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도윤은 이어폰을 급히 빼며 몸을 반쯤 일으켰는데, 문가에 선 나윤의 표정이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 짧은 순간에도 알아챌 수 있었다. 눈매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잔뜩 앙다물어져 있었으며, 손끝은 문고리를 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 뭘 들었다는 건데." 도윤이 되묻자 나윤은 대답 대신 방문을 등 뒤로 닫고 그대로 그 앞을 막아섰는데, 마치 오빠가 도망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여자친구 생겼다고 소문났다며. 학교 전체에 다 퍼졌다는데, 오빠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나윤의 목소리에는 배신감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고, 그 감정의 무게가 방 안 공기마저 무겁게 만드는 듯해서 도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아무 일도 아니야. 준혁이가 장난친 게 잘못 퍼진 거라고." 도윤이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하려 애썼지만, 나윤은 이미 그 말을 믿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도윤의 휴대폰으로 시선이 향하는 순간, 나윤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뭐 하는 거야." 도윤이 놀라서 손을 뻗었지만 한 발 늦었다. 나윤은 이미 휴대폰을 낚아채 등 뒤로 감춘 채 두 눈으로 도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오빠 폰 며칠만 내가 갖고 있을 거야. 누구랑 무슨 얘기 하는지 나도 좀 알아야겠어." 나윤의 선언에 도윤은 헛웃음마저 나오지 않을 만큼 당황했고, 그 단호한 눈빛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야, 그건 좀 심하잖아. 내가 애도 아니고." "심하긴 뭐가 심해. 오빠가 이상한 여자한테 휘둘리는 것보다 낫지." 나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휴대폰을 자신의 교복 주머니에 밀어 넣었고, 도윤은 그 완강한 태도 앞에서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창밖으로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그와 상반되게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윤의 감시는 도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집요했다. 아침이면 도윤보다 먼저 일어나 대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보초를 서는 사람처럼 완강해서 도윤은 매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정확한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눈치였고,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오는 통에 도윤은 휴대폰이 없는 며칠 동안에도 늘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등굣길, 골목 어귀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도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서아였다. 아침 햇살 아래 검은 단발머리가 결 따라 흔들리고 있었고, 그 정갈한 옆모습은 언제 봐도 조각처럼 단정했다. 서아는 도윤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다가와 팔을 붙잡았는데, 손끝에 실린 힘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늘부터 같이 가." 서아의 목소리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고, 도윤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반대편 길목에서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지우였다.
"어? 서아 너도 여기서 뭐 해." 지우의 시선이 서아가 붙잡고 있는 도윤의 팔을 스치듯 지나갔고, 그 짧은 시선 교환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팽팽한 긴장이 서리기 시작했다. 공기마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듯한 그 정적을, 도윤은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같이 등교하려고." 서아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팔을 붙잡은 손끝의 힘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럼 나도 같이 가면 되겠네." 지우가 자전거를 세우며 도윤의 반대쪽 팔에 손을 얹었고, 순식간에 도윤은 양옆에서 두 여자에게 붙잡힌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두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만큼 도윤의 감각은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힐끗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하자, 도윤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굳어 있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고, 심장은 마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감각으로 쿵쿵 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진짜.' 속으로 되뇌어봐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저기, 나 이러다 학교 늦어." 도윤이 겨우 꺼낸 말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견제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그의 팔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서아의 손끝은 차갑도록 단단했고, 지우의 손끝은 그와 반대로 뜨겁도록 완강했다. 도윤은 그 두 온도 사이에 끼여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골목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오빠, 거기서 뭐 해!"
등교 준비를 마치고 뒤늦게 뛰어나온 나윤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 채, 서아와 지우가 각각 붙잡고 있는 도윤의 양팔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서린 감정은 단순한 짜증이나 걱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눈동자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나윤의 손이 교복 주머니 속, 도윤의 휴대폰이 들어 있는 자리를 저도 모르게 꾹 움켜쥐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단순한 남매간의 걱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직감하고 있었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한 채 팽팽한 정적만이 골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도윤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