.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들도 잦아들었다.
"이도윤 학생."
그가 부르는 순간, 남아있던 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복도가 다시 조용해졌다.
방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잠시 얘기 좀 할까요."
숨이 턱 막혔다.
이 남자가, 나를 청강생으로 강등시킨 그 남자가, 지금 이 순간에 왜 다가오는지 알 수 없었다.
좋은 예감이 들지 않았다.
서류철을 쥔 손가락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소원이 내 옷깃을 슬쩍 잡았다.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기석 교장이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눈은 여전히 웃지 않았다.
"따라오시죠."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배 위 문양이 서서히 열기를 가라앉히는 걸 느꼈다.
마치 곧 다시 필요할 거라는 걸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