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평소라면 이불 속에서 십 분은 더 뒤척였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고, 냉장고 문을 열어 계란과 당근, 파를 꺼내면서 은서와의 '작전'을 시작했다.
사실 도시락은 핑계였다. 진짜 목적은 재혁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은서의 손끝에 얹어주는 것이었는데, 재혁은 초등학교 때부터 유독 계란말이를 좋아했다는 걸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급식실 앞에서 계란말이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유난히 밝은 얼굴로 줄을 서던 재혁의 뒷모습이 떠올라서, 나는 계란을 풀며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손은 이미 계란물에 소금을 넣고 있었다.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평소보다 두 배는 신경 써서 계란말이를 도톰하게 말아 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김이 오르는 팬 위로 계란지가 겹겹이 쌓여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고, 마지막에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썰 때는 단면이 예쁘게 나오는지까지 확인했다. 누가 보면 요리학원 실습생인가 싶을 정도로 집중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 은서는 도시락통을 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강도현, 너 이거 왜 이렇게 정성스러워?"
나는 젓가락을 톡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재혁이 계란말이 좋아해. 이걸로 자연스럽게 접근해봐."
"오오, 그런 정보를 알고 있다니." 은서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도시락통을 소중히 품에 안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서의 저 밝은 얼굴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근데 그냥 도시락 주면 이상하지 않을까? 갑자기 웬 계란말이냐고 물어보면 뭐라 그래?" 은서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묻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젓가락으로 계란말이 한 조각을 집어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냥 반 애들 나눠주는 척해. 너 원래 잘 나눠주잖아."
"아, 그거 좋은 생각인데!" 은서는 곧바로 표정이 밝아졌고, 나는 그 순진함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애써 참았다. 그녀는 곧바로 도시락통 뚜껑을 다시 닫으며 각오를 다지는 얼굴을 했는데, 그 표정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 같아서 나는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근데 강도현, 너는 이런 거 왜 이렇게 잘 알아? 재혁이 취향 같은 거." 은서가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을 때, 나는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으니까." 나는 짧게 대답하며 다시 밥을 떴고, 은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날 오후, 은서는 정말로 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창가 쪽 자리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나눠주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누가 봐도 자연스러웠고, 나는 교실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러다 재혁한테는 못 주고 다 나눠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슬쩍 긴장했다. 은서가 세 번째 아이에게 계란말이 하나를 건네줄 때 나는 남은 개수를 손가락으로 세어보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은서는 마지막 남은 한 통을 손에 들고 재혁의 자리로 향했다.
"재혁아, 이거 계란말이 좀 남았는데 먹을래?" 은서의 목소리는 애써 자연스러운 척했지만,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아마 삼 년 넘게 봐온 친구니까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재혁은 잠시 도시락통을 바라보다가, 특유의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그 짧은 대답에 은서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뒤로 돌아 뛰어오는 걸 보면서, 나는 그 광경이 어이없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소했지만, 은서에게는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봤어?! 나 봤어?! 재혁이 고맙다고 했어!" 은서가 내 자리로 달려와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통에, 나는 몸이 앞뒤로 휘청거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 봤어. 진정해."
"어떻게 진정을 해!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야!" 은서가 그렇게 소리치는 통에 반 아이들이 우리 쪽을 힐끔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괜히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은서는 그러고도 한참을 흥분한 얼굴로 재혁의 표정, 목소리, 심지어는 젓가락질하는 손 모양까지 복기하듯 늘어놓았는데,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혁이 그 계란말이를 먹으면서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 맛이 어땠을지, 그런 게 자꾸 궁금해지는 나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은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창밖을 보며 실실 웃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안도와 동시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뭐가 허전한 건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날 방과 후,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서려던 참에 재혁이 갑자기 내 옆에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너 요즘 요리 늘었어?"
그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그냥 취미로."
"계란말이 맛있더라." 재혁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뭔가 뿌듯함과 함께 묘한 불편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재혁의 웃음은 흔한 게 아니어서,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 그, 다행이네." 나는 말을 더듬듯 대답했고, 재혁은 별생각 없다는 얼굴로 신발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뿌듯한 건, 재혁이 내 요리를 맛있다고 해준 것 때문이었고, 불편한 건... 그 도시락이 사실 은서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재혁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건가.' 나는 애매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재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로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재혁의 "고마워"라는 말, 은서의 새빨개진 얼굴, 그리고 뒤늦게 나에게 던진 "요리 늘었어?"라는 말까지. 그 세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뒤섞이면서, 정작 기뻐해야 할 사람은 은서인데 왜 내가 그 말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형광등 불빛이 꺼진 방 안에서, 창밖 가로등 빛이 벽에 희미한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은서의 작전은 순조롭게 시작되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계속 재혁의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은서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재혁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내 오래된 오기가 다시 발동한 건지, 나는 그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문득, 내일도 도시락을 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라서 눈을 다시 떴다. 왜 벌써 내일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은서를 위한 일이라고 되뇌었지만, 그 말이 어딘가 공허하게 들리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