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후작가 숨은 천재 마법사

3화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이 마력 시스템에 대해 나름의 규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오히려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걸 만든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충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첫째로, 같은 종류의 자극을 반복하면 반응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찬물에 손을 담그기만 해도 알림이 떴는데, 몇 주가 지나자 찬물 정도로는 아무 반응도 없었고, 결국 온도를 더 낮추거나 시간을 더 늘려야만 겨우 반응이 왔다. 처음에는 그냥 손등을 꼬집는 것만으로도 됐는데, 나중엔 꼬집는 걸로는 씨알도 안 먹혔다. 손톱을 세워야 했고, 그마저도 익숙해지자 아예 바늘 끝으로 살짝 찌르는 수준까지 가야 했다. 요컨대 몸이 자극에 적응해버리면 그건 더 이상 '자극'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는데, 이 부분이 가장 골치 아팠다. 계속 강도를 올려야 한다는 건, 결국 언젠가는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다섯 살짜리 몸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했다. 둘째로, 반응이 뜬다고 해서 항상 같은 크기의 마력이 축적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느 날은 [알림: 미약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가 뜨고, 어느 날은 [알림: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정도로 '미약한'이라는 수식어가 빠진 채 뜨기도 했는데, 그 차이가 뭔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온도의 물, 같은 시간, 심지어 같은 시각에 했는데도 알림 문구가 달랐으니, 처음엔 그냥 시스템 버그인가 싶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독 몸이 피곤하고 배가 고팠던 날 냉수욕을 했을 때 후자의 알림이 떴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아... 신체가 이미 어느 정도 스트레스 상태에 있을 때 자극을 주면 반응이 더 크게 온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종의 실험 일지를 머릿속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아침 공복에 할 때와 저녁 식사 후에 할 때, 잠을 푹 잔 날과 못 잔 날, 각각의 조건을 바꿔가며 알림 문구를 대조해보니 패턴이 점점 뚜렷해졌다. '그러니까 배고픈 상태에서, 지친 상태에서 자극을 주면 더 잘 오른다는 거네.' 이 발견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국 스스로를 좀 더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몰아넣어야 효율이 오른다는 뜻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이 저택에서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궁핍한 처지였다는 것, 원작 설정상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공자였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굳이 일부러 굶을 필요조차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이 방치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아침을 거르고 우물가로 나가는 것도, 저녁 훈련을 자기 전 늦은 시간까지 미루는 것도, 전부 다 "효율" 때문이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다만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헛헛했던 건, 이 세계의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는지를 재확인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계산은 계산이고, 그 계산의 재료가 결국 방치와 결핍이라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였다. 소이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하루는 내가 우물가에서 손등을 꼬집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걸 보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도련님, 손이 왜 그렇게 빨개요?" 하고 물었다. "응? 아, 이거... 단련하다가." "단련이요...?" 소이는 그 대답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 날부터, 내 우물가 아침 일과가 끝날 때쯤 항상 따뜻한 물수건을 들고 나타나서 손을 닦아주었는데, 그 손길이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서, 나는 매번 그 순간마다 뭔가 뜨끈한 게 가슴 한쪽에서 올라오는 걸 느꼈다. 어떤 날은 소이가 아예 미리 물을 데워 온 수건을 준비해뒀다가, 내가 우물가로 나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부엌에서 뛰어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걸음을 늦추고 기침을 한 번 하는 척을 하며 소이가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곤 했다. 원작 설정에서 소이는 이서한에게 학대당한 피해자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다정한 손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그 학대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고, 그건 매번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뿌리치는 게 더 이상한 짓이었을 테니까. 박관수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했다. 처음엔 내 이상 행동을 병으로 의심하며 체온까지 재던 사람이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우물가로 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느 날은 아예 작은 수건과 연고까지 준비해서 건네주며 "...무리하지는 마세요, 도련님" 하고 말했다. 그 말투에는 형식적인 존댓말 속에 숨겨진 진짜 걱정이 배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알아채면서도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한 번은 박관수가 아예 우물가 옆에 작은 나무 의자까지 갖다 놓기도 했는데, "겨울에는 바닥이 차서요" 하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손을 꼬집으면서,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나를 챙기는 두 사람이 이렇게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든든하면서도 미안했다. 그렇게 반년쯤이 지났을 무렵, 나는 손등에 미세한 흉터가 여러 개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손에 흉터라니, 이게 맞나 싶었지만, 동시에 그 흉터의 개수만큼 마력이 축적되었다는 확신도 있었다. [알림: 축적된 마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마력 감각이 개방됩니다.] 이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처음으로 뭔가 다르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손끝에서부터 뭔가 미세한 진동 같은 게 느껴졌고, 그건 마치 오랫동안 저려 있던 다리에 갑자기 피가 통하는 것 같은... 그런 낯선 감각이었다. 처음엔 놀라서 손을 두어 번 털었는데,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진동은 그냥 거기, 손끝에 계속 남아 있었다. '...이게 마력이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그 미세한 진동을 느껴보려고 눈을 감고 집중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동이 조금씩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그 진동이 손끝에서 손목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뭔가 뻐근한 감각이 뻗어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남들 눈에는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이상한 아이로 보일 뿐이었겠지만. 그렇게 일 년, 이 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나는 저택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꾸준하게 몸을 단련하고 마력을 축적해나갔고, 그 사이 이강호는 여전히 저택에 잠깐 들렀다가 서재에서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했으며, 윤채경은 여전히 연회 초청장과 보석 목록을 뒤지느라 아들이 자라는 모습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 무관심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 그건 곧 마음껏 이상한 훈련을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가끔은 이강호가 서재 앞을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형식적으로 "몸은 괜찮으냐"고 묻긴 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는 법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굳이 대답을 완성하지 않고 얼버무렸는데, 어차피 듣지도 않을 대답을 성실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다섯 해가 흘렀다. 다섯 살이던 나는 이제 열 살이 되었고, 손등의 투명하던 혈관은 여전했지만, 그 위로 자잘한 흉터가 촘촘히 자리 잡아 있었으며, 손끝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이제 눈을 감지 않아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자라나 있었다. 몸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단단해져서,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체력을 갖게 됐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이게 되네?' 매번 그 감상은 똑같았다. 그리고 그 무렵, 저택에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왕국 마법학원에서 올해부터 조기입학 특별시험 제도를 신설했다는 공문이었는데, 만 열 살 이상의 아이라면 정식 입학 연령인 열다섯 살을 기다리지 않고도 시험을 통해 조기 입학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관수가 그 서류를 들고 내게 왔을 때, 나는 그것을 읊는 목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한 가지 계산을 시작했다. '...이거, 기회일까.' 원작에서 유진혁이 입학하는 시점이 열다섯 살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조기입학을 하면 그 시점보다 앞서 학원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원작의 사건들과 완전히 다른 타임라인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동시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내 마력을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는 불안이 함께 밀려왔다. 시험이라는 건 결국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한다는 뜻이었고, 지금까지 손등을 꼬집고 찬물에 담그며 쌓아온 이 미미한 진동이, 정식으로 마력을 다뤄본 다른 집안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게 드러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확인은 해봐야 했다. 언제까지고 우물가에서 혼자 손을 꼬집으며 짐작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결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 있었다. 목표 없는 평범한 학생으로 조용히 졸업장을 따고 도망친다는 계획,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이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관수, 나 이 시험 볼래." 박관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가, "...알겠습니다, 도련님" 하고 답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지켜봐온 이상한 훈련의 결과가 마침내 어딘가로 향하는구나 하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련님, 시험장에 가시려면... 마님과 주인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