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후 6시 02분.
의식이 돌아왔다.
절벽 위, 자갈길 위에 쓰러진 채였다.
등이 차가웠다.
자갈 하나가 등뼈를 찌르고 있었다.
탄형은 없었다.
바람 소리만 있었다.
눈을 떴다.
하늘이 낮게 깔려 있었다.
회색이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탄형과 마주 서 있었던 순간.
탄형이 웃던 얼굴.
그리고 그 다음은 없었다.
공백이었다.
배가 아팠다.
정확히는 배꼽 아래가 아니라 배꼽 위였다.
불에 지진 것 같은 통증이었다.
옷을 걷어 올렸다.
배꼽 위, 정확히 배꼽 위에 문양이 있었다.
검붉은 색.
오각형 모양.
뒤집힌 오각형.
숨을 멈췄다.
손끝으로 만져봤다.
뜨거웠다.
피부 밑에서 뭔가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심장 박동과는 다른 리듬이었다.
느리고, 무겁고, 규칙적이었다.
이게 뭘까.
이게 무슨 의미일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탄형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이 문양만 남았다.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땅이 기울어진 것처럼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리며 절벽 길을 내려갔다.
기숙사까지 가는 길이 평소보다 세 배는 길게 느껴졌다.
매 걸음마다 배 위 문양이 따끔거렸다.
누가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았다.
오후 6시 40분.
방문을 열었다.
소원이 안에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안경알이 형광등 빛을 받아 잠깐 하얗게 번쩍였다.
"형, 어디 갔다 왔어요."
"산책."
"거짓말."
즉답이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소원의 눈이 나를 훑었다.
발끝부터 얼굴까지.
안경알 너머 눈동자가 좁아졌다.
"얼굴이 왜 그래요."
"괜찮아."
"안 괜찮은데."
목소리가 낮아졌다.
평소의 소원과는 달랐다.
장난기가 사라진 목소리였다.
소원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가왔다.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았다.
피하려 했다.
몸을 틀었다.
하지만 늦었다.
옷자락이 살짝 걷혔다.
배꼽 위, 검붉은 오각형이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소원의 눈이 커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이거 뭐예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숨을 삼켰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통할까.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뜨거워요."
소원이 손등을 내 배에 갖다 댔다.
작은 손이었다.
차가운 손이었다.
그런데 내 피부 위에서 그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문양의 열기가 그만큼 컸다.
그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형."
"괜찮다니까."
"저 이거 알아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숨이 목에 걸렸다.
"뭘 안다는 거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의도한 것보다 더 날카롭게 나왔다.
소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피했다.
안경을 고쳐 썼다.
손이 다시 무릎 위로 내려갔다.
손가락이 무릎 위 옷감을 꽉 쥐었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방 안의 시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냥... 신학 수업에서 본 적 있어요. 오각성 문양."
"뒤집힌 거?"
"네."
"뭘 뜻하는데."
소원이 나를 똑바로 봤다.
안경알 너머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동시에 뭔가를 숨기려는 기색도 있었다.
"타락이요."
그 한마디가 방 안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숨쉬기가 갑자기 버거워졌다.
공기가 갑자기 두 배로 무거워진 것 같았다.
"근데 형, 저건 보통 진짜 타락한 존재한테만 생기는 거예요. 사람한테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에요."
소원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설명하듯, 혹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듯.
"그런데 나한테 생겼잖아."
짧게 잘랐다.
사실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소원은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복잡해졌다.
안경알 너머로 무언가를 계산하는 눈빛이 보였다.
뭔가 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소원아."
"네."
"뭐 감추는 거 있어?"
소원이 웃었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는 웃음.
"형이나 감추는 거 있으면서."
말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탄형에 대해서 소원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서로 감추는 게 있는 사이.
그게 지금 우리였다.
그때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쿵.
쿵쿵.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
바닥을 통해 발바닥까지 진동이 올라왔다.
계단 아래에서 남자들 목소리가 올라왔다.
여러 명이었다.
거칠고 큰 목소리였다.
"3층 D구역 다 나오라고 했지?"
"안 나오면 짐 다 내던진다!"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까지 있던 두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형, 저 사람들..."
"철거 용역."
말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렇게 나왔다.
왜냐면 다른 설명이 없었으니까.
창문 없는 방이라 밖을 볼 수 없었다.
문틈으로 목소리만 새어 들어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야, 여기 방 안 비웠는데?"
"부숴."
쾅.
뭔가 부서지는 소리.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비명 소리.
여자 목소리였다.
다른 방 학생이 끌려나가는 소리.
발소리, 비명,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복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소원이 내 팔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아까 내 배를 만졌을 때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형, 어떡해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문양이 다시 따끔거렸다.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복도로 나갔다.
건장한 남자 다섯이 서 있었다.
검은 옷.
곤봉을 든 손.
표정 없는 얼굴들.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덩치, 짧은 머리, 코에 붙은 반창고.
그 반창고 자리를 알고 있었다.
작년, 원래의 이도윤이 부러뜨린 코.
기억이 순간 겹쳤다.
그때의 이도윤은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몸은 같았다.
빚도, 원한도, 다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덕수였다.
"오랜만이네, 몰락한 영웅."
박덕수가 웃었다.
입가가 비뚤어졌다.
그 웃음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기가 이 상황을 완전히 쥐고 있다는 여유.
"이번엔 내가 널 여기서 쫓아낼 차례야."
뒤에 있던 학생들이 무릎을 꿇은 채 떨고 있었다.
몇 명은 이미 짐 가방을 빼앗겨 있었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소원도 등 뒤에서 옷깃을 붙잡았다.
그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박덕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가볍게, 마치 신호 하나 던지듯.
용역들이 다가왔다.
걸음이 느긋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주먹이 날아왔다.
피할 시간이 없었다.
배 위, 문양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혔다.
"형!"
소원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주먹이 얼굴에 닿기 직전,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붉은 시야 속에서, 배꼽 위 오각형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