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내 이름은 박다은이다.
소망보육원 열두 살, 산수는 못하지만 눈치는 빠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눈치가 빠른 게 재능인지 저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엔 그 재능이 제대로 발동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 나는 들으면 안 될 걸 들었다.
원장님이 어떤 스피커 너머 남자 목소리랑 통화하는 걸.
그날 나는 원장실 앞을 지나가다가 그냥 물 마시러 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정말이다. 근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낮게 깔린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남자 목소리.
이 나라에 남자는 열두 명밖에 없다고 사회 수업에서 배웠다. 아기 아홉 명, 할아버지 두 명. 나머지 하나가 성인 남자라는데, 그게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선생님도 모르고, 원장님도 모른다고 했다. 근데 지금 저 목소리는 딱 그 '누군지 모르는' 남자 같았다.
낮고, 차분하고, 뭔가 명령하는 듯한 말투.
"……보육원 지원 조건은 저희 쪽에서 이미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목소리가 저렇게 조심스러운 건 처음 들었다. 평소엔 우리한테 밥 늦게 먹는다고 잔소리할 때도 저렇게 조심스럽지 않은데.
나는 그 순간 뒷목이 쭈뻣 섰다. 뭔가 큰 게 걸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 특유의 감, 그런 거 말고 그냥 순수하게 '이거 나 알면 안 되는 거다' 싶은 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면 안 되는 걸 알아버렸으니, 당연히 더 알고 싶어졌다. 열두 살짜리 논리로는 이게 지극히 합리적인 흐름이었다.
그날부터 도서관 컴퓨터에서 몰래 국가 인구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열두 살짜리가 그런 걸 할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옆집 언니 아이디를 빌려 썼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언니. 언니가 비밀번호를 화면 앞에서 대놓고 치는 바람에 외운 거지 내가 훔친 건 아니에요.
검색창에 '강하준'을 쳐봤다.
결과 없음.
다시 쳐봤다. 오타인가 싶어서 자음도 바꿔보고 받침도 바꿔봤다. 강하준, 강하줌, 강아준, 강하즌.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진지하게 온갖 조합을 시도했다.
여전히 결과 없음.
이상했다. 원래 이 나라 시스템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정보를 저장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등록되고, 어디서 뭘 먹었는지까지 다 기록으로 남는다고. 그러니까 결과 없음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나는 분명 그 이름을 들었다. 원장님이 통화하다가 실수로 "하준 씨"라고 부르는 것도 들었단 말이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존재하는 사람처럼 부른다.
이게 말이 되나?
"다은아, 뭐 해?"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화면을 확 꺼버렸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 아무것도 안 해요."
선생님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숙제하는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놀라?"
"놀란 거 아닌데요……"
말끝이 저절로 흐려졌다.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게 최선이다. 괜히 변명을 늘어놓으면 더 의심받는다는 걸 나는 지난 열두 해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한 번 더 훑어보더니, 다행히 다른 일이 있었는지 자리를 떠났다.
떠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참았던 숨을 몰아 내뱉으니 어깨가 축 처졌다.
근데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었다.
검색 기록에 '강하준'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왠지 시스템이 그 이름을 검색했다는 사실 자체를 어딘가에 기록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면이 꺼지기 직전 잠깐 떴던 빨간 문구.
['접근 제한 항목 조회 시도가 기록되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접근 제한. 기록. 조회 시도.
이 세 단어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이 하나 생긴 것 같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구나.
나는 노트북, 아니 도서관 컴퓨터를 서둘러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살짝 떨렸다. 열두 살 인생 최대의 사건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원장님이 그 남자한테 했던 말을 곱씹었다. 몇 번을 되짚어도 결론은 같았다.
"……보육원 지원 조건은 저희 쪽에서 이미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육원 지원. 그 남자가 우리 보육원한테 뭘 해준다는 뜻인가? 돈? 물건? 아니면 다른 거?
그럼 그 남자는 누구고, 우리한테 왜 그런 걸 해주는 걸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선생님이 항상 그랬다. 특히 어른들이 애들한테 잘해줄 땐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를 세웠다.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내는 것.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어둠 속에서 눈만 반짝거리며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원장실 서류함을 뒤져볼까, 아니면 다시 도서관에 가서 다른 아이디로 시도해볼까. 머릿속이 스파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분주하게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원장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복도 끝,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다은아, 어제 도서관 컴퓨터로 뭐 찾아봤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늘 웃으면서 말하던 원장님인데, 지금은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나는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걸 느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아니요, 그냥…… 게임……."
거짓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스스로도 어색하다는 걸 알았다. 게임이라니, 그 컴퓨터로 게임이 되는지도 모르는데.
원장님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눈빛이, 화가 났다기보다는 뭔가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컴퓨터, 이제 못 쓰게 잠겨 있을 거야. 이상한 데 손대지 마."
그러고는 아무 설명 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건 진짜다.
뭔가 이 나라가 숨기고 있는 진짜 비밀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사람, 접근 제한이 걸린 정보, 그리고 그걸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원장님의 표정.
그리고 나는, 어쩌다 그 비밀의 끄트머리를 붙잡아버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끄트머리를 붙잡은 대가가 뭔지 아직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