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장이었다.
새하얗고, 지나치게 깨끗하고,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그런 천장.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찌르듯 밝아서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어라.
분명 나는 새벽 편의점으로 로판 신간을 사러 뛰어가고 있었다. 그날 자정에 풀린다던 신간이었는데, 결제 창을 새로고침하다가 결국 오프라인 매장까지 뛰어가는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럭 경적 소리를 들었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타쿠 인생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근육이 원래 이렇게 붙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팔뚝에 힘줄이 잡혔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니 턱선이 낯설었다. 각이 진 데다가 손끝에 까슬한 감촉까지 느껴졌다. 수염 자국이었다.
……수염?
목소리를 내보려고 “저기요” 했는데, 저음이 방을 울렸다.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그 소리가 내 목소리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저기요, 가 이렇게 낮게 나올 일이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시트를 걷었을 때, 나는 내가 남자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남자의 몸으로 깨어났다는 걸. 시트 아래로 드러난 몸이 낯설다 못해 남의 것 같았다. 어깨는 넓고 손은 크고, 무엇보다 그, 있어야 할 게 있었다.
쿵.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느낌이었다.
전생의 나는 이서연. 서른둘, 미혼, 로판 마니아, 야근 노예. 죽기 직전까지 웹소설 결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통장 잔고보다 결제 내역이 더 길었던 인생이었다.
근데 내가? 왜?
왜 하필 남자로? 그것도 이렇게 낯선 몸으로?
질문에 답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벽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성하셨습니까.”
건조하고 사무적인 여자 목소리였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묻지 않은 그 톤이, 오히려 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시트로 가렸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저, 여기가 어디죠.”
“귀하는 현재 다솜국 국립 관리시설 제3격리동에 계십니다. 안전은 보장되어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안심하십시오, 라는 말을 이렇게 안심 안 되게 하는 사람도 처음 봤다. 목소리에 온기가 하나도 없어서, 안심하라는 문장 자체가 협박처럼 들렸다.
나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침대 하나, 링거대 하나, 커다란 강화유리 벽 하나. 벽에는 감시 카메라로 보이는 렌즈가 두 개나 박혀 있었다. 병실치고 지나치게 삼엄했다.
유리 너머로 복도가 보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여자였다.
간호사도 여자, 청소하는 사람도 여자, 서류 들고 뛰어가는 사람도 여자.
음, 병원이라 그런가.
그렇게 넘기려는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남자 간호사 한 명도 안 보인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청소도, 서류 업무도 다 여자라니. 이게 우연이면 진짜 대단한 우연이다.
그때 스피커가 다시 울렸다.
“귀하는 본 시설 사상 세 번째로 확인된 생존 남성입니다.”
……세 번째?
나는 그 말을 두 번 곱씹었다. 남성이 세 번째로 확인됐다는 건, 이 세계에 남자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뜻이었다.
로판을 오래 읽은 사람의 직감으로, 나는 이게 뭔지 바로 알아챘다.
성별 역전 세계관.
남자 귀하신 몸, 여자들이 득세하는 사회, 그 안에서 유일무이한 남주 하나가 뚝 떨어지는 클리셰. 심지어 이런 세계관에서는 대부분 여주가 남주를 발견하고 애지중지 키우거나, 아니면 국가에서 남주를 자원처럼 다루는 전개가 뻔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왜냐면 나는 그 클리셰의 결말을 너무 많이 읽어봤거든. 국가끼리 전쟁 나고, 집안끼리 쟁탈전 벌이고, 여주들이 목숨 걸고 달려들고. 심지어 어떤 소설에서는 남주 한 명 때문에 대륙 전체가 피바다가 되는 전개도 있었다. 그 소설 읽으면서 나는 “와 이건 오바지” 하면서 댓글까지 달았던 기억이 났다.
근데 내가? 그 주인공이? 나는 서른둘 인생 동안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개복치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남자한테 대시를 받아본 적도 몇 번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여자들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남주가 됐다니, 이건 너프가 아니라 갑자기 밸런스 패치를 잘못 먹은 기분이었다.
“저기요.” 나는 다시 스피커를 향해 말했다. “저 여기서 뭘 하면 되는 거예요?”
대답이 늦게 돌아왔다. 그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귀하의 처우에 대해선 상급 부서에서 논의 중입니다.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대기, 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들린 적이 없었다. 마치 “너의 인생은 지금부터 우리가 정한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워 천장을 봤다. 뇌 속에서는 오만가지 로판 전개가 재생되고 있었다. 여주가 남주를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 국가가 남주 하나 때문에 붕괴한다, 남주는 결국 세계의 중심이 되어 파국을 부른다.
그 모든 전개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남주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재앙이라는 것.
나는 그 재앙의 씨앗으로 이 세계에 떨어진 셋째 남자였다. 첫째, 둘째 남자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창밖, 아니 유리벽 너머로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갔다. 이번엔 정장을 빼입은 젊은 여자였는데, 걸음걸이가 딱딱 끊어질 정도로 절도가 있었다.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낀 채 걸어가던 그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유리에 이마를 붙일 듯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호기심도 아니고, 경계도 아니고,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눈빛. 마치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감별하려는 것 같은, 그런 시선이었다.
나는 시트를 더 끌어당겼다. 벌거벗은 것도 아닌데 자꾸 몸을 가리고 싶어졌다.
“저기요, 저 좀 그만 보시면 안 될까요.”
여자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려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어딘가 다급했다. 구두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점점 멀어졌는데, 그 소리마저 조급하게 들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방금 저 여자는, 나를 보고 뭔가를 보고한 거다. 상급자한테, 혹은 어딘가에.
스피커가 다시 울렸다.
“귀하, 지금부터 안내드리는 내용은 매우 중요하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톤 낮아져 있었다. 나는 그 낮아진 톤에서 이미 예감했다.
지금부터 나오는 얘기가, 절대 좋은 얘기는 아닐 거라는 걸.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독약 냄새가 다시 코끝을 찔렀고, 형광등 불빛이 눈앞에서 유난히 하얗게 번졌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스피커에서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