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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석판에서 빛이 잦아든 후, 시험장은 완전히 정지된 것 같은 침묵에 잠겨 있었는데, 그 침묵을 깬 건 시험관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측... 측정치가..." 그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 든 마도구를 몇 번이나 흔들어보는 걸 보며, 나는 이게 정말 잘못된 게 아니구나 싶어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마도구라는 게 원래 저렇게 손목을 털듯이 흔들어보는 물건이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곧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건 고장 여부를 확인하는 동작이 아니라, 그냥 당황해서 나오는 반사행동이었으니까. 다른 시험관 한 명이 다가와 그 마도구를 확인하더니, 짧게 숨을 들이켜고는 주변 응시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전원 대기! 측정 재조정 들어갑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다. 측정 장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치가 나왔다는 것, 즉 내 마력이 이 시험장에 마련된 마도구의 측정 한계를 넘어섰다는 뜻이었으니까. 간단한 추론이었다. 마도구가 부서진 것도 아니고, 시험관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주변 응시생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뭐야, 저거 고장 난 거 아니야?" "근데 왜 저 소공자 쪽만 계속 쳐다보는 거지..." 그런 속삭임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나는 애써 그것들을 못 들은 척하며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유진혁이 고개를 쭉 빼고 이쪽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었는데, 그 순수한 반응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 녀석은 원작에서 압도적인 재능으로 유명했던 주인공인데,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뭔가를 확신했다는 뜻일 테고, 확신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하련은 자신의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뭔가 속삭였고, 여진주는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이쪽을 훑어보고 있었다. 둘 다 여자였고, 둘 다 원작에서 각자의 이유로 유진혁의 곁을 지키던 인물들이었는데, 저런 시선을 받는다는 게 앞으로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될지,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망했다.' 조용히 C클래스로 위장해서 졸업장만 따고 도망치겠다던 계획이, 지금 이 자리에서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있다는 걸 느끼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5년. 정확히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남몰래 마력 운용을 연습해왔던 게, 결국 이런 방식으로 터져버릴 줄이야.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땐 이런 식으로 시험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조용히,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딱 살아남을 만큼만 강해지자는 게 목표였는데. 측정 장비를 새로 가져오는 데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시험관들은 몇 번이나 자기들끼리 모여 소곤거리며 서류를 뒤적였는데, 그 서류라는 게 아마도 과거 측정 기록이거나 마도구 사양표 같은 거겠지 싶었다. 나는 그 삼십 분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대기석에 앉아 다리를 떨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S등급이라는 게 원작에서 몇 명이나 나왔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원작 전체를 통틀어 S등급은 딱 한 명, 유진혁뿐이었다. 그것도 성인이 된 이후, 몇 번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뒤에야 도달한 등급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기입학시험이라는 이름 그대로 어린애들 모아놓고 치르는 이 시험에서, 나 같은 게 그 등급을 찍어버렸다는 건... 이건 그냥 반칙이었다. 누가 봐도. 그중 한 명이 결국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 마력 훈련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혼자 좀 연습했어요." "혼자서... 말씀이십니까?" "네." 이 대답에 시험관은 뭔가 더 물으려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는데, 그 표정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속으로는 '이 자식이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내가 이 정도로 나올 줄은 몰랐으니 서로 마음은 비슷했을 거다. 새로운 측정 장비가 도착한 후, 재측정이 진행됐다. 이번에 가져온 마도구는 이전 것보다 훨씬 크고 투명한 결정체가 중심에 박혀 있었는데, 시험관 한 명이 그걸 조심스럽게 석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학원 본관에서 쓰는 등급 판정용 장비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충분할 거라는 말이 이렇게 불안하게 들리는 건 처음이네.' 나는 최대한 신중하게, 처음보다는 약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봤는데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새 장비의 결정체가 짧게 파직, 소리를 내며 빛을 뿜었을 때는 나조차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알림: 마력 등급 판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알림: 등급 - S. 왕국 마법학원 조기입학시험 사상 최초의 S등급 기록입니다.] 이 알림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최초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반짝이는 걸 보면서, '...이게, 되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게 최선의 결과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으니까. 최선이 아니라는 건, 조용히 살고 싶었던 원래 계획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라는 뜻이었고, 최초라는 건 앞으로 이 이름이 왕국 전체에 회자될 거라는 뜻이었다. 둘 다 나한테는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난 후, 나는 다른 시험관들에게 둘러싸여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에 답했는데, 그중 한 명이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이서한 소공자님, 정말로 이 마력을... 혼자서 단련하신 겁니까?" "...네." "누구의 지도도 없이요?" "네." "그럼 마력 운용법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이런 수준의 정밀한 운용은 최소 몇 년간의 지도 없이는 불가능한데요." "...책 보고 배웠어요." 이 대답에 그 시험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책 보고 배웠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나, 나도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서 스스로도 좀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시험관은 뭔가 더 묻고 싶어 보였지만, 옆에 있던 상급자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을 막았다. "...그만하시게. 소공자님도 지치셨을 텐데." 아마 이 자리에서 더 캐물어봐야 소득이 없을 거라 판단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소득이 없을 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진짜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전생의 지식으로 회귀 전부터 알고 있던 마법 이론을 이 삶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뿐이었는데, 그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벌어진 일들을 곱씹었다. 5년간 숨겨왔던 계획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셈이었는데, 그렇다고 크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결과는 곧, 원작에서 유진혁 혼자 독차지했던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포지션에 내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달했다는 뜻이었고, 그게 앞으로의 판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작의 흐름과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은 들었으니까. 마차 바퀴가 돌길을 지나며 덜컹거릴 때마다, 나는 원작의 흐름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유진혁이 조기입학시험에서 A등급을 받고, 그걸로 화제가 되어 학원 내 유력 가문들의 견제를 받으며 성장하는 게 초반 전개였다. 그런데 지금, 그 A등급 자리를 내가 S등급으로 뛰어넘어버렸으니, 유진혁이 받을 관심의 절반은 이미 나한테 옮겨온 셈이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겠다던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 된 거 어쩌겠나. 이미 던진 주사위는 못 주워담지.' 속으로 자조하듯 중얼거리며,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저택의 담벼락을 바라봤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오늘 있었던 일들이 그제야 조금씩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저택에 도착하자, 박관수가 마차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항상 그렇듯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마차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표정에 옅은 긴장이 스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도련님?" "S클래스래." 박관수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곧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S, 클래스요?" "응. 최초 기록이라던데." "최초... 라고 하셨습니까?" "응. 시험관들이 그렇게 말하던데." 박관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차에서 내려 저택 현관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몇 걸음 뒤에서 계속 침묵을 지켰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도련님." 현관 앞에서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저택 안팎이 조용하지 않을 겁니다." "알아." "가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침묵 속에서, 앞으로 이 소식이 저택 안팎으로 퍼져나갈 때 벌어질 파장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그리 유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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